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1000원에 ‘외상도 OK’…광주 대인시장 ‘해 뜨는 식당’의 따뜻한 기적”

김석희 기자 2026. 5. 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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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국·반찬 3가지로 차려진 백반 제공
김윤경 대표, 어머니 뜻 이어 '고귀한 노동'
‘공짜 밥’ 주눅 들지 말라고 1000원 받아
"매일 바뀌는 메뉴에 맛도 좋아" 극찬 일색
올 들어 경기 침체 심해지며 손님 늘어나
6일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 1000원 백반집 '해 뜨는 식당'에서 손님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판영석 기자

오마카세와 미식 탐방이 유행하는 시대지만, 누군가는 당장의 한 끼 해결을 걱정하는 현실이다.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 내에 자리한 '해 뜨는 식당'은 15년째 '1000원'이라는 가격으로 흰쌀밥과 국, 반찬 3가지로 구성된 백반을 제공하며 많은 이들의 끼니 걱정을 덜어주고 있다.

6일 영업 시작 전인 오전 11시부터 식당 앞에는 어르신들의 긴 대기 줄이 이어졌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곳이라서인지, 어르신들은 줄을 서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서로 안부를 건네는 이색적인 풍경을 보였다. 오전 11시 30분께 문이 열리자 내부는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찼고, 자리가 없어 입구에서 기다리는 이들도 이어졌다.

이날 메뉴는 밥과 따뜻한 시래기 된장국, 오이무침, 양파무침, 김치, 그리고 김이었다. 이 식당의 메뉴는 매일 변하지만 가격은 15년째 변함없는 '1000원'이다.

이 식당의 김윤경(53) 대표는 테이블을 돌며 밥과 반찬이 부족하지 않은지 살뜰히 챙겼고, 곳곳에서는 "진짜 맛있네", "좀 더 주세요"라는 정겨운 말들이 이어졌다.

식당이 왁자지껄한 활기를 띠는 가운데, "밥은 먹고 싶은데 수중에 돈이 없네"라는 한 어르신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김 대표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고, 외상으로 드시고 다음에 가져오세요"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6일 '해 뜨는 식당'에서 제공된 1000원 백반. 판영석 기자

이처럼 넉넉하고 따뜻한 인심 덕분에 작은 규모의 식당은 매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평일 하루 방문객은 약 120명, 고기나 생선 반찬이 나오는 토요일에는 140명에 달해 하루에만 20㎏ 이상의 쌀이 사용된다.

김 대표는 "토요일은 무료급식소가 쉬기도 하고, 고기 반찬을 제공해 더 많은 분이 찾아오신다"며 "물가는 오르고 경기도 어려워졌는데 후원 마저 많이 줄어든 탓에 벅찰 때도 있지만, 손님들이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하실 때면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시장 상인들과 단골손님들에게 이 식당은 단순한 밥집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식당 앞에서 50년째 건어물을 팔고 있는 최모순(78) 씨는 "노인들이 단돈 1,000원에 눈치 보지 않고 배를 채울 수 있으니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만족도는 천 점 만점"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년 넘게 이곳을 찾고 있다는 박춘순(75)씨 역시 "된장국이 참 맛있고 소화도 잘된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이 나와서 시장 구경도 하고 부담 없이 식사도 할 수 있는데 이것보다 좋은 일이 어디있나"며 미소를 지었다.

김 대표는 누군가의 주린 배를 채워주고 하루를 살아갈 힘을 보태는 일, 즉 '사람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 고귀한 노동임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곳은 지난 2010년, 김 대표의 어머니인 고(故) 김선자 씨가 처음 문을 열었다. 김선자 씨는 가난으로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했던 아픈 기억을 바탕으로, 누구나 부담 없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뜻에서 식당을 시작했다.
6일 1000원 백반집 '해 뜨는 식당' 김윤경 대표가 손님들에게 제공할 음식을 담고 있다. 판영석 기자

가격을 아예 '무료'로 하지 않은 이유는, 혹여 공짜 밥을 먹는다는 이유로 주눅 들지 않고 단돈 1000원으로 당당하게 이용하라는 깊은 배려에서였다. 2015년 대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면서도 식당을 부탁한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막내딸이자 현재 대표인 김씨가 그 뜻을 이어가고 있다.

감당하기 힘든 적자를 메우고 식당의 불씨를 지키기 위해 그는 하루를 '1인 2역'으로 나눠 쓰고 있다. 식당에 나가기 전 본업인 보험설계사로 잠시 일을 보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2~3시까지는 앞치마를 두르고 식당을 책임진다. 이후 다시 회사로 돌아가 고객을 만나는 이중생활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고된 일정을 보내고 있지만 주변의 따뜻한 배려와 도움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여기에 이웃 상인의 든든한 품앗이도 더해졌다. 식당 앞 맞은편 홍어가게 사장은 식당 문이 열리자마자 마치 자기 일처럼 소매를 걷어붙이고 들어와 국을 나르며 바쁜 일손을 거들었다.

이처럼 식당을 지탱하는 온기는 비단 주변 이웃들에게서만 그치지 않는다. 이 식당이 15년간 문을 닫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식당 벽면을 빼곡히 채운 이름들처럼 전국 각지에서 마음을 보태준 시민들의 연대 덕분이다. 식당의 메뉴는 그날그날 들어오는 후원 재료에 따라 정해진다. 이날은 오이가 들어와 오이무침이 올랐다.

하지만 김 대표는 최근 얼어붙은 경기 탓에 후원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하소연했다. 매일 100명이 넘는 이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점점 버거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이 벅찬 무게를 버텨낼 수 있게 해준 원동력 역시 결국 다 함께 나누고자 했던 공동체의 마음이었다"며 "쌀과 김치 같은 식자재부터 가스비까지, 십시일반 보태는 시민과 기업, 관할 동구청의 따뜻한 손길이 이 작은 식당을 우리 사회 '나눔의 상징'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경제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어머니의 유언이신 만큼 현명하게 헤쳐 나가보려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