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자리 위협하는 세상…4가지 '진짜 공부'에 아이들 미래 달렸다

2026. 5. 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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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무엇을 가르쳐야하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지금 한국 교육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미친 공부 경쟁을 끝장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만 공부를 소홀히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잘 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한 결과가 사교육 몰입이다. 개인은 최선을 다했으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다.

그 결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잘 드러난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학업 성취는 최정상권이다. 2022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 청소년은 OECD 회원국 중 수학 6위, 읽기 4위, 과학 5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청소년 자살률 OECD 최상위라는 오명도 안고 있다.

그런데 이 익숙한 풍경 위에 큰 균열이 생겼다. 인공지능(AI) 대혁명이다. AI를 접해본 학부모들은 직감한다. 이것이 우리의 일을 상당 부분 대체하리라는 사실을. 나아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의 일터를 완전히 바꾸게 될 것이다. 그 세상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능력을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AI가 가장 잘하는 일에 자녀를 더 깊이 밀어넣고 있다. AI 시대에 가장 빨리 소멸하는 가치에, 가족의 모든 자원이 통째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 비인지 기능 가치의 가속화

AI가 인간의 인지능력을 빠르게 대신해 간다. 그렇다면 인간은 다른 방향으로 강점을 찾아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제 어떤 공부를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필자는 지난 15년간 코넬대, 홍콩과기대, 연세대에서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남극을 빼고 모든 대륙 출신을 만나 왔다. 각 나라 교육제도가 만들어낸 따끈따끈한 대학생들의 특성을 살펴봤다.

학습 능력은 어디서나 최상위권 수재답게 뛰어났다. 그런데 차이가 분명한 영역이 있었다.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발언 능력을 넘어 협력·소통·자존감·정서적 안정성 같은 비인지 기능 전반에서 격차가 컸다.

주관적 평가지만 아시아권(특히 한·중·일) 학생의 비인지 기능이 전반적으로 부족했다. 흥미롭게도 시험 점수는 그 순서가 거의 정확히 뒤집힌다. '수업 시간엔 꿀 먹은 벙어리더니, 어떻게 시험은 잘 보지?' 하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주입식 교육은 시험을 잘 보는 학생을 만든다. 그러나 새 질문을 만드는 학생, 깊이 협력하는 학생, 자기 길을 스스로 정하는 학생까지는 키워내지 못한다. 이 비인지 능력의 가치는 노동시장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200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헤크먼은 비인지 기능이 인지 기능 못지않게 학력·소득·범죄율 등 삶의 결과를 좌우함을 보여줬다. 미국 해밀턴 프로젝트(Hamilton Project)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흐름을 보여줬다.

첫째, 노동시장의 수요가 변했다. 1980~2012년 사이 미국에서 사회·서비스 기능 집약 일자리는 약 16% 늘고, 단순 반복 일자리는 약 10% 줄었다. 수학 집약 일자리도 2000년대 이후 정체다. 인지로만 풀리는 일은 줄고 사람을 다루는 일이 늘었다. AI로 인해 이 흐름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둘째, 비인지 능력이 학력과 삶의 결과를 좌우한다. 비인지 하위 25% 학생의 대학 졸업 확률은 상위 25%의 약 3분의 1에 그친다. 같은 시험 점수, 같은 환경에서도 자기 조절·끈기·성실성·정서적 안정성이 약한 학생이 더 일찍 학교를 떠나고 더 낮은 자리에 머문다.

채용시장도 마찬가지다. 미국 고용 관리자 절반 이상이 신입 졸업자에게 의사소통, 세심한 업무 처리(attention to detail) 등의 비인지 능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인지 능력 부족을 지적한 비율은 그 절반 이하였다. 회사도 직원의 비인지 기능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셋째, 비인지 기능은 가르쳐진다. 학교의 비인지 향상 프로그램은 비인지 역량과 학업 성취를 동시에 끌어올리고 행동 문제도 줄인다. 특히 영유아기 개입 효과는 평생을 따라간다. 미국에서 양질의 영유아 개입 수혜자들은 수십 년 뒤 고교 졸업률, 정규직 고용, 활발한 신체 활동이 모두 더 높았고 범죄율은 더 낮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학교는 인지 기능에만 매달리고 있다. 어긋난 방향이다.

◆ 한국 공교육의 한계

한국 공교육은 산업화·추격 시대에 적합했다. 표준화된 숙련 노동을 대규모로 빠르게 공급했다. 문제는 추격경제와 혁신경제는 종류가 다른 게임이라는 점이다. 추격에는 정답이 있다. 누가 먼저 정확히 따라 하는가의 게임이다. 혁신에는 정답이 없다. 누가 새 질문을 만드는가의 게임이다. 대한민국의 산업은 이제 혁신경제인데, 여전히 옛사람을 길러내고 있다. 표면적 개정에도 불구하고 한국 공교육의 핵심인 수능, 내신, 시험 중심 평가는 1990년대와 본질적으로 같다. 오히려 수능은 더 까다로워졌고, 아이들을 단시간에 문제를 푸는 기계로 만드는 작업만 더 강해졌다. 학원은 그 공교육이 만든 게임의 정점에서 시험 점수를 더 정교하게 끌어올리는 강력한 도구다.

최근 정부는 AI 교육을 적극 도입하기 위해 노력 중이나 정작 'AI 시대에 우리 아이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에는 답하지 않고 있다. 필자는 지난달 OECD가 주최한 '디지털 교육 전망(Digital Education Outlook) 2026 콘퍼런스'에 참여했다. 글로벌 정책 현장에서도 "AI를 어떻게 활용해서 가르칠까"만 물었다. 'AI 시대에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그래서 무엇을…네 가지 진짜 공부

그럼 도대체 무엇을 배워야 할까. 외우는 공부의 반대편을 정리하면 네 가지다. '함께하는 공부'와 '몸으로 하는 공부'(예체능)가 가장 비어 있는 두 영역이다. 이에 더해 '판단하는 공부'와 '자기를 묻는 공부'를 제시한다.

첫째 '함께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이것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 힘이며, AI 시대에도 그 중요성은 줄지 않는다. 하버드대 연구팀이 4인 팀(리더 1명+팀원 3명)에게 난제를 풀게 한 실험이 잘 보여준다. 좋은 리더 팀은 53%, 나쁜 리더 팀은 10%만 풀었다. 더 흥미로운 점은 팀원이 인간일 때와 AI 에이전트일 때 이상적인 리더 자질이 같았다는 것. 인간 팀의 좋은 리더는 AI 협업 팀에서도 좋은 리더다. 핵심 예측 변수는 IQ도 언변도 아닌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었다.

우리에겐 약자 동행도 생소하다. 미국 대학에서 처음 강의를 맡았을 때다. 학교는 청각장애 학생 한 명을 위해 매 수업에 수화통역사를 동석시켰다. 학교는 그 한 명을 위해 통역사 한 사람의 인건비를 기꺼이 썼다. 우리에게 이 같은 배려가 가능한가? 발달장애나 지체장애가 있는 아이도 학교에서 당당히 리더로 설 수 있는 사회. 그런 나라가 부럽다.

둘째는 '몸으로 하는 공부'다. AI가 가질 수 없는 것은 몸·감각·살아 있는 경험이다. OECD는 예술을 인간 번영의 필수 역량으로 규정한다. 심지어 예체능 교육은 인지 능력도 함께 끌어올린다. 가령 지난해 미국 ABCD스터디의 1만1000명 종단 분석에서 2년 이상 음악 훈련을 받은 아동의 인지·언어 능력이 더 크게 향상됐다. 몸을 쓰면 뇌가 함께 자란다. 그러나 우리의 음악실·미술실·체육관은 점점 입시 자습실로 바뀌고 있다. AI 시대에 몸으로 하는 경험과 감각의 가치는 더 중요해질 것이다.

셋째는 '판단하는 공부'다. AI가 그럴듯한 말을 생산할수록 '이게 더 낫다' '이게 참이다'를 가려내는 안목이 중요해진다. 즉, 분별력이다. 정보가 부족하던 시대의 공부가 모으는 일이었다면, 정보가 넘치는 시대의 공부는 고르는 일이다.

넷째는 '자기를 묻는 공부'다. AI는 주어진 과제를 잘 시행하니 인간의 몫은 무엇을 할지 정하는 쪽으로 이동한다. 문제 발견, 목표 설정, 목표 달성 의지. 한국 교실에서 가장 비어 있는 영역이다. 내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답이 없으면 혁신가가 되지 못한다.

◆ 교육과정과 입시 개혁도 필요하다

입시를 아무리 바꿔도 교육열은 가시지 않는다. 상위권 대학에 대한 열망은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개혁해야 진정될 수 있다. 그러나 입시제도 개혁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바꿀 수 있다. 외우는 공부만 측정하면 학교는 외우는 공부만 가르친다. 입시가 비인지·협업·분별력·자기 방향을 측정하기 시작해야, 학교가 그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미 다른 나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미국 명문대에서 SAT만 보는 학교는 거의 없다. 추천서·에세이·활동·인터뷰가 함께 들어간다. 영국 옥스브리지의 심층 면접은 1시간 가까이 걸리고, 면접관은 정답이 아니라 학생의 사고 과정을 본다. 핀란드는 표준화 시험보다는 교사의 정성평가에 의존한다. 부작용은 다중 평가자, 공개 기준, 외부 감사 등의 절차로 걸러낸다.

◆ 부모가 오늘부터 할 수 있는 것

입시와 학교가 바뀌기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부모가 먼저 시도해보자. 첫째, 매일 1시간의 신체 활동이다. 미술·운동·악기 연습 무엇이든 좋다. 둘째, 가족 식탁 토론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좋은 칼럼이나 책을 두고 가족이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를 만든다. 함께하는 공부와 판단하는 공부가 동시에 길러진다. 이번 주말, 이 칼럼을 읽고 가족이 토론해보기를 제안한다. 셋째, 자기 주제의 글쓰기다. 아이가 스스로 정한 질문에 대해 한 학기에 한 편의 글을 끝까지 써 내도록 한다. 자기를 묻는 공부의 출발점이다.

교사와 교수도 바뀔 수 있다. 필자는 이번 학기 연세대 강의에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경제학부와 의예과를 합반하고, 모든 수업을 토론 중심으로 바꿨다. 뼈대는 세 가지다. 첫째는 사전 학습. 학생들은 내가 미리 소개한 책·칼럼·영상으로 공부하고 온다. 둘째는 배틀 토론. 의대생과 경제학도가 섞이거나 맞붙는 3대3 팀이 매주 정책 쟁점으로 부딪친다. 셋째, 마니토다. 매달 의대생과 경제학도가 무작위로 짝지어져 직접 만나 다른 관점으로 대화한다.

이 시도에서 발견한 것이 있다. AI 시대 교실에 있어야 할 것은 인간이 함께 생각하고, 부딪치고, 교류하는 일이다. 단순 지식 전달은 이미 AI가 더 잘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자기 입장을 세우고, 근거를 가려내며, 입장이 다른 상대와 토론하는 일은 AI 시대에 더욱 귀해질 인간의 자리다.

경제학부와 의예과를 합반한 연세대 토론수업 장면.경제학도와 의대생이 섞이거나 맞붙는 3대3 팀이 매주 정책 쟁점으로 부딪친다.

김현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인구와 인재 연구원장)

[김현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인구와 인재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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