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 추락한 ‘소년 빌리’…“4년의 공백도 극복했다” [인터뷰]

고승희 2026. 5. 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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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 수석 임선우
진짜 발레리노가 된 소년 빌리
긴 공백, 글 쓰며 어려운 시간 버텨
“춤으로 행복 전하는 무용수 되고파”
2010년 1대 빌리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무대에 섰던 발레리노 임선우 [신시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소년은 공중으로 몸을 던졌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명장면인 ‘일렉트리시티(Electricity)’. “춤출 때 어떤 느낌이 드냐”는 질문에,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던 빌리는 5분 안에 억눌린 갈망을 터뜨린다. 발레, 현대무용, 아크로바틱에 노래까지….

무대 위를 가르며 회전하던 작은 몸이 순간 균형을 잃었다. 객석의 숨이 멎었다. 소년의 몸은 다리가 아닌 머리부터 바닥으로 추락했다. 음악은 흘렀고, 백스테이지도 객석도 숨을 죽였다. 그때, 아이는 다시 몸을 일으켜 끝까지 춤을 췄다.

“그냥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1대 빌리 중 막내였던 임선우는 유달리 힘이 약했다. ‘발레리노’를 꿈꾸던 소년에게 아크로바틱은 유독 어려운 숙제 같았다. 리허설 때도 문제없이 해냈는데, 공연에선 그렇지 못했다. 그야말로 ‘부상 투혼’이었다. 당시를 돌아보며 “피날레까지 마치고 나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임선우도, 당시 백스테이지에서 마음 졸이던 정헌재 안무가도 눈물을 쏟았다. 11살 임선우의 일기장엔 “2010년 10월 30일, 내 최고의 공연”이라고 적혔다.

2010년 1대 빌리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무대에 섰던 발레리노 임선우 [신시컴퍼니 제공]

16년 후, 소년이 다시 날았다. 발레리노를 꿈꾸던 소년은 어느덧 명실상부 한국 발레계의 ‘루키’가 돼 돌아왔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또 다른 명장면인 ‘드림 발레’ 장면을 통해서다. 개막 당일엔 1대 빌리들이 총출동했다. ‘탭댄스 신동’으로 불렸지만 현재는 JP모건 홍콩 지사에서 근무 중인 정진호(28), 뮤지컬 배우 이지명(29)은 막내의 ‘드림 발레’ 장면이 끝나자 만감이 교차한 듯 감탄을 쏟아냈다.

두 사람은 “빌리스쿨로 2년을 보냈고 6개월간 공연을 했는데, 정말로 빌리의 서사가 이뤄진 모습을 너무 더 울컥한다”고 했다. 원작 연출가인 세계적인 거장 스티븐 달드리 감독도 “뮤지컬이 현실이 된 것 같았다. 임선우는 세계에서 아름다운 발레리노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며 “선우가 출연하는 장면만 보러 와도 돈이 아깝지 않을 것”이라는 성찬을 보냈다. 벅차기는 임선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16년 전 무대가 생생하거든요. 괜히 울컥하더라고요. 함께 하는 소년 빌리도 제 동생처럼 대견했어요. ‘나는 너의 미래’라며, ‘포기하지 마’라는 마음으로 춤을 췄어요. 함께 춤출 수 있어 행복한 밤이었어요.”

지금의 임선우는 발레계에서 빠르게 성장한 무용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올해 유니버설발레단의 최상위 등급인 수석으로 승급, 발레계에서 어느덧 ‘신뢰의 이름’이 됐다. ‘지젤’, ‘돈키호테’, ‘백조의 호수’, ‘심청’ 등 그가 출연하는 회차는 티켓이 빠르게 매진된다.

최근 서울 마곡 소재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만난 그는 “춤을 추는 것은 매 순간 기적”이라고 말했다.

2010년 소년 빌리로 출연한 이후, 16년의 세월을 쌓아 진짜 발레리노가 돼 ‘성인 빌리’로 ‘빌리 엘리어트’ 무대에 선 임선우 [신시컴퍼니 제공]
캐릭터의 고뇌를 읽어내는 ‘잔상의 춤’

군더더기 없는 점프, 안정적인 착지, 흔들림 없는 회전….

어떤 역할을 맡아도 임선우는 자기 옷을 입은 듯 편하게 소화한다. 사실 그는 전형적인 ‘테크니션형’ 무용수와는 결이 다르다. 완벽한 기술을 갖고 있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인물을 읽는 방식’이다. 감정을 단번에 폭발하기보다, 오래도록 몸 안에 머금는다. 그래서 그의 춤을 보면 언제나 잔상이 남는다.

최근 무대에 올린 유니버설 발레단의 40주년 공연인 ‘심청’에서도 그랬다. 이 무대에서 임선우는 선장과 용왕이라는 상반된 두 역할을 소화했다. 선장은 심청을 인당수로 데려가는 인물이고, 용왕은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존재다. 서로 다른 두 역할을 준비하면서도 임선우는 인물을 단순히 선악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선장도 단순히 악인이 아닌 인간적 인물이라 생각했어요. 심청의 사연을 들으며 연민을 느끼고, 죄책감도 느껴요.”

그가 그린 선장은 뱃사람을 이끄는 리더로의 위엄을 차분하게 그리면서도, 죄책감 너머의 인간적 고뇌까지 품었다. 반대로 용왕은 부드럽고 깊이 있는 존재에 가깝게 표현했다. 그는 “물속 장면에선 해초와 물고기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팔을 썼다”고 했다. 클래식 발레의 정확한 선 위에 조금 더 유연한 흐름을 얹었다는 설명이다. 그의 춤은 남성 무용수 특유의 힘을 과시하기보다 흐름과 연결성이 돋보인다. 허공으로 가볍게 뛰어오르고, 착지는 고요하다. 상체는 유연하며, 시선엔 여백이 남는다.

임선우의 재기랄랄한 연기와 뛰어난 기량이 돋보이는 ‘돈키호테’ [유니버설 발레단 제공]
4년의 멈춤…“무대를 보는 것조차 괴로웠다”

지금의 성장이 있기까진 오랜 공백이 있었다. 그의 오늘은 무수히 많은 좌절과 인고의 날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굽은 등’을 교정하기 위해 여섯 살에 발레를 시작한 그는 선화예중·예고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한 영재였다. 지난 2017년 세계 발레 샛별들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스위스 로잔 콩쿠르의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일찌감치 해외 명문 학교에 진학할 기회가 주어졌다.

임선우는 그러나 “발레 무용수는 몸 관리를 잘해도 수명이 짧다”면서 “더 오래 춤을 추고 싶어서 발레단에 빨리 들어가 경험을 쌓고 싶었다”며 유니버설발레단(UBC)을 선택했다. 특히 문훈숙 단장의 지원으로 로잔 콩쿠르에 나갈 수 있었던 그는 좋은 성적을 안고 돌아온 뒤엔 입단하기 전부터 ‘돈키호테’, ‘오네긴’ 같은 작품에 군무로 참여했다.

2019년 졸업 후 입단한 뒤엔 군무에서 ‘드미 솔리스트’로 바로 승급하며 ‘UBC의 미래’로 주목받았으나, 그때 위기가 닥쳤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파랑새’를 맡아 연습하던 중, 오른쪽 정강이뼈가 골절됐다. 남자 무용수에게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점프를 할 수 없었다. 수술과 재활이 이어졌지만 회복은 더뎠다.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에서 “춤이 너무 추고 싶어” 복귀를 시도했다. 2021년 ‘춘향’이었다. “아무리 해도 점프가 안 되더라고요. 몸이 따라주지 않았어요.” 결국 다시 멈춰야 했다. 임선우는 당시를 돌아보며 “그때는 거의 마음을 접었다”고 했다.

2010년 1대 빌리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무대에 섰던 발레리노 임선우 [신시컴퍼니 제공]

당시 그는 스스로에게 1년의 시간을 줬다. 최선을 다해 재활에 힘쓰되, 그 안에 몸이 돌아오지 않으면 발레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다. 발레 영상조차 보지 않았을 정도다. 무대를 보는 일이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부상과 재활의 기간은 너무도 길었다. 장장 4년. 몇 달만 쉬어도 회전 감각은 사라지고, 체력과 코어가 무너지는 무용수에게 4년의 공백은 처음부터 몸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긴 시간이었다.

그날들을 버티게 한 것은 어린 날의 빌리였다. “11살의 빌리도 끝까지 춤췄는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돌아봤다.

‘춤추는 헤르만 헤세’·‘빙그레99’…문장으로 기워낸 시간

“글쓰기는 힘든 시기를 견디게 해준 버팀목이었어요.”

지난한 시간 동안 글쓰기는 임선우를 다시 살게 한 동력이었다. ‘춤추는 헤르만 헤세’라는 필명으로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 여기에 세종사이버대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며 이론적 토대도 다졌다. 발레로 간 예중·예고뿐 아니라 문창과에서도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는 브런치에 다친 몸에 대한 이야기, 흔들리는 마음, 다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 등을 담담하게 적었다. 아픈 시간을 과장하지도, 절망에 매몰되지도 않는 그의 글은 인내하고 견뎌내는 발레 속 남자 주인공과 다르지 않았다.

임선우에게 부상을 안기고, 부상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해준 ‘잠자는 숲속의 공주’ 파랑새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재활 기간 그는 웹소설 작가(필명 빙그레99)로도 데뷔했다. “한 번 꽂히면 끝까지 하는 성격”이라는 그는 게임과 상상 속 세계를 글로 옮겼다. 귀여운 카피바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판타지 소설이다. 한창 연재 중인 소설은 이미 20만뷰를 넘겼다.

글과 춤은 서로 다른 언어이지만, 임선우에게 둘은 상호보완적이다. 그는 “춤을 출 때 단편적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이 글을 쓰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그 확장된 시야가 다시 춤으로 돌아온다”고 말한다. ‘글 쓰는’ 또 다른 자아의 성장과 함께 그는 2023년 마침내 복귀했고, 다음 해 2월 ‘로미오와 줄리엣’의 벤볼리오와 머큐시오 역을 무대에서 선보였다. ‘라 바야데르’에선 최고의 기량을 가진 무용수가 소화하는 ‘황금신상’ 역할도 해냈다. 공연장 천장을 향할 만큼 뛰어오른 그랑 주테는 지금도 회자된다. 마침내 ‘잠자는 숲속의 미녀’ 노들섬 공연에선 ‘파랑새’를 소화했다.

“앙트르샤 시스로 부상을 입어, 트라우마가 있었어요. 그런데 부상 트라우마는 결국 무대로 씻어지더라고요.”

무사히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그는 그제야 안도했다. 물론 지금의 임선우는 부상 전의 그와는 다르다. 늘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철저히 관리한다. 사실 재활 동안엔 많이 무너졌었지만,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며 마음을 다잡았다. 늘 든든하게 곁을 지켜준 부모님도 큰 힘이 됐다. 그는 “지금은 다시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소중하다”고 말한다.

긴 부상 끝에 돌아온 그는 무대 위에서 서두르지 않는다. 그의 춤은 유연하고 여유롭다. 이전보다 더 조용하고 깊어졌다.

“전 춤을 출 때 정말 행복해요. 사람들이 ‘임선우’를 떠올릴 때, 그의 춤을 보면 같이 행복해지는 무용수라고 기억해 주시면 더 바랄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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