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정지영 감독 “제가 실화 소재를 고집하는 이유요?”[스경X인터뷰]

하경헌 기자 2026. 5. 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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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이름은’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 사진 렛츠필름, 아우라픽처스

정지영 감독은 여든을 지척에 둔 나이로 현재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최고령 감독이다. 하지만 그 용맹함은 출연 배우들도 인정할 정도다. 늘 문제의식을 갖고, 사회의 각종 문제에 화두를 제시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룬 ‘남부군’, 베트남전을 다룬 ‘하얀전쟁’, 판사 석궁 테러사건을 다룬 ‘부러진 화살’ 등이 그랬다.

그는 이번에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픔 중 하나인 제주 4.3사건을 영화화했다. 지난달 개봉한 염혜란, 신우빈 주연의 ‘내 이름은’이다. 정지영 감독이 문제의식을 느끼는 부분은 주연 염혜란이 놀랄 정도로 용맹하지만, 그 방식에서는 대중과의 접점을 고려했다. 한 여성의 이름 찾기 여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4.3을 녹여내는 연출방식을 택했다.

“제주도민들을 4.3을 여전히 앓고 있는데, 육지 사람들은 잘 몰라요. 젊은이들은 더 그렇고요. 처음부터 4.3 영화는 어렵다 싶었고, 4.3을 찾아가는 영화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제주도민들은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일이었죠. 결국 극복? 회복? 사랑을 회복하는 데 대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영화 ‘내 이름은’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 사진 렛츠필름, 아우라픽처스

염혜란과는 전작 2023년 작 ‘소년들’에서 만났다. 당시 주인공인 설경구의 아내 역이었는데 리얼하면서도 감칠맛있는 연기가 정 감독의 취향을 사로잡았다. 그때부터 아예 정순 역할을 염혜란을 놓고 쓰기 시작했다. 공교롭게 염혜란이 ‘폭싹 속았수다’에서 제주 어멍 전광례를 하는 모습도 바라봤다. 정 감독이 염혜란을 믿는 정도는 하이라이트인 보리밭 춤 장면에서 그에게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긴 데서도 알 수 있다.

“왜 지금 4.3이어야 했을까요. 저는 다른 사람이 할 줄 알았어요. 제가 그 일을 막연하게 다루면 또 이데올로기나 분단이 나와야 하잖아요. 저는 이미 ‘남부군’이나 ‘남영동 1985’로 다뤘고요. 다른 사람이 해주길 바랐어요. 하지만 투자는 잘 못 봤죠. 마침 4.3 평화재단에서 공모 당선작을 가져왔는데 별로 마음엔 안 들었어요. 아이디어는 좋았죠. 결국 그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해주시면 어떻겠냐는 말씀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5일까지 20만 관객에 육박한 ‘내 이름은’은 이명세 감독의 ‘란 12.3’에 이어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고 있다. 유튜브 방송 ‘매불쇼’ 등에 출연해 얻은 인지도를 발판으로 1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의 후원을 받아 제작했다. 얼마 전에는 이재명 대통령 내외도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노감독의 자부심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아직도 자신의 메시지와 이야기를 사람들이 보고, 자신을 믿는구나하는 생각이 힘의 원동력이 됐다.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내 이름은’의 한 장면. 사진 CJ CGV, 와이드릴리즈

“의미 있는 영화를 한다고 하니까 많은 배우들이 돕겠다고 나섰어요. 유준상이나 오지호, 오윤아 등의 배우들이 그랬고요. ‘돈 생각하지 않고 나오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안타깝게 다 받지를 못했어요. 최소한 교통비는 줘야 하는데 그것도 안 됐거든요. 김민재씨도 출연했는데 제주 사람이어서 나올 수 있었어요. 후반부 동네 사람들은 모두 제주에서 연극하시는 분들이었어요.”

여전히 그의 메시지는 해외에도 통해 베를린 영화제에 포럼부문 초청작이 됐다. 그의 영화에는 물론 사랑도 등장하고, 우정도 등장한다. 서로에 대한 질시와 증오도 있지만, 이 모든 원인은 특정한 사건이나 당대 사회 분위기에서 비롯되는 부분이 많다. 늘 실화는 울림을 주지만 연출자로서 부담이 되기도 하는 소재다. 노감독에게 그럼에도 실화기반의 영화를 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명료했다.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내 이름은’의 한 장면. 사진 CJ CGV, 와이드릴리즈

“이러한 소재를 물론 계속 하고 싶죠. 하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영화감독은 불러줘야, 써줘야 하는 거죠. 결국 흥행이 돼야 하는 거고요. 급변하는 시대에 제가 하고자 하는 작품과 주제가 여전히 유효할지에 대한 생각은 있어요.”

정지영 감독은 다음 작품도 준비 중이다. 대작이라 “투자자가 나와줘야 한다. 앵벌이로는 안 된다”고 웃었다. 물론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듯, 묵직한 메시지가 받침이 되는 작품이다.

영화 ‘내 이름은’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 사진 렛츠필름, 아우라픽처스

“예술가는 관객을 생각하면서 찍는 게 아니라 꼴리는 대로 해야 해요. ‘관객들이 내 이야기를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만들면 너무 낯설어져요. 저는 예술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죠. 저는 기질이 그랬던 거 같아요. 문학소년일 때의 경향이 남았나 싶죠. 학창시절 전쟁 이후 사회의 소설, 희곡을 많이 봤는데요. 사회, 역사와 사건과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 흥미를 느꼈어요. 히치콕 감독을 좋아했어요. 제 영화에는 미스터리가 있는데 결국 개인의 사랑이나 연정이든 무엇이든 사회나 역사의 흐름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영향을 떠나서는 불가능하다고 봐요. 대단한 용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저는 남들이 안 하는 작품을 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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