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왜 한국전쟁을 ‘항미원조’로 기억하는가

특히 눈길을 붙잡은 곳은 ‘항미원조전(抗美援朝)’ 전시실이었다. 중국에서 한국전쟁을 부르는 이름이 바로 항미원조전이다. 미국에 맞서 조선을 도왔다는 뜻이다. 이 명칭 하나만으로도 중국이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해진다. 전시실의 규모도 인상적이었다. 항미원조전쟁관은 3층 박물관의 한 층 절반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컸다. 마오쩌둥부터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중국 지도자들의 관련 발언도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은 시대를 초월해 오래도록 새로우며, 반드시 영원히 계승되고 세대를 이어 발전시켜야 한다.” 시진핑의 말이다.
이 전시를 보며 자연스럽게 임진왜란이 떠올랐다. 중국은 임진왜란을 ‘항왜원조전(抗倭援朝’이라고 부른다. 항왜원조전과 항미원조전. 두 표현은 놀라울 정도로 구조가 같다. 단지 ‘왜(倭)’와 ‘미(美)’ 한 글자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그 한 글자 차이 속에 담긴 역사 인식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표현들은 중국이 한반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준다. 한반도에 위기가 닥치면 중국은 개입해 왔고, 자신들은 조선을 도운 존재였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대학교 연설에서 임진왜란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는 명나라 장수와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 함께 싸웠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중 양국의 역사적 연대를 말했다. 필자는 당시 이 발언을 접하고 적지 않게 놀랐다. 400여 년 전의 서사를 현재 외교의 언어로 끌어와 활용한 것이다. 중국의 역사 인식이 무서울 만큼 원대하고 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박물관에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 중국 영화산업도 한국전쟁을 ‘항미원조’ 서사로 활발하게 대중화하고 있다. 대표작이 2021년 영화 ‘장진호’다. 한국전쟁 중 장진호 전투를 중국의 시각에서 그린 이 영화는 중국에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연이어 관련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 박물관이 항미원조를 역사로 전시한다면, 영화는 그것을 눈물과 감동, 자부심의 이야기로 소비하게 만든다. 전시관은 기억을 조직하고, 영화는 그 기억을 대중의 감정 속에 새긴다.
역사를 어떻게 부르느냐는 단순한 명칭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나라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며,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규정하는가의 문제다. ‘항왜원조’와 ‘항미원조’라는 이름 속에는 중국의 일관된 시각이 담겨 있다. 중국에 한반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방관할 수 없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전시를 보면서 남북관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북한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방치한다면, 북한은 더욱 중국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만약 한반도에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면 중국은 어떤 주장을 펼칠까. 우리 민족의 장래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남북관계 개선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중국은 ‘항미원조’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기억을 만들고, 전시와 영화로 그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있다. 항미원조전과 항왜원조전이라는 말을 들어오긴 했지만, 그저 역사적 명칭 정도로만 여겨왔다. 그러나 중국은 그것을 지금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국가적 기억으로 다루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역사 해석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과거를 읽고,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베이징 군사박물관을 나서며 그 질문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병우 우아포인트연구소 대표 malli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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