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수첩] '사후 대응' 틀에 갇힌 멸종위기종 보호 정책

개발사업 현장에서 멸종위기종은 늘 뒤늦게 발견된다. 공사가 시작된 뒤, 나무가 잘려 나간 뒤, 땅이 뒤집힌 뒤에야 서식 흔적이 확인된다. 사업자는 "환경영향평가 당시에는 발견되지 않았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행정기관은 "추가 조사와 보완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답한다. 하지만 이미 서식지는 훼손된 뒤다.
최근 멸종위기종 취재를 하거나 관련 기사를 볼 때 반복해서 등장하는 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사할 때는 없었다."
문제는 이런 말들이 너무 익숙해졌다는 데 있다. 멸종위기종 보호정책은 여전히 발견 이후, 논란 이후, 훼손 이후에 움직인다. 보호가 개발을 멈추는 기준이 아니라, 개발 이후 붙는 보완 절차처럼 작동한다.
지난 4월 본지가 보도한 전북 정읍 내장저수지 사례는 그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준설과 인공섬 조성 공사가 진행 중인 저수지 인근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흰목물떼새 번식이 확인됐다. 포크레인 바퀴 자국 바로 옆이었다.
문제는 이 사업이 농어촌정비법을 근거로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생태 조사를 의무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없었고, 결국 보호종 서식 여부는 사전에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합법적인 개발"이었지만 과정에서 생태계는 사실상 고려되지 않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 단지 행정 공백 때문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현 제도가 결과적으로 '발견되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작동한다는 데 있다. 현행 환경영향평가는 제한된 기간 안에 현장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야생생물은 행정 일정표에 맞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계절에 따라 이동하고, 번식기마다 활동 범위가 달라진다. 공사 소음이나 인위적 접근만으로도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그럼에도 조사 시점에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발이 추진되는 경우가 반복돼왔다. 결국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현실에서는 곧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처럼 받아들여지는 셈이다.
경남 양산 사송지구 고리도롱뇽 사례 역시 비슷하다. 2020년 말부터 환경단체들은 사송 공공주택지구 개발 과정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고리도롱뇽 서식 사실이 환경영향평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후 시민대책위 활동과 소송으로 논란이 이어졌고 2023년 말 환경영향평가서를 부실·허위 작성한 혐의로 용역업체 관계자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미 개발사업은 상당 부분 진행된 뒤였다. 환경단체들은 서식지 훼손과 개체수 감소를 우려했지만 공사는 계속됐다. 결국 환경영향평가의 부실성이 확인돼도 개발 자체를 되돌리기는 어려운 구조가 드러난 셈이다. 한국의 환경 정책이 사실상 '선개발 후대책'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보호 대책 역시 종종 개발을 지속하기 위한 명분처럼 사용된다. 경남 거제 노자산 골프장 개발 논란이 대표적이다. 거제남부관광단지 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사업부지 내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대흥란 서식 문제가 제기됐지만 사업자 측은 "이식 가능"을 근거로 개발 가능성을 주장했다.
정부는 2023년 6월 조건부 협의 의견을 내며 대흥란 시범 이식 뒤 2년 이상 생존 여부를 모니터링해 이식 가능성이 확인되면 본격 이식을 진행하도록 했다. 이후 2025년 2월 대흥란 자생지 환경 특성을 다룬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됐지만, 한국생태학회는 올해 4월 해당 논문을 분포에 관한 학술적 오류, 부정확한 인용, 연구비 출처 기재 문제 등 연구윤리 위반을 이유로 게재 철회했다. 시민단체는 이를 두고 해당 논문이 대흥란 이식 논리를 제공하려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재생에너지 사업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2024년 강원·경북 산악지대 풍력발전 사업들을 둘러싸고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산양 서식 여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일부 사업지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산양 미발견'으로 기재됐지만, 이후 환경단체와 전문가 현장 조사 과정에서 산양 흔적과 배설물 등이 확인되며 평가의 신뢰성 논란이 불거졌다. 대구MBC 등 지역 언론은 풍력발전 사업 예정지 조사 과정에서 산양 흔적이 추가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산양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로 백두대간 생태축 보전의 핵심종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 속에서 산악지대 풍력발전 개발 압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문제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 아래 생물다양성 보전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개발 사업들 가운데 몇몇은 '친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된다. '친환경 개발'이라는 말은 현장에서 하나의 면죄부처럼 사용된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생물다양성 보전과 별개로 다뤄져야 하는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산업 정책은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만을 강조하고 환경 정책은 뒤늦게 서식지 보완책을 검토하는 식이다. 사업은 친환경으로 분류되지만 정작 그 공간에 살던 생명들에게는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탄소 감축 목표는 숫자로 관리되지만 사라지는 숲과 단절되는 생태축의 비용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이미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를 하나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는 공동보고서를 통해 생태계를 훼손하는 방식의 기후대응은 또 다른 환경위기를 만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한국의 정책 구조는 여전히 둘을 분리한다. 탄소중립은 산업과 경제의 문제로, 멸종위기종 보호는 환경규제 문제로 취급된다.
그 결과 보호정책은 늘 사후 대응에 머문다. 사전에 지역 개발에 대한 판단이 이뤄지기보다 '어떻게 피해를 줄일 것인가'가 논의의 중심이 된다. 대체 서식지 조성, 개체 이전, 모니터링 강화 같은 대책이 반복되지만 원래의 생태계를 완전히 복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발은 대부분 '공익'이라는 이름을 달고 온다. 산업단지와 도로, 관광단지와 데이터센터, 그리고 재생에너지 시설까지. 지역경제 활성화와 국가경쟁력, 탄소중립이라는 명분도 함께 따라붙는다. 그러나 이 거대한 개발 계획 속에서 정작 가장 먼저 밀려나는 존재들은 말이 없다.
멸종은 어느 날 갑자기 선언되지 않는다. 숲이 조금씩 잘려나가고, 습지가 메워지고, 이동 경로가 끊기는 과정 끝에 도달하는 결과다. 그런데도 지금의 보호정책은 멸종위기종을 여전히 '발견되면 관리하는 대상' 정도로 다룬다. 발견되지 않으면 개발하고, 발견되면 보완한다. 이 구조 속에서 멸종은 막아야 할 재난이 아니라 관리가능한 변수처럼 취급된다.
"조사할 때는 없었다"는 말은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그 말이 반복될 때마다, 실제로는 누군가의 서식지가, 존재 자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