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애의 ‘여백서원에서’] 그리움을 체현하는 인물 - 미뇽

노상 자주 비 오고, 특히 겨울이면 오래 어둡고 침울한 독일에서 햇살 밝고 푸르른 남국에의 동경을 집약적으로 응축해 놓은 것 같은 노래이다. 레몬꽃 피는 나라, 이글거리듯 강렬한 황금빛 오렌지, 푸른 하늘, 정결한 흰 은매화, 진초록 월계수…. 시의 어휘 하나하나에 남국의 특징적인 모습이 그대로 어려 있다. 이 남국의 노래는 슈베르트의 곡, 슈만의 곡에까지 실려, 이제는 세계적인 정서까지 되어 있는 듯하다.
괴테의 작품 안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인물은 미뇽 Mignon이라는 조그만 소녀이다. 미뇽은 뜻조차 ‘조그만’, ‘사랑스러운’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주 조그만 과자 이름도 미뇽이다.) 미뇽은 괴테의 장편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에 나오는 인물인데, 주인공도 아니건만 괴테가 그려낸 인물 중 맨 먼저 떠오르는 인물의 하나이다. 떠도는 유랑극단의 일원으로 자라났다는 것뿐, 출생이 불분명한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등장하는데 어린아이 같은데,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며,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듯한, 깊이 우울하며, 상징이 가득한 신비로운 인물이다. 자기를 “구해준” 주인공 빌헬름에게 아버지를 향한 듯한 애착이 가득하고,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을 향한 그리움만 가득해서 감정 그 자체인 듯한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미뇽이 작품 안에서 부르는 또 한 편의 노래 역시 절절해서, 그야말로 단장(斷腸)의 그리움이 담겨 있다. 베토벤도 차이코프스키도 작곡에 나섰다.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 나의 괴로움을 알리! / 모든 기쁨으로부터 / 떨어져 홀로 / 먼 하늘가를 / 저편을 바라보네. / 아!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알아주시는 이 / 먼 곳에 있네. / 어지러워라 불타고 있다 / 가슴속 송두리째. /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 나의 괴로움을 알리.”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 나의 괴로움을 알리”라고 평범하게 번역할 수밖에 없는 이 첫 구절의 원어(Wer die Sehnsucht kennt, weiss, was ich leide)는 그리움을 ‘속속들이 / 환히 아는’ 이라는 뜻의 ‘안다 kennen’와 지식으로 아는 ‘안다 wissen’라는 미세하지만 큰 차이의 단어를 써서 그리움을 속속들이 알아야 나의 그리움을 짐작이라도 한다는 뜻을, 크나큰 그리움과 답답함을 담고 있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알아주시는 이”에서 역시 알아준다는 환히, 속속들이 안다는 뜻이 들어 있어 사랑이라는 추상의 감정만이 아니라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 대한 갈망과 고독감이 담겨 있다. 얼마나 그리운지 어지럽다고 한다. 불타고 있다고 한다. “가슴속 송두리째”라고 한껏 넓혀 번역한 단어의 원어는 내장 Eingeweide이다. 그리움이 얼마나 크면 가슴이, 내장이 다 타겠는가. 그야말로 장이 토막토막 끊어진다는 단장의 그리움보다도 더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그런 절절함이, 평범한 듯 절제된 언어에 담겨 있어 이 노래는, 그리움을 노래하는 많고 많은 세상의 노래들 중에서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압권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미뇽이라는 스쳐 가는 듯한 작중 인물도, 그다지 긴 묘사가 없건만, 이 두 편의 노래만으로도 독자에게 잊을 수 없게 각인된다. 아니, ‘빌헬름 마이스터’라는 방대한 장편을 굳이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미뇽은 충분히 선명하다. 노래의, 시의 힘을 다시 또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편이다.
이 아름다운 5월, 녹음에 실려, 미뇽의 노래는 더욱 세차게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레몬꽃 피는 나라가 열려 올 듯하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
/chonya@gmail.com
Copyright © 광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