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문턱서 만나는 하얀 과육의 달콤한 유혹

박하늘 기자 2026. 5. 6.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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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로컬시대, 충청의 대표 먹거리] 3) 천안 수신멜론
2주 남짓 짧은 수확기… 고당도·부드러운 식감 입소문
40년 재배 노하우·직거래 유통 결합… 지역 대표 과일로
천안 수신멜론. 천안시 제공

봄기운을 느끼려 눈을 감았다가 뜨니 벌써 여름이 코앞이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아쉽지만 과일의 계절이 돌아온 것은 위안이 된다. 5월 하순이면 천안 수신면 도로가는 갓 딴 뽀얀 멜론을 맛보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극상의 당도와 부드러운 과육, 줄줄 흐르는 과즙에 매료된 천안 수신멜론 애호가들은 이 시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2주 남짓 짧은 수확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년 주문 시기를 챙기는 모습도 익숙하다.

'수신'은 이름 자체가 고유 브랜드로 통한다. 최적의 자연환경과 축적된 재배 기술, 직거래 유통 구조가 어우러져 천안을 대표하는 여름 과일로 자리매김 했다. 내년이면 수신멜론 재배 40주년이다. 명성을 잇기 위한 농가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천안 수신멜론은 1987년 수신면 백자리에서 시작됐다. 이상준 씨(82)는 수신멜론의 개척자다. 그는 "새로운 작목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멜론을 접하게 됐다"며 "한일종묘 김종효 박사의 권유로 아산 지역 두 농가와 함께 재배를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수신면은 수박으로 이름이 알려진 곳이었다. 이 씨 역시 수박 농사를 지었다. 멜론은 생소한 작목이었다. 재배 경험이 부족했으며 탈색과 연작 피해 등으로 어려움이 컸다. 같이 시작한 농가들은 중도에 포기했지만 이 씨는 재배를 이어가며 기반을 다졌다. 이후 수신면 백자리를 중심으로 멜론 농가가 하나둘 늘어나면서 20여 농가가 참여한 작목반이 만들어졌다.

이 씨는 초기 파파야멜론을 재배했다. 하지만 상품성과 재배 안정성에 한계가 있었다. 이후 십 수년에 걸친 시험 재배와 품종 교체를 거쳐 현재의 '홈런스타' 품종에 정착했다. 홈런스타는 고당도와 부드러운 식감으로 소비자 호응을 얻었고 수신멜론의 대표 품종으로 자리잡았다. 호남과 충청권 일부에서 홈런스타를 재배하고 있지만 농가가 밀집해 대량 생산하는 곳은 수신이 전국에서 유일하다.

지난달 29일 오후 이상준 씨가 수신면 백자리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멜론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1987년 수신면 백자리에서 처음 멜론을 재배한 수신멜론의 개척자다. 박하늘 기자

흔히 멜론은 그물망이 쳐진 단단한 껍질과 녹색 과육을 상상한다. 수신멜론은 외형부터 다르다. 그물망이 있는 껍질 대신 매끈한 유백색을 띠며 과육도 흰색에 가깝다. 껍질이 얇아 손질이 쉬운 점도 특징이다.

가장 큰 강점은 높은 당도다. 천안시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수신멜론의 평균 당도는 14~16브릭스(Brix) 수준으로 일반 수박(9~12 Brix)보다 높은 단맛을 지닌다. 이상준 씨를 비롯한 수신 농가들은 초기부터 품질 중심의 농사 문화를 정착시켰다. 멜론은 생육 속도에 맞춰 자연스럽게 자라야 당도가 형성된다. 과거 일부 지역에선 생장조절제를 과도하게 사용해 크기만 키우고 당도가 낮아진 사례가 있었다. 수신 농가들은 당도가 오르지 않으면 멜론을 출하하지 않는다. 천안시는 비파괴당도계를 농가에 보급하며 품질 유지에 힘을 보탰다. 고당도·고품질은 수신멜론 농가의 자부심이다.

고당도는 정밀한 재배 기법에서 비롯된다. 멜론은 추운 2~3월 모종을 식재해 5~6월 기온이 상승하기 직전인 5월 하순부터 6월 초 수확을 시작한다. 과실이 커지는 시기 수분과 양분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진다. 이때 당도가 결정된다. 수신에는 초기 물 공급을 최소화해 뿌리가 깊게 자리 잡도록 유도하는 재배 방식이 전해져 내려온다. 황혜림 천안시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 주무관은 "멜론 모종을 정식한 이후 물기를 줄여 뿌리가 스스로 물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흙 냄새를 맡게 한다'고 표현하는데 이를 통해 식물체가 성장하고 과실이 증대될 때까지 토양에서 충분한 영양분을 흡수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물을 주지 않으면 농사를 망치지 않을까 조급해질 수 있지만 수신의 능숙한 농사꾼들은 절묘하게 해낸다. 또 한 주당 착과 수를 2~3개로 제한해 양분을 집중시켜 균일한 품질을 유지한다. 수확 이후에는 콩이나 호밀 등 녹비작물을 심어 토양을 회복 시킨다.

지난달 29일 오후 박인병 수신멜론작목연합회장이 수신면 백자리에 위치한 천안그린농장에서 멜론을 살펴보고 있다. 박하늘 기자

품질 차이는 농가별 재배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박인병 수신멜론작목연합회장은 "같은 품종이라도 농가마다 토질과 재배 방식이 달라 물 관리 방법에 따라 맛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수신면 속창리 이필영 씨는 약 2주 정도 빠르게 심어 수신면에서 가장 먼저 수확한다. 그는 "일교차가 많이 나야 더 달다"고 했다. 소비자들이 여러 농가에서 시식한 뒤 선택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수신멜론의 품질은 자연환경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수신면은 산 아래 위치해 일조량이 풍부하고 주야간 기온차가 커 당도 형성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사양질 토양이 넓게 분포한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조사에 따르면 수신면 전체 면적의 약 80%가 사양토로 배수성과 통기성이 뛰어나다. 멜론은 습기에 약해 물 관리가 중요한데 이러한 토양 조건이 재배 안정성을 높인다.

수신멜론은 대부분 직거래 방식으로 판매된다. 이 유통 구조는 품질 경쟁력과도 연결된다. 직거래 문화도 이상준 씨 때부터 시작됐다. 이 씨는 "초기에는 가락동 시장으로 출하를 했다. 대량의 물량을 요구하면서 판매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농협의 도움으로 로컬매장에도 납품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이때부터 농가들이 자력으로 판로를 개척했다"고 말했다. 이어 "도매시장에 납품할 때는 70~80% 덜 익은 상태에서 출하하는 경우가 많지만 직거래를 하면 충분히 익힌 상태에서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천안 수신멜론. 천안시 제공

수신멜론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1996년 수신면에 들어선 천안상록리조트의 역할도 컸다. 공무원연금공단이 운영하는 이 리조트에는 매년 전국 각지에서 수천 명이 방문하며, 자연스럽게 지역 농산물을 접할 기회가 늘어났다. 리조트에서 판매된 수신멜론을 처음 맛본 방문객들이 재구매로 이어지면서 단골 고객층도 형성됐다.

현재 수신 지역 농가들은 수확 시기에 맞춰 단골 고객에게 문자로 안내하고 주문을 받는다. 수확 기간이 2주 남짓으로 짧고 물량이 제한돼 있어 이 시기를 놓치면 구매가 쉽지 않다. 가격은 작목연합회가 협의를 통해 정한다. 균일한 가격도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 요인이다.

수신멜론은 내년 40주년을 앞두고 있다. 백자리에서 시작된 20여 농가 규모의 작목반은 현재 110여 농가가 참여하는 연합회로 성장했다. 지난해 천안 수신면의 멜론 재배 면적은 74㏊ 생산량 1844톤(천안시농업기술센터)이었다. 박인병 회장은 "소비자가 상자에 적힌 이름을 보고 다시 찾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수신멜론의 맛을 더 널리 알리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제3회 수신멜론축제가 다음 달 6일부터 이틀간 천안 상록리조트 야외주차장에서 열린다. 짧은 계절, 최고의 달콤함을 맛볼 좋은 기회다.

천안 수신면 한 멜론 농가에 멜론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천안시 제공
천안 수신멜론. 천안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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