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창고형 약국 1년…동네약국은 무엇을 잃었나”

창고형 약국 등장 1년. 약국 시장은 가격, 구조, 제도 전반에서 변화를 맞고 있다. 본지는 총 5회에 걸쳐 창고형 약국의 확산이 가져온 변화와 쟁점을 짚어본다. - 편집자 주
<순서>
①창고형 약국 1년, 무엇이 달라졌나 ②창고형약국의 진화 ③저가 판매 가격의 구조 ④인근 약국의 경영 악화 ⑤제도화·법 개정 현황
창고형 약국이 등장한 지 1년.
지난 2025년 5월 경기도 성남에서 '창고형 약국'을 표방한 대형 약국이 처음 문을 연 이후 1년여의 시간이 흐르며 약국가는 뚜렷한 변화를 겪고 있다.
약국가는 지금 '가격'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재편되고 있다.
대규모 자본과 유통 구조를 앞세운 창고형 약국은 단순한 경쟁을 넘어, 동네약국의 수익 구조와 환자 이용 방식, 나아가 약사의 역할까지 흔들고 있다.
약국이 '복약지도 중심의 의료 공간'에서 '가격을 비교하는 소비 공간'으로 이동하는 흐름 속에서, 기존 약국 생태계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창고형 약국 1년, 약국 현장에서 벌어진 변화와 그 구조적 의미를 짚어본다.
매출 구조 변화…영양제·상비약 중심 붕괴
가장 먼저 감지되는 변화는 매출 구조다. 창고형 약국은 대량 진열과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판매를 확대하며, 기존 동네약국의 핵심 수익원이던 영양제·상비약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대한약사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 약국의 41.0%는 10% 미만 매출 감소를 경험했으나, 10~19% 감소가 31.8%, 20~29% 감소 16.0%, 30% 이상 감소도 1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곳 중 1곳 이상에서 20% 이상의 매출 감소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며, 일부 약국에서는 경영 부담이 현실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는 단순한 매출 감소를 넘어, 약국의 수익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약국을 이용하는 소비자(환자) 변화도 뚜렷하다.
창고형 약국에서는 쇼핑카트 도입과 마트형 진열을 통해 소비자가 직접 의약품을 선택하는 구조가 일반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약사 상담을 기반으로 한 구매 방식은 점차 약화되고, 필요에 따른 선택보다는 가격 비교와 대량 구매 중심의 소비 패턴이 강화되는 흐름이 나타난다.
즉, 약국 이용이 '상담 중심 의료 행위'에서 '자율 선택형 소비 행위'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약국, 상담 기능 약화·가격 비교 시장화
이 같은 구조 변화는 자연스럽게 상담 기능 약화로 이어진다. 기존 약국은 복약지도와 상담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간이었지만, 자율 선택과 가격 중심 구매가 확대되면서 약사의 개입 여지가 줄어드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는 약물 오남용 가능성과 환자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약사사회에서는 "약국의 핵심 기능인 복약지도가 약화될 경우, 단순 판매 공간으로의 전락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약국 시장의 성격 역시 변화하고 있다. 창고형 약국 확산 이후 약국 이용 기준이 전문성이나 신뢰보다 가격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약국이 '건강관리 공간'에서 '가격 비교 대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한약사회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1.6%가 창고형 약국 문제를 '심각하다'고 인식했으며, 이 중 46.0%는 '매우 심각하다'고 답했다.
특히 매출 감소 폭이 클수록 문제 인식 역시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며, 30% 이상 매출이 감소한 약국에서는 '심각하다'는 응답이 100%에 달했다.
이는 현장의 체감 변화가 단순한 우려 수준을 넘어 구조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약국가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유통 구조 변화'를 지목한다.
창고형 약국은 단순히 규모가 큰 약국이 아니라, 대자본·유통·마케팅이 결합된 형태로 운영되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로 인해 약국 간 경쟁 역시 기존의 전문성 중심에서 벗어나, 유통 구조와 자본력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약국 시장이 약료 서비스 영역에서 점차 리테일 경쟁(규모, 가격 등)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도는 '개설' 중심…"현행 규제로 대응 한계"
일각에서는 창고형 약국이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 접근성을 높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는 창고형 약국이 창고형·공장형 유통업체를 차용해 일부 품목을 저렴하게 판매하면서 소비자 마케팅에 어느정도 성공한 결과로 볼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의약품을 일반 공산품처럼 취급하는 방식이 확산될 경우, 약국의 공공성과 전문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적지 않다.
특히 약국 이용 방식이 가격 중심으로 고착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지역 약국 기반 약료 서비스의 약화와 보건의료 접근성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현행 제도는 여전히 '약국 개설' 중심 규제에 머물러 있어 외부 자본과 유통 구조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약국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규제 수단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약국 개설 사전심사제 도입과 '운영' 개념을 포함한 규제 체계 정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제도적 대응 여부가 향후 약국 시장의 방향을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창고형 약국 1년은 단순한 업태 변화가 아닌, 약국의 기능과 시장 구조, 이용 방식 전반을 흔드는 변화의 시작으로 평가된다.
창고형 약국 확산은 되돌리기 어려운 흐름으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약국의 역할과 시장 구조를 냉정하게 다시 들여다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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