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사자상도 없다…전쟁이 할퀸 미술축제
감독 별세·심사위 사퇴 등 파행
이란 불참…러시아관 제한 운영
“130년만에 가장 위태로운 출항”
한국관 전시엔 한강 작가 협업
4·3 사건 다룬 ‘더 퓨너럴’ 선봬


베니스 비엔날레가 늙은 뱃사공이 젓는 낡은 노의 삐걱임 같은 잡음과 휘청임 속에 6일(현지 시간) 막을 올렸다. 행사를 지휘하던 총감독이 갑자기 별세한 가운데 이란의 불참 선언, 러시아관의 제한적 운영, 심사위원단 전원 사퇴와 황금사자상 폐지까지 겹치며 130년 역사상 가장 위태로운 출항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엔날레는 언론 및 미술 전문가를 위한 이날 사전 공개를 시작으로 11월 22일까지 약 6개월간 열린다.
올해로 61회를 맞은 베니스 비엔날레는 카메룬 태생의 큐레이터 코요 쿠오(1967∼2025)가 사상 첫 아프리카 출신 여성 총감독으로 선임됐으나, 전시를 준비하던 중 지난해 암으로 별세했다. 이후 큐레이터 자문단이 쿠오 총감독이 정한 ‘단조로(In Minor Keys)’라는 주제를 이어받아 전시를 완수했다. 음악에서 빌려온 ‘단조’의 개념은 슬픔·우울의 정서와 함께 비주류·소수를 가리키면서도 위로·회복·초월의 의미를 담고 있다. 쿠오 총감독은 생전 인터뷰에서 “소음과 혼란 속에서 놓치고 있는 낮은 주파수, 작은 목소리, 감각적 리듬에 귀 기울일 것을 제안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올해 초 비엔날레재단 측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사실상 4년간 퇴출했던 러시아를 은근슬쩍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비엔날레재단에 제공하는 수백만 달러의 지원금을 회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러시아 참여를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러시아가 가까스로 국가관을 열었지만 일반 관람객에게는 공개하지 않고 외벽 영상 상영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이스라엘관 역시 기존 상설관이 아닌 외부 공간으로 옮겨졌다. 이란은 최근 비엔날레 불참을 공식 통보했다. 설상가상 정치적 논란이 거세지자 개막을 앞두고 심사위원단이 전원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세계 대전으로 열리지 않은 적은 있으나 이 같은 파행은 130년 역사상 처음이다. 결국 비엔날레 측은 개막일에 발표하는 ‘황금사자상’을 폐지하는 대신 폐막일에 일반 관객 투표로 수상자를 결정하는 ‘관객상’을 신설하기로 했다.
올해 본전시 참여작가는 111팀으로, 역대 최다였던 2024년의 331팀에 비해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참여 작가의 90% 이상이 생존작가이며, 절반 이상이 중견 세대로 구성된 데는 작고한 쿠오 총감독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한다. 한국 국적으로는 요이(39)가 유일하다. 서울에서 성장해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예일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뉴욕에서 활동하다 2021년 제주로 이주했다. 작가는 이웃 해녀와 교류하며 바다와 여성의 관계를 탐구하고, 해녀의 숨 참는 행위를 노동·관계·생존을 잇는 언어로 치환한 작품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계 작가 마이클 주(60)와 갈라 포라스-김(39)이 본전시에 초청됐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본전시와 함께 국가관 전시, 외부 특별전으로 이뤄진다. 한국관은 2022 싱가포르 비엔날레 공동 예술감독을 지낸 최빛나 큐레이터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를 주제로 최고은, 노혜리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최고은의 ‘메르디앙’은 수도 설비용 동파이프가 한국관 내부와 외부를 관통하며 순환과 치유를 암시한다. 노혜리는 얇고 빳빳해 속이 비치는 오간자 직물 4000여 개로 공간을 채워 애도, 기억, 전망 등 8개 스테이션을 구성한다. 여기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이 설치 작품 ‘더 퓨너럴’(The Funeral·장례식)을 선보여 주목된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모티브가 된 꿈속 장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하얀 눈밭 위에 놓인 타버린 숯 같은 검은 조각들은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들을 상징한다. 농부 김후주, 작가 겸 가수 이랑, 사진작가 황예지, 예술가 크리스티앙 니얌페타 등이 ‘펠로우’로 초청돼 함께한다.
다른 나라 국가관 전시로 최재은 작가가 일본관 협업자로, 조국현이 탄자니아 국가관 초청 작가로, 홍은주가 대만관에서 오프닝 퍼포먼스에 초청됐다.
비엔날레재단의 공식 승인을 받은 외부 병행전시로 이우환 개인전 ‘관계의 미학’이 산마르코 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최근 작고한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행위예술로 유명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등의 전시도 기대를 모은다. 자연과 시간의 조각가로 불리는 심문섭의 개인전은 카파카농에서 열리고, 비엔날레 파트너인 주얼리 브랜드 불가리 파빌리온에는 한국계 캐나다 작가 로터스 강의 전시가 진행된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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