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안동병원 24시간 분만실·소아진료·응급실, 그 현장을 가다
분만취약지 현실 속 생명선 역할…“한순간 공백도 허용 못 해”

경북 안동의 새벽 두 시. 도심의 불빛은 하나둘 꺼져간다. 편의점 간판도, 골목 가로등도 저마다 존재를 줄여가는 시간이다. 그러나 병원 건물 한쪽 창문만은 여전히 환하다. 그 빛은 장식이 아니다. 누군가의 생사가 걸린 빛이다.
분만실 안에서는 태아 심박을 알리는 전자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진다. 의료진은 짧고 정확한 말로 상황을 확인하며 분만 준비를 이어간다. 문 앞에서는 보호자가 두 손을 꼭 쥔 채 복도를 서성인다. 긴장이 공기처럼 좁은 통로를 채운다.
"심박 안정적입니다."
간호사의 짧은 한마디에 보호자의 어깨가 조금 내려간다. 수도권에서라면 흔한 장면일 수 있다. 그러나 경북 북부에서 이 장면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이곳은 지역 의료의 마지막 방어선으로 불리는 안동병원 24시간 분만실이다.
경북 북부는 대표적인 분만취약지다. 산부인과가 줄어들면서 일부 산모들은 출산을 위해 한 시간 이상을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야간이나 응급 상황에서 그 이동 자체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은, 통계가 아니라 이 지역 사람들이 몸으로 아는 현실이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안동병원은 분만취약지 거점병원으로서 24시간 분만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분만은 단순한 진료가 아니다. 산부인과와 마취과, 신생아 진료 인력이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고난도 협진 영역이다. 단 한 순간의 공백도 허용되지 않는다.
의료진은 "출산은 시간을 미룰 수 없는 진료"라며 "한순간의 판단이 아이와 산모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구호가 아니라, 새벽 두 시에도 자리를 지키는 이유다.

안동병원은 365일 24시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진료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단순한 외래 시간 연장이 아니라 상시 대응 구조다. 지방에서 소아청소년과는 인력 부족과 낮은 수익성, 높은 업무 강도로 가장 빠르게 붕괴되는 진료과로 꼽힌다. 그럼에도 병원은 소아 환자의 증상 악화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고려해 진료 공백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응급실 앞에는 새벽 시간에도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잠시 후 또 다른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도착하고, 의료진은 곧바로 처치에 나선다.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판단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안동병원은 닥터헬기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중심으로 중증 응급환자를 24시간 수용하며 경북 북부 응급의료의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다. 교통사고나 심뇌혈관 질환처럼 골든타임이 생사를 가르는 환자들이 이곳으로 집중된다. 분만과 소아 진료, 중증 응급의료까지 이어지는 이 필수의료 기능은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동반한다. 24시간 운영을 위한 인건비와 시설 유지비용은 지속적으로 발생하지만, 수익 구조만으로 이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의료 인력 확보는 병원이 가장 크게 마주하고 있는 과제다. 지방 의료의 가장 큰 한계는 전문 인력의 지속적인 유출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안동병원은 연세세브란스병원과 협력한 수련병원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의료진이 일정 기간 지역에서 수련과 임상 경험을 이어가도록 해 인력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수련 체계만으로 모든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의료진이 지역에 머물기 위해서는 급여 수준을 넘어 교육과 문화, 생활 인프라 등 종합적인 정주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지역 의료의 지속 가능성은 병원 단위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라는 의미다. 전문의 확보와 정주 여건 개선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경북 북부에서 의료 수요는 늘고 있지만, 의료 인력은 줄고 필수의료 유지 여건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새벽이 깊어질수록 병원 건물의 불빛은 더 또렷해진다. 분만실 모니터의 일정한 소리는 계속되고, 응급실 앞에는 또 다른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도착한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생명을 얻고, 또 누군가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치료를 이어간다. 이 불빛이 꺼지지 않는 한, 경북 북부의 마지막 방어선은 오늘 밤도 자리를 지킨다.
안동병원이 밝히고 있는 24시간의 불빛은 단순한 진료 지속이 아니다. 지역에서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지켜내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오늘도 새벽을 지나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