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의 '심장' 엔진주(株)는 갑자기 왜 불기둥 뿜을까? [이슈체크]

나은수 기자 2026. 5. 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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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데이터센터 발전용 선박엔진 수요 기대 커져
모든 선박엔진이 AI와 관련 있는 것은 아냐..투자기업 선별에 주의 필요


국내 선박용 엔진 기업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AI(인공지능)데이터센터의 전력 인프라 대안으로 선박 엔진이 떠오른 영향입니다. HD현대중공업이 최근 미국 에너지 인프라 개발기업 에이페리온으로부터 6300억원 규모 엔진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국내 엔진주들의 주가가 들썩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업 슈퍼사이클에 더해 AI 훈풍까지 올라타자 일각에선 "엔진주의 전성기가 왔다"는 평가가 나오는데요. 다만 AI 기업들이 찾는 선박 엔진의 종류가 따로 있는 만큼 투자에 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번 이슈체크에서는 AI 전력 인프라 수혜주로 주목 받는 선박 엔진의 종류를 짚어보고, 국내 엔진기업들의 실적이 앞으로 우상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봅니다.

■ AI가 찾는 건 '배 미는 엔진' 아닌 ‘전기 만드는 엔진'

/사진=챗GPT 생성.

선박용 엔진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
됩니다. 선박의 선미(배의 뒷부분)에 장착되어 프로펠러를 구동하는데 사용되는 '주기 엔진(Main Engine)'이 있습니다. 선박을 움직이게 하는 핵심 엔진이라 할 수 있죠. 또 선박 내 각종 시설 장치들을 운영하는데 사용되는 전기를 생산하는 '보기용 엔진(Auxiliary Engine)'이 있습니다. 보통 선박 내 보기용 엔진은 3~5기가 장착됩니다.

또 2행정, 4행정 엔진으로도 구분합니다. 행정은 피스톤이 실린더 안에서 한번 움직이는 과정을 말합니다. 피스톤이 위에서 아래로 한번 이동하면 1행정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아래에 있는 피스톤이 위로 이동하면 1행정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위→아래→위로 한번 왕복해 엔진이 힘을 내면 2행정 엔진이라고 하고요. 두번 왕복을 통해 힘을 내면 4행정 엔진입니다.

2행정 엔진이 4행정 대비 속도는 느리지만 더 강력한 힘을 냅니다. 선박이 움직일 수 있게 큰 힘을 내야 하는 주기 엔진이 보통 2행정 엔진입니다.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보기용 엔진은 4행정 위주입니다.

AI데이터센터들은 원자력, 친환경 에너지, 가스터빈만으로는 필요한 전력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조선용 엔진 기업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HD현대중공업이 AI 기업과 수주 계약을 체결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인데요. HD현대중공업이 납품하게 될 엔진은 '4행정 보기용 엔진'입니다.

배기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4행정 보기용 엔진은 가스터빈보다 빠르게 켤 수 있고 낮은 부하에서 안정적으로 구동된다는 장점이 있다"며 "또 모듈방식이기 때문에 일부 엔진이 고장나더라도 부분 교체 및 정비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국내 선박 엔진 기업들이 모두 보기용 엔진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AI 수혜라는 키워드만 보고 투자에 나섰다가는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는 것이죠. 기업별로 어떤 엔진을 생산하는지 꼼꼼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선박 엔진 산업은 HD현대중공업, HD현대마린엔진, 한화엔진, STX엔진 등 4개 기업이 이끌고 있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사업부 내에 별도의 엔진사업부가 존재합니다.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한 힘센(HiMSEN)엔진을 주력으로 주기 엔진과 보기용 엔진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HD현대마린엔진의 전신은 STX중공업으로, 2024년 HD한국조선해양에 인수됐습니다. 이 회사는 주기 엔진만 생산하고 있어서 AI의 발전용 엔진과 관련성이 낮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HD현대마린엔진은 두산에너빌리티에 가스터빈 블레이드를 납품 중입니다. 가스터빈 역시 AI 전력 인프라 발전의 핵심 설비로 꼽힙니다.

업계 관계자는 "가스터빈 국산화의 일환으로 HD현대마린엔진이 가스터빈 블레이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며 "다만 올해 초부터 납품을 시작한 것이어서 아직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STX엔진은 국내 엔진 기업 중 제품 포트폴리오가 가장 다각화돼 있습니다. 주기 엔진, 보기용 엔진 등 선박 엔진 뿐 아니라 자주포, 장갑차에 탑재되는 방산 엔진도 생산하고요. 또 육상 발전용 엔진도 생산 중입니다. HD현대중공업의 AI 엔진 수주 이후 주가가 가장 빠르게 오른 것도 STX엔진이었습니다.

아직 AI 데이터센터에 엔진을 납품한 이력이 없음에도 이미 증권가에서는 수주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메리츠증권은 STX엔진의 목표주가를 산출하는 과정에서 2028년까지 최소 두건 이상의 AI데이터센터향 엔진 수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배기연 연구원은 "작년 말 민수사업부(보기용엔진 생산 부서)의 가동률은 23.6%로 낮은 편이라서 400~500MW(메가와트급) 데이터센터 4곳에 엔진을 공급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며 "단언하기에는 조심스럽지만 4행정 엔진에 대한 고객사들의 선택 빈도가 높아지면서 충분히 수주를 노려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화엔진은 지난해 말 보기용 엔진 시장 재진출을 선언했습니다. 약 9년 만의 사업 재개입니다. 한화엔진 관계자는 "조선업이 다시 살아난데다 주기 엔진과 보기용 엔진을 패키지로 공급하는 것이 경쟁력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해 사업 재개를 결정했다"며 "올해 하반기 공장을 완공해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한화엔진의 AI 데이터센터용 엔진 수주에 몇가지 걸림돌이 있을 것으로 보는 중입니다. 한화엔진의 제품은 독일사 에버런스(Everllence)의 라이선스를 받아 생산하는데 에버런스는 4행정 보기용 엔진의 후발주자로 꼽히기 때문입니다.

김주희 미래에셋 연구원은 "한화엔진이 라이선스를 보유한 에버런스는 제품 포지셔닝(마케팅) 단계로 후발주자"라며 "경쟁사 대비 마진이 얇고, 가격 결정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은 아쉽다"고 평가했습니다.

■ AI 때문만은 아니다…본업 자체가 튼튼

국내 선박엔진 기업들의 주가는 올해 초부터 꾸준히 우상향해왔습니다. 최근 AI 영향에 주가가 급등하긴 했지만 온전히 AI 훈풍에 대한 기대감 덕분이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우선 이들 기업들의 최근 실적이 큰 개선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향후 실적의 기준이 되는 수주잔고도 넉넉한 상황입니다. 한화엔진은 1분기 말 기준 3년치 이상의 수주잔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HD현대마린엔진의 작년말 기준 수주잔고는 1조889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47.3% 증가했습니다. 엔진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요 엔진 기업들 모두 최소 3년치 일감이 쌓인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눈여겨 볼 부분은 매출처입니다. 단순히 그룹사 일감에 기대는 게 아닌 중국 조선사로부터 엔진 주문이 밀려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화엔진의 지난 1분기 기준 수주잔고의 절반 가량(49%)이 중국 조선사 물량입니다. HD현대마린엔진의 지난해 중국 수출 비중은 45%를 넘었습니다.

중국 조선사가 국내 엔진 기업에 손을 내밀 수 밖에 없는 건 '선주들의 선택' 때문입니다. 후판 등 각종 기자재들은 중국 조선사가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지만 엔진은 선주들이 원하는 제품을 탑재해야만 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 중국 조선사가 건조한 선박에 엔진 고장이 잇따라 나면서 한국 엔진을 선택하는 선주들이 늘었다"며 "국내와 중국 조선사로부터 일감을 받는 만큼 호황을 2배로 누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 실적 우상향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국내 기업들이 수주한 엔진은 실적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을까요. 보통 엔진은 계약 체결부터 납품까지 평균 18개월이 소요됩니다. 지금처럼 일감이 밀려들어올 때는 납품까지 2년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납품까지 1년 이상 걸리는 수주 산업은 진행률 기준에 따라 매출 인식을 합니다. 진행률의 기준은 투입 원가입니다. 예를 들어 1000억원 수주 프로젝트의 계약 기간이 2년(2026년 1월1일~2027년 12월31일)이고 예상되는 투입원가가 800억원이라고 해보겠습니다.



2026년 말에 투입된 원가를 계산해보니 400억원입니다. 투입원가를 기준으로 진행률은 50%가 되므로 매출은 500억원(1000억원의 50%)이 됩니다. 이 외의 다른 비용은 없다고 가정하면 이 사업 연도의 영업이익은 100억원(매출 500억원-투입원가 400억원)입니다.

그런데 엔진 산업은 진행률 기준에 따라 실적을 반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계약 체결부터 납품까지 통상 18개월이 소요되는데도 불구하고 매출 인식은 납품 시점에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2026년 1월1일 1000억원 규모의 엔진 계약을 체결하고 납품 시점이 2027년 6월30일이라면 해당 매출이 일괄적으로 2027년 2분기에 반영된다는 겁니다.

엔진 업계에 따르면 고수익 엔진 수주는 2025년부터 시작됐습니다. 이 수주분이 실적에 반영되는 건 올해 2분기부터입니다. 엔진 업계 관계자는 "아직 고마진 엔진 수주가 실적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구조적으로 올해 하반기부터 실적이 크게 뛰어오르고 우상향 기조가 2028년까지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은수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