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K·HD현대, 23년 만에 베네수엘라 원유 도입 추진

안시욱/신정은/노유정 2026. 5. 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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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수입방안 논의
40만 배럴 수준 샘플 테스트
황 함량 높고 끈적한 초중질유
국내 정유사, 수년간 설비 고도화
열분해공정 통해 원유 정제 가능
BP·렙솔 등 메이저들도 가세

정부와 정유업계가 러시아에 이어 세계 최대 원유 매장국인 남미 베네수엘라 원유 도입을 추진한다.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입처를 다변화하기 위한 조치다. 한국이 베네수엘라 원유를 도입하는 건 23년 만이다. 베네수엘라는 한때 ‘고립된 산유국’이었지만 미국·유럽 대형 석유회사의 러브콜을 받는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샘플 테스트 후 대규모 도입할 듯


6일 정부 및 정유업계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부와 한국석유공사, SK에너지, HD현대오일뱅크는 최근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입의 사업성 및 설비 적용 가능성을 논의했다. 미국 정부가 이란과의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세를 억제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원유 제재를 일시 해제한 데 따른 것이다.

SK에너지가 30만 배럴, HD현대오일뱅크가 10만 배럴 수준의 베네수엘라 원유를 도입해 샘플 테스트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물량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다국적 원자재 유통기업 트라피구라를 통해 거래될 전망이다.

베네수엘라산은 황 함량이 높고 끈적한 초중질유로 정제 과정이 까다로운 편이다. 중동발 원유 운반선이 한국에 도달하기까지 약 2주가 걸리는 데 비해 파나마운하 또는 희망봉을 돌아오는 남미발 운반선은 30일 이상 걸린다는 것도 단점이다. 이런 이유에서 국내 정유사는 고유가 시기이던 2001~2003년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도입했다가 수십 년간 수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정유사는 최근 수년간 설비 고도화로 중질유 분해시설을 개선한 만큼 베네수엘라산 원유도 정제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정유사 중 유일하게 충남 대산공장에 열분해공정(DCU)을 보유하고 있다. 이 설비는 중질유와 폐플라스틱 등을 고온에서 열분해해 석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상압증류시설(CDU) 대비 중질유 분해시설 비중인 설비고도화율은 HD현대오일뱅크 42%, 에쓰오일 39%, GS칼텍스 34%, SK에너지 25%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는 수년간 투자를 통해 아스팔트와 벙커C유 등 찌꺼기 기름에서도 휘발유를 추출하는 기술을 갖췄다”며 “세계적으로도 베네수엘라 원유를 제대로 정제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과 미국 정도뿐”이라고 말했다.

 ◇러브콜 쏟아지는 베네수엘라

정부와 정유사가 다시 베네수엘라 원유 카드를 꺼낸 것은 산유국으로서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은 약 3030억 배럴로 세계 1위다. 글로벌 벤치마크 유가 대비 디스카운트(할인) 폭이 커 저렴한 것도 장점이다.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이 축출된 이후 자원 시장이 서방 자본에 개방돼 글로벌 오일 메이저 기업도 유전 복원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오일프라이스닷컴 등에 따르면 지난달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량은 하루 123만 배럴로 전월 대비 14% 증가했다. 2018년 이후 최대치다. 주요 수출국은 미국이 하루 44만5000배럴로 가장 많다. 인도가 37만4000배럴, 유럽이 16만5000배럴로 그 뒤를 이었다.

국제 석유회사도 베네수엘라 재진입을 검토 중이다. 미국 석유·가스 기업 헌트오버시스와 크로스오버에너지는 지난달 베네수엘라 핵심 중질유 지역인 오리노코 벨트 개발 지역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렙솔,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 유럽 메이저 회사도 사업을 확대하거나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베네수엘라 원유 도입을 비롯해 수입처 다변화를 위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전 세계에 단발적으로 나오는 스폿성 원유 매물 정보를 취합해 각 정유사에 공유하는 식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지나친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이 지난해 수입한 전체 원유 가운데 중동산이 차지한 비중은 69.1%에 달했다.

다만 미국이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다시 제재할 수 있다는 지정학적 리스크는 남아 있다. 베네수엘라의 정유 및 항만 인프라 노후화로 선적이 지연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으면 추가적인 정제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베네수엘라산 제품에 대한 유럽연합(EU) 등의 2차 제재 가능성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안시욱/신정은/노유정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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