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민족에 문화 강요하지 않은 몽골… ‘최초의 세계화’ 이뤘다”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책임 편집
“개방성과 유연성, 21세기에도 유효"
“첫째는 개방성, 둘째는 유연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13~14세기 유라시아 대륙에 존재했던 ‘몽골 제국’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에 대해 묻자 김호동(72) 서울대 명예교수가 대답했다. “문화 수준이 높지 않았던 몽골은 다른 민족에 자신의 문화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나라와 민족이 교류하는 장(場)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죠.”

경기 양평 자택에서 김 교수를 만난 계기는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된 3권 분량의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사계절)였다. 세계 첫 번역본인데, 3년 전 영국에서 출간된 원서의 책임 편집자 2명 중 한 명이 바로 김 교수였다. 중앙유라시아사(史)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김 교수는 2011년 하와이의 학술 대회에서 이스라엘 학자인 미할 비란을 만나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를 만들어 보자”며 의기투합했다. 1906년부터 출간되고 있는 케임브리지 히스토리 시리즈는 일국사와 지역사에서도 권위 있는 책이다.
케임브리지대에 넣은 신청서가 받아들여져 주제와 항목을 정한 뒤 세계 유수의 학자 43명에게서 원고를 받고 의논해 수정하는 복잡한 작업이었다. 2000통 가까운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김 교수 본인도 ‘몽골의 제국적 제도’라는 한 챕터를 썼다. 그 결과 ‘현재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가 담긴 책’이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왜 몽골 제국사를 주목해야 하나? 당시 정복을 당했던 중국, 러시아, 이란, 유럽 일부의 입장에서 몽골은 변방의 공포와도 같았다. 그러나 시각을 바꿔 몽골 제국을 중심으로 보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이 제국은 그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내, 문명 통합의 역사를 이뤘습니다. 초기 정복에서 일어난 파괴보다 그 후 오래 지속된 평화기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최초의 세계화’가 이뤄졌다. 몽골 제국으로 인해 동서 간의 거대한 문물·인적 교류가 일어났다. 제국은 멸망한 뒤 크게 중국·러시아·이란으로 삼분(三分)됐다. 이 나라들은 몽골을 경계해 세력을 내륙으로 뻗은 반면, 먼 지역에 눈을 뜬 유럽에선 대항해 시대가 촉발됐다. 다른 세력과 연합해 큰 적을 무너뜨린 것이 제국 흥기의 비결이라면, 흑사병과 소빙하기의 도래가 네트워크를 망가뜨린 것이 쇠퇴의 원인이었다.
김 교수는 “몽골 제국하의 고려는 멸망한 게 아니라 제국 내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복속국으로 살아남았다”며 “지배·피지배의 이원적 관계보다는, 당시 수많은 고려인들이 몽골 제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것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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