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한없이 가벼워지는 법률의 무게
법률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다.

이쯤 되니 어딘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지리멸렬한 야당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아서다. 상당수 법조인은 현재 벌어지는 사법체계 파괴의 시발점으로 2021년 1월28일을 꼽는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헌법상 권력분립·평등원칙 위배 논란이 제기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다수의견 5인(유남석 소장·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수사처와 기존의 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가 문제 된다 하더라도 그 권한 배분 문제는 헌법상 권력분립원칙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면서 “국회의 폭넓은 재량이 인정된다”고 했다.
헌법과 법률에 의해 공소권을 독점하는 검찰을, 검찰 제도를 만든 연혁과 검사의 헌법상 지위에 관한 고려 없이 일반 행정기관 수준으로 격하했다. 사법절차의 핵심 주체를 국회 재량으로 마음대로 재편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한 법조인은 “헌법상의 형사소송체계, 나아가 사법체계를 무너뜨리는 단초를 제공한 결정”이라며 “이때 올바른 판단을 했다면 이 지경까지는 안 왔을 것”이라고 했다.
금이 간 둑은 더 이상 폭우를 막아내기 어렵다. 민주당은 이듬해 검수완박 입법을 통해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대폭 줄이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안건조정위원회를 위장 탈당 수법으로 무력화했다. 재판관 5인은 의원들의 심의·표결권 침해라는 ‘절차적 위법’은 인정하면서도, 법안 통과 자체는 무효가 아니라는 기묘한 결론으로 면죄부를 주었다.
잇몸이 내려앉으면 이가 흔들린다. 검찰을 약화시키자 다음 타깃은 법원이 됐다. 헌재는 “현행법 체계에서 재판소원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크다”는 법조계 우려를 외면한 채 민주당과 발맞춰 재판소원을 시행했다. 그러면서 판사들이 재판할 때 헌법적 사고를 한번 더 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정작 헌재가 무엇보다 견제해야 할 다수세력은 헌재를 조금도 의식하지 않고 있다. 온갖 위헌법률이 난무하는 상황이지만 헌재에 의해 바로잡힐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법률의 존재가 끝없이 우스워지고 있는 두 번째 이유다.
재판관을 지낸 한 인사는 “대통령 수사에 대한 공소취소로 사법부 판결까지 취소해버리는 것은 그릇된 선례일 뿐 아니라 헌법 위반 소지가 농후하다”며 “헌재가 논란이 되고 있는 법률에 대해 향후 내리게 될 결론이 집권당의 뜻과 다르면 어떻게든 헌재도 ‘개혁’하려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87년 민주화 항쟁의 산물인 6공 헌법이, 스스로 탄생시킨 헌재의 방임에 의해 휴지가 되고 있다. 헌재가 자신의 손으로 헌법의 목을 조르고 있다.
장혜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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