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발견’ 한타바이러스 강타... 대서양 크루즈 ‘죽음의 표류’

박강현 기자 2026. 5. 7.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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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 감염, 3명 사망… 한달째 입항 못해
5일 아프리카 대륙 서쪽 섬나라 카보베르데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인 네덜란드 선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로 구조대원들을 태운 응급 보트가 접근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이 선박에서는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발생해 현재까지 3명이 숨졌다. 스페인 정부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해당 선박의 카나리아 제도 긴급 입항을 허가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AFP 연합뉴스

남극·아프리카·남미를 운항하던 호화 크루즈에서 승객 7명이 잇따라 한타바이러스 감염으로 추정되는 증상을 보여 이 중 3명이 숨졌다. 승객과 승무원 140여 명이 한 달 넘게 배에 갇혀 있는 상황이 되면서 코로나 창궐 초기 크루즈 승객들이 집단 감염됐던 악몽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1일 네덜란드 업체 오션와이드 익스페디션이 운영하는 ‘MV 혼디우스호’가 아르헨티나 최남단 우수아이아에서 출발했다. 23개국에서 온 승객 88명과 승무원 59명이 탑승했다. 남극과 포클랜드(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 제도, 어센션, 트리스탄 다 쿠냐, 세인트 헬레나 섬 등 남대서양의 외딴 섬과 비경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선실 가격은 1인당 최대 2만2000유로(약 37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초호화 상품이었다. 그런데 출항 엿새째이던 4월 6일 70세 네덜란드 남성이 발열·두통·설사 증세를 호소하다 호흡곤란 증상까지 보이다가 닷새 뒤 사망했다. 외딴 항로 특성상 시신은 배 안에 머물렀다.

이후 69세인 그의 아내도 비슷한 증상을 보였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로 긴급 후송되던 중 증상이 악화됐고 4월 26일 남아공 병원에서 숨졌다. 또 이 배에 탔던 독일 여성도 같은 달 28일부터 폐렴 증상을 겪다가 닷새 뒤인 지난 2일 배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여기에 최소 4명의 추가 환자가 발생했는데, 이 중 영국 남성은 요하네스버그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에서 사망한 승객과, 입원 치료 중인 승객 등 2명은 한타바이러스 양성반응을 보였다고 보건 당국은 밝혔다. 이에 따라 선내 사망자·감염자들 역시 한타바이러스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배는 서아프리카 섬나라 카보베르데 해상에 있는데, 현지 당국이 입항을 불허하면서 승객과 승무원들은 한 달째 시신과 함께 배에 갇혀 있다.

이번 감염 사태의 원인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부 보건 전문가는 출항지 아르헨티나에서 옮겨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선내에서 한타바이러스 감염 매개체인 쥐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승객들이 승선 전 아르헨티나에 머무는 동안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5일 아프리카 대륙 서쪽 섬나라 카보베르데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인 네덜란드 선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 혼디우스 홈페이지

한타바이러스는 주로 쥐 등 설치류의 배설물·타액 등을 통해 감염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칠레 등에서 발병하는 한타바이러스의 변종 ‘안데스 바이러스’의 경우 드물게 사람 간 전파 사례가 보고된 적이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으로도 한타바이러스 감염 빈도가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선내에 머무는 일부 승객은 “우리는 단순한 뉴스 헤드라인이 아니라 가족과 삶이 있는 사람들” 등의 소셜미디어 글로 바깥 세상에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타바이러스의 감염 특성과 배라는 제한된 공간, 여기에 코로나 당시 크루즈 승객의 수난까지 소환되며 승객들의 두려움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처 없이 머물던 배의 목적지는 모로코에서 100㎞쯤 떨어진 북대서양의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가 될 전망이다. 카보베르데·네덜란드·스페인 등이 자국 항구의 입항 허가에 난색을 표한 가운데 스페인 보건부가 5일 “국제법과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필요한 의료 역량을 갖춘 카나리아 제도가 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한타바이러스

한국인이 세계 최초로 발견한 병원성 미생물. 1950년대 6·25 전쟁 참전 미군 3200여 명이 출혈·발열 증상을 보이고 일부가 사망하면서 역학조사가 진행됐다. 미생물학자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1928~2022)가 1976년 한탄강 유역에 사는 등줄쥐 폐 조직에서 바이러스를 처음 확인하면서 ‘한타바이러스’로 명명됐다. 감염 초기엔 독감 유사 증상을 보이지만, 중증으로 진행되면 호흡 곤란 등을 일으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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