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당의 공천,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조광일(남명사랑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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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를 앞둔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현주소는 참담하다.
이 모든 사태의 근저에는 지방자치를 중앙 정치의 전유물로 여기는 '지방선거 정당공천제'가 있다.
정당의 공천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시스템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투명한 폭력에 맞서 '나의 선택권'을 지켜내는 일은 민주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정당공천제라는 낡고 비대한 외투를 벗어던지고 주민의 손에 주권을 돌려주는 것만이 무너진 풀뿌리 민주주의를 재건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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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를 앞둔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현주소는 참담하다. 최근 국민의힘 경남 지역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파열음은, 공당의 시스템이 시민의 선택권을 어떻게 유린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핵심은 결과의 호불호가 아니다. 본선 경쟁력이 입증된 후보를 ‘경선’이라는 최소한의 민주적 검증대조차 세우지 않은 채, 뚜렷한 사유도 소명 기회도 없이 배제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공정’이라는 외피를 빌려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사천(私薦)’이자, 시스템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명백한 구조적 폭력이다.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물리적 타격 없이도 인간의 잠재력을 억압하는 제도를 ‘구조적 폭력’이라 규정했다. 유력 후보를 밀실에서 인위적으로 축출하고 그 과정을 암흑 속에 가두는 행위는 이 폭력의 전형이다. 정당은 이 불투명한 결정을 ‘당헌·당규에 따른 합리적 절차’라는 수식어로 포장하며 유권자에게 수용을 강요한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상징적 폭력’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시스템이 공공성을 잃고 권력의 횡포를 정당화하는 흉기로 변질될 때, 민주주의의 기초인 ‘예측 가능성’은 붕괴된다. 한나 아렌트가 경고한 ‘악의 평범성’ 또한 멀리 있지 않다. 공천 관리라는 명목하에 기계적으로 내려지는 배제 결정, 그리고 그 결정이 지역 공동체의 민의를 어떻게 짓밟을지 고민하지 않는 ‘사고의 결여’가 오늘날 공천 현장에서 목격된다.
이 모든 사태의 근저에는 지방자치를 중앙 정치의 전유물로 여기는 ‘지방선거 정당공천제’가 있다. 우리 동네의 살림꾼을 뽑는 현장이 공천권을 쥔 중앙 권력의 입맛대로 재단된다. 주민을 향해야 할 후보자의 시선은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의 손끝으로 향하고, 지방자치의 실용은 중앙의 정쟁에 휘말려 표류한다. ‘주민을 위한 자치’가 ‘권력을 위한 통치’로 전락한 것이다.
정당의 목적이 선거 승리와 공익 실현이라면, 마땅히 투명한 경쟁을 통해 최적의 인물을 세워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채 민의를 거스른다면, 정당은 공적 기구가 아닌 ‘사적 결사체’로 스스로를 격하시키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에 항거해 무소속 출마를 택한 이들에게 ‘제명’과 ‘복당 불허’라는 족쇄를 채우는 강경 대응은 그 자체로 폭력이나 다름없다. ‘국민의힘’이라는 특정 정당의 위기 여부를 떠나, 하나의 세력이 교체 가능성도 없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암울해 질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당의 공천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시스템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투명한 폭력에 맞서 ‘나의 선택권’을 지켜내는 일은 민주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정당공천제라는 낡고 비대한 외투를 벗어던지고 주민의 손에 주권을 돌려주는 것만이 무너진 풀뿌리 민주주의를 재건하는 유일한 길이다. 민의는 민주주의의 심장이다. 민심이라는 심장 박동을 인위적으로 멈추려 하는 어떤 권력도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조광일(남명사랑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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