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여행자] 화려한 의식보다 소박한 기도가 좋았다

하은정 기자 2026. 5. 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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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인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케랄라주의 항구 도시 코친에 머물다가, 기차로 3~4시간 떨어진 카누르로 잠시 여행을 다녀왔다. 카누르는 아유르베다가 발달한 곳이라며, 요가와 아유르베다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함께 가자고 해서 따라나서게 됐다. 사실 그때의 나는 일주일 동안 혼자 지냈던 코친 생활에 익숙해져 조금 더 머물다가 북인도로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좋은 것이고, 함께할 친구까지 있으니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사진 최윤성 

아침 일찍 오토릭샤를 타고 에르나쿨람역에 도착했다. 오토릭샤는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륜 택시다. 플랫폼 벤치에 앉아 이들리(남인도식 쌀떡)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며 기차를 기다렸다. 혼자였다면 아침도 먹지 않은 채 바로 기차에 올랐을 텐데, 여행에 동행자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기차표 예매를 늦게 한 덕분에 우리는 거의 모든 역에 정차하는 6시간짜리 완행열차를 타게 됐다. 창문을 활짝 열고 달리는 기차 안은 시원했지만, 90도 각도의 나무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려니 허리와 엉덩이가 무척 아팠다. 그래도 창밖으로 펼쳐지는 야자수와 바다 풍경은 그 피로를 잊게 만들 만큼 아름다웠다.

기차 좌석은 기다란 나무 벤치처럼 되어 있어 자리가 따로 구분되지 않았고, 세 사람이 함께 앉는 구조였다. 낯을 가려 처음 보는 사람과 쉽게 말을 섞지 못하는 나는 창가에 앉았고, 친구는 가운데에, 통로 쪽에는 인도 여자아이가 앉았다. 다행히 모두 체구가 작은 편이라 자리는 넉넉했다. 활달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친구는 옆자리 여자아이와 금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창밖만 바라보았다.

사진 최윤성 
사진 최윤성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드디어 카누르에 도착했다. 비가 많이 내려 온 세상이 축축했다. 숙소 방도 축축했고, 침대는 말할 것도 없었으며, 벽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났다.

짐만 내려놓고 곧장 바다로 나갔다. 여행객이 거의 없는 시기라 바다는 조용하고 깨끗했다. 한 어부가 바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그물을 넓게 던져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가슴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는 곳에서 그물을 던지고 다시 천천히 끌어당기는 모습이 무척 단단해 보였다. 흔들리는 파도 속에서도 물컹거릴지 모르는 바닷속 모래에 두 발을 단단히 딛고, 흔들림 없이 서 있는 모습이 참 멋지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깊은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저녁 식사는 숙소에서 해결했다. 쌀로 만든 백설기 같은 뿌뚜와 병아리콩 카레, 그리고 오이 샐러드가 나왔다. 뿌뚜는 쌀가루를 층층이 쪄 만드는 케랄라 지역의 전통 음식이다. 친구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 한잔과 함께 식사를 즐겼다.

다음 날에는 근처의 다른 숙소로 옮겼다. 숙소 주인아저씨는 감탄이 나올 만큼 친절한 분이었고, 숙소 앞에는 넓은 코코넛 나무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햇빛이 잘 드는 공간이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친구와 나는 테라스에 앉아 한동안 빗소리를 구경했다. 내성적인 나는 곧 방으로 들어가 책을 읽었고, 외향적인 친구는 테라스에 남아 작업을 했다.

사진 최윤성 

비가 그친 뒤 우리는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마을 입구까지 걸어 나가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리자 하늘색 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 운전석 주변은 힌두교 신상과 꽃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차 안 전체는 붉은색 장식으로 요란했다. 스피커에서는 경쾌한 인도 영화 음악이 흘러나왔다.

버스 차장은 통로를 돌아다니며 표를 팔았고, 승객들은 스스로 문을 열고 닫으며 타고 내렸다. 귓가에 익숙한 인도 사랑 노래가 흐르고, 승객들이 오르내리고, 창밖으로 거리 풍경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꽤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기차역 근처에서 내려 쇼핑몰을 구경한 뒤 채식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친구는 도사(쌀 반죽을 얇게 부쳐 만든 남인도식 크레이프)를 주문했고, 나는 포로타를 선택했다. 포로타는 밀가루 반죽을 여러 겹으로 접어 구운 남인도식 빵이다.

이후 몇 군데의 아유르베다 병원을 둘러보며 정보를 얻고, 매일 의식이 열린다는 유명한 사원도 방문했다.

예전의 나라면 힌두교 의식을 흥미롭게 구경했겠지만, 이제는 제례 의식에 큰 관심이 없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연극을 보듯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요즘의 나는 번거로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제례 의식조차 다소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바라나시의 갠지스강 의식을 좋아했을까. 이제는 화려하고 멋스러운 의식보다 소박하게 기도드리는 공간이 더 좋다.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는 정글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고, 주변에는 코코넛 나무 들판만 펼쳐져 있는 고요한 곳이었다.

저녁으로는 숙소에서 만들어준 야채 카레와 콩 볶음, 그리고 디저트로 포도를 먹었다. 이상하게도 그 숙소에서 먹은 음식들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부드러운 카레는 맵지도 짜지도 않았고, 함께 나온 쌀떡은 무척 고소했다. 무엇보다 주인아저씨가 정말 친절했다. 살면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손에 꼽을 만큼 좋은 분이었다. 그 집에서 먹었던 저녁과 아침 식사, 그리고 친절했던 주인아저씨는 오래도록 생각났다.

사진 최윤성 

이제 다시 코친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되었다. 이른 새벽 오토릭샤를 타고 카누르역으로 향했다. 새벽 5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역 앞 식당은 이미 문을 열었고, 안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우리도 인도 사람들처럼 작은 접시에 담긴 음식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돌아가는 기차 역시 늦게 예약한 탓에 빙 돌아가는 6시간짜리 열차였지만, 이번에는 에어컨이 나오는 침대칸이었다. 누워서 가다 보니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그렇게 카누르 여행을 마치고 다시 코친으로 돌아와 같은 홈스테이에 머물게 되었다. 현지 가정집 형태의 숙소였는데, 처음 머물렀을 때보다 훨씬 편안한 기분이었다.

친구는 아유르베다 여행 그룹이 들어오면서 인솔 일을 시작했고, 나는 케랄라 생활에 점점 익숙해졌는지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글쓴이 최윤성 '망고 요가 트래블'의 1인 여행 기획자. 국내외 요가 여행을 진행하고, 틈틈이 산티아고 순례길 인솔을 한다. 겨울에는 인도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만들며 생활하는 여행자로 살고 있다. 

하은정 기자 hah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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