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대전환, 미래 지도를 그린다] 11. 꽉 막힌 남북교류, 글로벌 다자협력 중심 인천에서 시작하자
북,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남 노선 강경…협력 난항
한국 전면 나선 협력엔 부담
국제기구 활용 다자협력 필요
인천, GCF·GGGI 본부 위치
공항·항만 물리적 연결망 결합
기후·환경·보건 의제 협력 가능
추진 조직 필요…남북기금 활용도

남북협력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대남노선은 빠르게 경직됐다. 코로나19 시기 국경봉쇄, 2020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2023년 적대적 두 국가관계 선언, 2024년 경의선·동해선 철도 폭파, 2026년 제9차 당대회의 안정공고화·자력갱생 노선 천명은 이를 보여준다. 북한은 헌법에서 민족과 통일 관련 조항을 삭제하고 한국을 제1의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한 것은 기존 방식의 남북협력이 더 이상 그대로 작동하기 어렵게 되었음을 뜻한다.

▲닫힌 양자협력, 새로운 접근 필요
그러나 남북협력 필요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은 여전히 우리 국익과 직결된다. 군사적 긴장과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낮추고, 접경지역의 불안을 관리하며 기후·재난·감염병처럼 국경을 가리지 않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협력통로가 필요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과거 방식의 반복이 아니라 변화된 환경에 맞는 실용적 접근이다.
북한이 모든 국제협력의 문을 닫아건 것도 아니다. 북한은 인천 송도에 있는 녹색기후기금(GCF)을 매개로 한 협력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북한 국토환경보호성은 2019년 GCF 국가지정기구로 등록했고, 식량농업기구(FAO)를 수행기관으로 기후변화 능력배양사업을 신청했다. GCF는 이를 공식 승인했다. 이 사업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의 제재 면제 불허로 실제 추진되지는 못했지만, 한국 주도의 양자협력이 막힌 시기에도 국제기구를 통한 협력은 신청과 승인 단계까지 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사례의 의미는 분명하다. 북한은 협력 자체를 모두 거부한다기보다 한국이 전면에 나서는 방식에 큰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남북협력은 한국 정부가 직접 앞에 서는 방식보다 국제기구를 매개로 기후·환경, 보건, 산림, 재난 대응 같은 비정치적 의제를 활용하는 방향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방정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을 수 있다.

▲인천이 가진 다자협력의 기반
지방정부가 참여하는 비정치적 다자협력은 정치적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지방정부가 GCF, 세계보건기구(WHO), 유엔 기구가 운영하는 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은 한국 정부가 직접 주도한다는 인상을 완화한다. 또한 기후 대응, 보건, 인도주의 지원은 군사·정치 의제와 달리 국제사회가 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해온 분야다.
이 협력의 기반은 인천에 있다. 송도에는 녹색기후기금(GCF)과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본부가 있다. 기후·환경·녹색성장이라는 비정치적 의제를 다루는 국제기구가 한 도시에 모여 있다는 점은 인천의 중요한 자산이다. 여기에 인천공항과 인천항이라는 물리적 연결망도 결합돼 있다. 국제기구, 공항, 항만이 함께 있는 구조는 인천이 한반도 다자협력의 실행 거점으로 기능할 수 있는 현실적 기반이다.
인천과 같은 서해 접경의 국제도시는 남북관계 단절을 남의 문제로 볼 수 없다. 서해의 군사적 긴장, 해상 안전, 항만과 공항을 통한 물류 안정, 국제도시로서의 신뢰도는 모두 한반도 정세와 연결돼 있다. 강원·경기의 접경협력 자산이 물리적 통로가 열릴 때 힘을 발휘한다면, 인천의 강점은 그 이전 단계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송도 국제기구를 매개로 기후·환경·보건 의제를 준비하는 것이 인천의 차별적 역할이다.

▲인천이 준비해야 할 일
인천은 경기와 강원처럼 중장기적으로 평화경제특구를 준비하되,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다자협력을 준비하는 투트랙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천은 우선 비정치적 협력 의제를 미리 설계해야 한다. 산림 복원, 기후재난 대응, 감염병 조기경보, 모자보건과 같은 사업을 송도 국제기구와 연결할 수 있는 구체적 프로그램으로 준비해야 한다. 막연한 평화 담론이 아니라 실제 국제기구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의제와 재원, 협력 구조를 갖춰야 한다.
둘째, 송도 국제기구, 인천공항, 인천항을 하나의 다자협력 기반으로 묶어야 한다. 기후와 보건, 물류와 재난 대응을 결합하면 인천은 한반도 문제를 동북아 협력 의제로 넓히는 거점이 될 수 있다.
셋째, 이를 안정적으로 추진할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 국제기구 협력, 남북협력, 동북아 지방협력, 보건·환경 의제를 함께 다룰 수 있는 광역 차원의 기획 기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자협력이 일회성 구상에 머물지 않고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넷째, 인천시 남북교류협력기금도 새롭게 활용해야 한다. 양자 사업 직접 지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국제기구를 통한 한반도 협력 사업의 분담금이나 매칭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인천의 기금은 막혀 있는 남북교류를 기다리는 돈이 아니라 새로운 협력 방식을 준비하는 전략 자원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시대의 남북협력은 과거 방식의 단순한 복원이 될 수 없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한반도 위험을 관리하고 평화와 공존의 기반을 다시 쌓기 위한 실용적 접근이어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인천의 역할이 시작된다.
/김지영 통일부 산하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 교수
김지영 교수는

통일부 산하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 교수로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한반도 통일을 연구하는 정치학자다. 인하대 중국어중국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워릭대에서 국제정치경제학 석사와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 <트럼프2.0시대,북중러의 전환과 한반도>(2024)를 비롯해 <중국외교담론의 한국적 재구성>, <김정은 시대 정보기술발전의 정치경제적 고찰>, <미중 패권경쟁의 담론과 실제>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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