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소중하다[유희경의 시:선(詩: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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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소중하다.
나는 머리만 대면 자는 사람.
나는 반대편 시차에 시달리게 되었다.
모두 잠든 시각에 내게만 보이는 것들을 살피는 것도 나쁘진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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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어가르텐/ 얼굴을 내밀어 밤공기를 마신다/ 밤은 말한다// 밤공기 속에는 내가 없고/ 그리고 위치를 바꾼 포성과/ 나오려다 삼켜진 죽은 자들의 말들/ 끝을 알 수 없는 밤의 서늘한 회랑에서/ 돋아났다 사라지는/ 밤의 얼굴들
- 문혜진 ‘밤은 말한다’(시집 ‘무증상 환자’)
잠은 소중하다. 나는 머리만 대면 자는 사람. 쿨쿨 자고 아침에 벌떡 일어날 줄 아는 사람. 이게 자랑인 줄 몰랐지. 알게 되었으므로 나는 불행하다. 벌써 2주째 잠을 설치고 있다. 불면증은 아니다. 요약하자면, 시차 적응.
출장으로 미국에 다녀왔다. 뉴올리언스를 거쳐 뉴욕에서 서울로. 열흘의 일정이었다. 외국에 처음 나가 보는 것도 아니고 숨 가쁜 일정이지만, 단 열흘쯤이야 간단하다 생각했다. 웬걸. 도착한 날 밤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낮에는 정신이 잠들고 몸은 깨어 있었다. 밤이 되면 지친 몸에 말짱한 정신으로 침대에 누워 뒤척여야 했다. 하루이틀은 견딜 만했다. 사나흘은 좀 부친다 싶었다. 닷새가 넘어가니 좀비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신경이 곤두서고 입맛이 없으며 의욕도 줄어들었다. 잘하긴커녕 그르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남은 일정 내내 집에 있는 침대를 그리워했다. 폭 담겨 잠들었으면, 간절했다. 마침내 귀국행 비행기에 올라서야 작은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는 잘 수 있겠지. 그럴 리가. 나는 반대편 시차에 시달리게 되었다. 네 영혼이 느릿느릿 태평양을 건너 너를 찾아갔다가 다시 너를 찾아 이리로 돌아오고 있는 모양이라고, 국제촌놈이라며 놀리던 친구는 웃음 섞인 위로를 건네주었다.
간밤에도 벌건 눈으로 밤을 떠돌았다. 기왕 못 자는 거 산책이나 하자고, 밤길을 걸었다. 모두 잠든 시각에 내게만 보이는 것들을 살피는 것도 나쁘진 않구나. 그나저나 미국이 있는 동쪽에서 오고 있을 내 영혼아. 어서 합체하자꾸나. 그만 깊디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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