"펄펄 끓는 등하굣길, 초록을 돌려주세요"… 보다 못한 아이들이 나섰다

강지수 2026. 5. 7.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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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타격 크지만 소외된 미래세대
전국 145곳 발로 뛰며 기후 대응력 평가
6·3 지선 후보들에게 정책 제안서 보내
"폭염·폭우 피할 개방형 녹지 늘려달라"
편집자주
산업화(1850~1900년) 이후 지구 평균 기온 1.5도 상승. 이 수치는 돌이킬 수 없는 기후재앙의 마지노선으로 불립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우리가 몰랐던 기후행동' 후속으로 1.5도에 임박한 기후 위기 현실, 이를 막기 위한 노력들을 격주로 폭넓게 연재합니다.
강원 춘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여름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춘천=연합뉴스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걷기 힘들 때가 많아요.

한민정(15)양은 매일 등하굣길 아스팔트 위를 걷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죠.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책가방과 맞닿은 등은 십 분도 안 돼 흠뻑 젖습니다. 가로수 아래 잠시 쉬어 가려고 해도 가지를 쳐낸 탓에 그늘이 한 뼘도 되지 않아 마땅치 않습니다. 여름은 더 고역입니다. 아지랑이 사이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신발 밑창이 녹는 느낌이 절로 들고, 반대로 비가 퍼붓는 날에는 물웅덩이를 피해 다녀야 해요.

민정양만 겪는 일은 아닙니다. 과거 어른 세대가 한여름 두어 달만 겪은 후덥지근한 날씨는 지금 아이들에게 더 오래 찾아오고 있습니다. 여름이 시작된다는 절기 '입하(立夏)'를 막 지났지만 이미 4월 중순 한낮 기온이 영상 30도에 육박하는 초여름 더위를 맛본 것처럼요. 봄철 이상고온 현상이 뉴노멀(새 표준)이 된 시대. 매년 폭염·폭우 기록을 새로 쓰는 건 더 이상 놀랍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이상기후가 아이들의 건강권과 학습권부터 앗아간다는 점입니다. 아동의 열사병 위험은 성인보다 3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요. 홍수나 폭염의 영향으로 매년 전 세계 3,700만 명이 넘는 아동의 학업이 중단되기도 하죠. 이렇듯 아동·청소년은 기후위기 취약계층으로 분류되지만, 기후위기 대응 정책은 어쩐지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겐 투표권이 없어서일까요? 성인 눈높이 정책은 아동·청소년의 등하굣길조차 바꿔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걸어본 동네... 기후위기 대응 낙제점

서울 동대문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래서 민정양은 올해 또래 친구들과 함께 6·3 지방선거 후보들에게 보낼 기후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환경재단 어린이환경센터가 1월 발족한 '아동·청소년 기후위원회'의 일원이 된 겁니다. 12~18세 기후위원 30명(중학생 20명, 고등학생 10명)은 3월 중순부터 20일간 각자 동네에서 발로 뛰며 도시의 기후위기 대응 수준이 어떤지 평가했습니다. 서울·경기·전북·광주·울산·경남 등 전국 각지 145개 장소를 대상으로요.

이들이 돌아본 공간은 공원·녹지, 공공기관, 대중교통 거점, 상업시설, 주거지역·골목 등 5개 유형으로 나뉩니다. 여기서 자연체험, 생태환경, 기후대응, 이용환경, 환경 질, 개방성, 체류환경 등 7개 영역의 점수를 매겼습니다. 공간 유형별로 조사 결과를 보면 평균 총점(2점 만점)은 공원·녹지(1.66점), 공공기관(1.65점), 주거지역·골목(1.58점), 대중교통 거점(1.22점), 상업시설(1.13점) 순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두 눈으로 확인한 문제는 생활권 전반에 걸쳐 있었습니다. 먼저 버스정류장 등 대중교통 거점에는 폭염·집중호우 시 대피할 수 있는 쉼터가 거의 없어, 기후대응 점수가 평균 1.18점(2점 만점)으로 전 유형 중 최하위를 기록했어요.

공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로수는 과도한 가지치기로 햇빛을 제대로 가리지 못했고 빗물받이는 방치되어 있었으며, 공원 바닥 대부분은 물이 스며들지 않는 아스팔트로 덮여 있었습니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쏟아지다가도 숨막힐 정도로 더워지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속수무책인 거죠.

전국 145곳을 직접 발로 뛴 아동청소년 기후위원들의 경고. 환경재단 제공

학교나 상업·주거 공간도 예외가 아닙니다. 문설(13) 기후위원은 "학교에는 나무도 있고 시원하게 쉴 수 있는 공간도 있는데, 주말에는 정문이 굳게 닫혀 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환경은 돈을 내거나 특정 자격을 갖춰야만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위원들이 살펴본 상업시설 내 녹지는 입주민 전용이라 폭염 시 대피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거든요.


지선 앞둔 정당들에 "폭염 피할 녹지 돌려달라"

세이브더칠드런의 아동·청소년 모임 '지구기후팬클럽 어셈블'이 지구의날을 앞둔 2024년 4월 17일 서울 중구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앞에서 기후위기 대응 촉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그렇다면 아이들은 동네가 어떻게 바뀌길 원할까요? 가장 시급한 과제로 '생활권 자연환경 확충'을 꼽았습니다. 집에서 도보 300m 이내에 그늘과 자연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과도한 가로수 가지치기를 제한해야 한다는 겁니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초록이 우거진 녹지를 접할 수 있어야 한고도 강조했습니다. 우선 등하굣길 300m 구간에 도로와 보행로를 따라 이어지는 정원인 선형 녹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방과 후와 주말에는 학교 내 녹지를 지역사회에 의무 개방하고, 유휴공간과 공공시설 부지를 개방형 녹지로 전환해야 한다고도 요구했고요. 공원 내 물이 잘 빠지는 투수성 흙바닥 비율을 30% 이상 확보하고, 학교 반경 500m 통학로의 투수성 포장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는 기준도 제시했죠.

서울 성동구 서울숲 부근에 조성된 선형정원에서 시민들이 쉬고 있다. 서울시 제공

구체적인 제안 내용은 지난달 28일 '아동환경권 보장을 위한 기후안전 생활권 조성 정책 제안서'에 담겨 지선에 나선 지방자치단체장·교육감 후보자들 앞으로 발송됐습니다. 현재까지 정의당이 유일하게 회신을 보냈는데요. "정책 제안에 매우 공감하며 공약으로 적극 수용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다른 후보들도 아이들의 진심에 화답해줄까요? 아동·청소년은 기후 정책을 고민하고 제안하는 주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통령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는 지난달 청소년·청년 기후협의체를 꾸려 기후정책 논의 창구를 마련하기도 했죠.

이미 2024년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5도 상승해 '기후위기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 지금 아동은 부모 세대보다 3배 많은 기후재난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갈 어린이들을 위한 정책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가 오는 선거에서 아이들을 안심시킬 어른들의 공약을 기대해 봅니다.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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