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학술용병 논란, 낯뜨거운 대학의 도덕적 해이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6. 5. 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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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 GPT 생성이미지

연합뉴스가 3월 말 처음 보도한 ‘학술용병’ 의혹이 학계 안팎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일부 대학이 오로지 대학평가의 지표를 끌어올리기 위해 학술논문을 쏟아내는 외국의 다작(多作)·고인용 연구자를 비전임 교원으로 임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강의나 심도 있는 연구 교류도 없었고 단순히 자신이 발표하는 학술논문에 국내 대학을 ‘이중 소속’으로 기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고 한다. 대학이 그런 용병에게 적지 않은 ‘인센티브’를 지급했다는 의혹도 있다.

학술용병을 활용한 결과는 놀라웠다는 것이 언론사의 결론이다. 2023년 하반기부터 180여 명의 외국 연구자를 임용해서 ‘인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K-클럽’을 운영하는 고려대의 THE 세계대학평가 순위는 2024년 201~250위 구간에서 2025년 189위로 상승했고 올해는 156위로 뛰어올랐다. 

2024년 79위였던 QS 순위도 올해는 61위로 상승했다. 고려대의 ‘국제연구협력’도 51%나 늘어나서 경희대(23%)·성대(14%)·서울대(10%)를 훌쩍 넘어섰다.

연세대도 2017년부터 ‘세계화 촉진’을 목표로 ‘연세대 프런티어 랩’(YFL)을 통해 해외 우수 교원 초청 사업을 시작했다. YFL에 참여한 객원 연구원들은 6년 동안 1인당 수백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연세대의 학술 지표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일 수는 있겠지만 연세대의 세계대학 평가 순위도 수직으로 상승했다. 

QS 순위에서 10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가 2020년에는 85위에 올랐고 올해는 50위로 상승했다. THE 순위에서도 2019년 197위에서 올해 86위에 훌쩍 뛰어올랐다. 다만 연세대는 연구자의 이중 소속 표기로 이득을 챙기는 구조에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보고 2022년에 외국 연구자와의 계약을 정리했다고 한다.

● 다작을 앞세운 정체불명의 용병

‘학술 용병’은 우리 언론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강의·연구와 같은 학술 활동 본연의 가치보다는 금전적 보수에 더 관심이 많은 연구자를 뜻하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 선택이다. 

챗GPT에게도 ‘학술용병’이나 ‘academic mercenary’는 생경한 모양이다. “특정 이론이나 학파에 깊이 소속되기보다는 자신의 전문 지식을 상황에 맞게 활용하는 연구자”를 뜻할 수 있다는 엉뚱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런 학술용병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2023년 킹압둘아지즈대를 비롯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대학들이 외국 연구자들에게 비밀리에 거액을 지급하고 학술용병으로 활용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학이 학술용병 선발에 활용했던 클래리베이트는 소속 부풀리기 등 부정행위가 포착된 1천여 명의 연구자를 고인용 연구자(HCR) 명단에서 영구 제명해 버렸다. 학술용병에게 이중 소속을 제공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국제 학술계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다.

우리 대학도 학술용병에게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한 사실이 확인된 모양이다. “다작·고인용 연구자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탓에 대학에서 어쩔 수 없이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도 했다”는 대학의 해명은 몹시 옹색한 것이다. ‘대학이 외국 연구자의 연구 실적만 돈으로 사왔다’는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학술용병을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는 없다. 실제로 한국연구재단은 “다중 연구자의 논문 내 소속 기재 관련 사항은 근거 법령에 정하는 바 없고 각 학술지의 논문 투고 규정에 따른다”고 밝혔다. 

교원의 임용에 대한 권한은 대학의 총장과 법인의 몫이고 연구자의 소속 기재 방침 역시 학술지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연구재단이 매년 실시하는 ‘대학연구활동 실태조사’에도 학술용병으로 의심되는 비전임 교원에 대한 조사는 빠져 있다.

당초 “겸임·초빙 교원의 채용 주체는 대학”이라고 선을 그었던 교육부가 뒤늦게 QS 세계대학평가 상위권에 든 서울대·연대·고대 등 10여 개의 대학을 대상으로 하는 실태 조사에 나서는 모양이다. “대학평가를 목적으로 겸임·초빙 교원 등으로 임용된 외국대학 교원이 교육·공동연구·학술교류 실적이 없으면 엄중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순한 자료 제출을 넘어서는 교육부의 더욱 적극적인 조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우리 대학이 집착하는 학술용병의 구체적인 실체를 분명하게 밝혀내야 한다. 

HCR에 등재된 고인용 연구자를 대상으로 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달리 우리 대학의 관심은 온통 매년 100편이 넘는 엉터리 논문을 마구 쏟아내는 중국·동남아시아·중동·동유럽의 ‘다작’(多作) 연구자에게 쏠려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BK21’ 사업이 학술용병 사업에 투입되는 가능성을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실제로 2027년까지 총 3조2000억 원 규모로 투입되는 ‘4단계 BK21 사업’의 기본 계획에는 “QS 대학평가 100위권 대학을 2019년 5개에서 2027년 7개로 늘인다”는 목표가 명시돼 있다.

●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대학의 도덕적 해이

급격한 학령 인구 감소와 17년째 이어지고 있는 등록금 동결로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버린 대학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BK21을 비롯한 교육부의 정책적 예산 지원에 목을 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더욱이 25만 명이 넘는 외국인 유학생의 유치를 포기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국내 언론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세계대학평가 순위’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 대학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물론 언론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학술용병의 실태가 생존을 위한 대학의 처절한 몸부림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대학 차원에서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도덕적 해이를 무작정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학술용병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해적 학술지’와 ‘가짜 학술대회’와도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학술용병은 대학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훨씬 더 고약한 악성(惡性)이다.

사실 대학 차원의 도덕적 해이는 학술용병만이 아니다. 대학이 교수직을 이용해서 정치적·행정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에 대한 엄격한 규제도 필요하다. 요즘 대학에는 겸임·특임·초빙·석학·특훈 등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비전임 교수직이 넘쳐난다.

물론 대학의 유연한 운영에 비전임 교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에서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비전임 교수직은 한계를 훌쩍 벗어난 비정상이다.

우선 행정부의 장·차관이나 사법부의 고위직 재판관이 퇴임하면 예외 없이 대학의 비전임 교수직으로 직행한다. 생생한 공직 경험을 대학 교육에 수혈한다는 명분은 허울일 뿐이다. 대학이 퇴직 공직자의 ‘경력 세탁소’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대부분의 퇴직 관료는 대학의 강의를 담당할 능력도 없고 연구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무늬만의 교수’다. 사실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오는 것이 비전임 교수로 임용된 퇴직 관료에게 대학이 기대하는 진짜 역할이다.

심지어 지난 정부에서 의대 증원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막말·억지 행정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보건복지부 제2차관도 대학의 행정학과 겸임교수 자리를 꿰찼다. 대학 당국이 같은 대학 의대 교수·학생들의 절박한 호소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공식 브리핑에서 의사를 ‘의새’라고 부르고 의학 교육과 의료 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막가파식 보건행정의 경험은 행정학과 학생들의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와 책임을 구현하는 공적 기관으로서 대학은 구성원 임명에서의 상징성과 파급력을 신중히 고려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전국의대교수협의회의 공식 입장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학술 업적을 돈으로 매수해서라도 대학의 국제협력과 글로벌 랭킹의 평가지표를 상승시켜보겠다는 일부 대학의 욕심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다. 학술용병이 정부의 잘못된 평가 제도의 산물이라는 지적도 사실이다. 

QS와 THE처럼 상업적 성격이 짙은 무책임한 글로벌 대학평가의 문제도 심각하다. 그렇다고 대학의 윤리적·도덕적 책임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학의 자유와 자율은 스스로 도덕적·윤리적으로 바로 서겠다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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