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심야 책방에 간다는 것

2026. 5. 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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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도시 스토리 텔러
김은아 도시 스토리 텔러

책 한 권이 열어준 자기 자신의 자리
아무도 묻지 않기에 더 따뜻한 공간
등불 아래 잠시 내려놓은 삶의 무게
먼 길 끝에서 만난 가장 조용한 위로


지방의 한 소도시에서 심야책방이 열렸다.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들고와 저녁 8시부터 밤 12시까지 같은 공간에서 읽는 것이다. 열댓명이 모인 자리. 모두들 여성으로 절반은 인접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고, 지역민들은 몇 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여성이 있었다. 운전해도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에서 왔다. 책을 읽고 싶어서라고 했다. 중간중간에 간단한 프로그램이 있어 실제 책을 읽을 시간은 두세시간 남짓이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다는 아닌 듯 했다. 책은 도구에 가까웠다. 그 핑계가 있어야 갈 수 있는 어떤 자리,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직원도 아닐 수 있는 자리. 그런 자리를 찾아 먼 길을 찾아온 사람의 눈빛이었다. 간절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건 갈급함에 가까웠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이 조심스러웠고, 활자에 시선을 두는 자세가 단정했다. 그리고 얼굴이 빛난다. 마치 오래 비워두었던 자리에 천천히 자기 자신을 앉히는 사람처럼. 옆자리의 사람이 무슨 책을 읽는지도, 어디에서 왔는지도 묻지 않은 채 그저 자기 책장 안으로 깊이 들어가 있었다.

심야 책방은 묘한 자리다. 누가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 직업도 사연도 묻지 않는다. 다만 책 한 권을 들고 같은 등불 아래 앉는다. 도시는 익명성 때문에 차갑다고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익명성이 오히려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채로, 그저 하나의 사람으로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 그 여성이 가야 했던 이유가 거기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가족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무엇으로 호명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호명되지 않는 자기 자신은 점점 삶의 무게에 압도될테니 말이다.

오래 전에 잠시 고슴도치를 키운 적이 있다.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있어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지만, 먹이를 주는 내 앞에서는 가시를 내 보이지 않았다. 따뜻한 물로 씻기고 물에 넣어주면 물 위를 평온하게 수영도 한다. 뽀족한 가시만 보던 사람은 결코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이다. 고슴도치가 목욕도 하고, 수영도 하다니 말이다. 가시 안쪽에 그렇게 보드라운 털과 우아한 결이 있다는 사실은, 고슴도치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만이 안다.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그 여성도 어쩌면 한 마리 고슴도치였을지 모른다. 돌아갈 시간을 생각하면 깊은 밤이 되겠건만, 그럼에도 빛나던 안도의 표정으로 책을 넘기던 그 여성은 그 순간 가시 안쪽으로 접어둔 그녀 자신을 잠시 내놓았을 것이다. 가족도, 직장도 보지 못한 결을 책방의 등불 아래에서만 잠시 펼쳐 보이는 사람.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밤이었기에, 그녀는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조용히 기대 앉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고슴도치의 우아함’에 나오는 르네와 같다. 파리의 부유층만 사는 아파트 관리인. 평생 자신을 평범하게 위장하며 살아온 사람.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안쪽에는 다른 세계가 있다. 책과 사유로 채워진, 조용한 방. 르네는 그 안에서만 자신이었다. 세상으로 향했던 가시를 눕혀놓고, 안쪽 방에서는 그저 한 사람으로서 삶을 사유했다.

도시는 르네를 그저 아파트 관리인으로만 보았다. 도시는 사람을 역할로 인식하는 데 능숙하다. 그리고 그 능숙함이 때로는 한 사람의 본질마저 가려버린다. 아파트의 수위, 식당의 종업원, 건물 청소부. 우리는 그들의 거죽만 보고 지나친다. 가시 너머의 부드러운 털을, 그들의 안쪽 방을, 그 사람이 평생 길러온 결을 보지 않는다. 보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르네를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이 관리인으로 있는 아파트에 이사 들어온 일본인 노신사, 그는 일본에서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파트 입주민이지만, 가족들의 진정한 관심과 이해를 받지 못한 채 자라온 13세 천재 소녀. 알고자 하는 이에게는 보인다. 알아봄이라는 것이 그렇다. 수십 년을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며 일터에서 먹고 자던 그녀를 이들은 금세 알아볼 수 있다.

알아봄을 받은 르네는 달라진다. 평생 외출이라곤 하지 않던 그녀가 외출을 하고,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기도 한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평생 가시 안쪽으로 접어두었던 자기 자신을 비로소 내어 보이는 것. 알아봄은 관념이 아니라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도 된다는 확인을 받는 것. 그러한 확인은 거창한 말이나 어떤 행위가 아닌 그저 자신을 제대로 봐 주는 한 사람의 시선으로 완성된다.

심야 책방에서 눈인사를 나눈 그 여성도, 르네도, 어쩌면 같은 자리에 있었는지 모른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우리는 누군가의 무엇이 된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상사, 누구의 고객, 누구의 학부모. 그 사이에서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 시간이 너무 짧아지면 사람은 자기 안쪽 방을 잃어버리고,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밤이 깊어도, 먼 거리라도 그런 자리를 찾아가는지 모른다. 닿지 않으면서 함께 있는 자리. 서로를 알려 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 열댓 명이 같은 등불 아래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그 밤처럼. 그 두세 시간이 그들의 일상에 온기를 주었을 것이다.

도시가 따뜻해진다면, 그것은 거창한 무엇 때문이 아닐 것이다. 화려한 건물 때문도, 빛나는 직책 때문도 아닐 것이다. 누군가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알아본 적이 있는가. 알아본 사람도, 알아봐 준 사람도, 그날 이후 도시를 다르게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심야 책방에서 만난 사람들을, 특히 그 여성의 안쪽 방을, 다 알지 못한다. 다만, 한 사람을 알아보았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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