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삼촌 ‘금성대군’ 모신 서울 금성당의 무신도, 국가유산 된다

배문규 기자 2026. 5. 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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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역사한옥박물관 소장…충의 상징 민간 신앙
국가유산청 “알려진 19세기 무신도 희소성 커”
서울 금성당 무신도의 ‘대신불사’, ‘창부광대’, ‘별상’, ‘말서낭’(왼쪽부터) 국가유산청 제공
서울 금성당 무신도의 ‘삼불사할머니’, ‘맹인도사’, ‘맹인삼신마누라’, ‘삼궁애기씨’(왼쪽부터) 국가유산청 제공

조선시대 세종의 아들 금성대군(1426~1457)을 모신 굿당에 봉안된 무신도(巫神圖)가 국가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서울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소장한 ‘서울 금성당 무신도’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6일 예고했다. 무신도는 무속신앙에서 섬기는 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서울 금성당은 나주 금성산의 산신인 금성대왕과 세종의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을 신앙 대상으로 여기는 굿당이다. 금성대군은 조카인 단종(재위 1452~1455)의 복위를 도모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나, 이후 충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민간신앙에서 신격화됐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무신도는 총 8점이다. 맹인도사, 맹인삼신마누라, 별상 등 인간의 운수와 질병을 관장한다고 믿은 신을 표현하여 서울·경기 지역 무속신앙의 양상을 충실히 보여준다. 그림에 쓰인 안료를 분석한 결과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파악되며 금성당에서 이뤄진 제의에 실제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금성당 전경. 국가유산청 제공

국가유산청은 “현재까지 알려진 19세기 무신도가 매우 드물어 희소성이 크다”고 밝혔다. 조형적으로도 다른 무신도와 차별화된 독창성과 우수성을 갖추고 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둥근 얼굴형, 길고 복스러운 손가락 등 불화에 자주 보이는 표현 양식은 불교회화를 제작하던 화승이 그렸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가유산청은 경북 안동시 풍산읍의 ‘안동 학남고택’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학남고택은 풍산 김씨 가문이 대대로 살아온 안동 지역의 대표적인 반가(班家·양반 집안) 집성촌인 오미마을에 있는 옛집이다. 1759년 김상목(1726~1765)이 안채를 건립한 뒤, 1826년 그의 손자인 학남 김중우(1780~1849)가 사랑채와 행랑을 증축해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국가유산청은 “평면구성과 배치는 전형적인 안동 지역의 ㅁ자형 뜰집 유형에 속하지만 안채와 사랑채가 연결되어 있지 않고 시대를 달리하여 지어진 ‘튼ㅁ자’ 형태라는 차별화된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19세기 안동의 선비 문화가 변모하는 과정과 풍산김씨 집안의 생활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고서와 고문서, 서화 등 1만360점의 유물이 남아있다. 오미마을의 근대화와 항일투쟁·구국 활동에 앞장선 김정섭(1862~1934)·김이섭(1876~1958)·김응섭(1878~1957) 형제의 삶이 묻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안동 학남고택’ 정면 사진. 국가유산청 제공
‘안동 학남고택’ 안채 정면. 국가유산청 제공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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