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소중하다[유희경의 시:선(詩:選)]

2026. 5. 6. 11:2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잠은 소중하다.

나는 머리만 대면 자는 사람.

나는 반대편 시차에 시달리게 되었다.

모두 잠든 시각에 내게만 보이는 것들을 살피는 것도 나쁘진 않구나.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티어가르텐/ 얼굴을 내밀어 밤공기를 마신다/ 밤은 말한다// 밤공기 속에는 내가 없고/ 그리고 위치를 바꾼 포성과/ 나오려다 삼켜진 죽은 자들의 말들/ 끝을 알 수 없는 밤의 서늘한 회랑에서/ 돋아났다 사라지는/ 밤의 얼굴들

- 문혜진 ‘밤은 말한다’(시집 ‘무증상 환자’)

잠은 소중하다. 나는 머리만 대면 자는 사람. 쿨쿨 자고 아침에 벌떡 일어날 줄 아는 사람. 이게 자랑인 줄 몰랐지. 알게 되었으므로 나는 불행하다. 벌써 2주째 잠을 설치고 있다. 불면증은 아니다. 요약하자면, 시차 적응.

출장으로 미국에 다녀왔다. 뉴올리언스를 거쳐 뉴욕에서 서울로. 열흘의 일정이었다. 외국에 처음 나가 보는 것도 아니고 숨 가쁜 일정이지만, 단 열흘쯤이야 간단하다 생각했다. 웬걸. 도착한 날 밤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낮에는 정신이 잠들고 몸은 깨어 있었다. 밤이 되면 지친 몸에 말짱한 정신으로 침대에 누워 뒤척여야 했다. 하루이틀은 견딜 만했다. 사나흘은 좀 부친다 싶었다. 닷새가 넘어가니 좀비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신경이 곤두서고 입맛이 없으며 의욕도 줄어들었다. 잘하긴커녕 그르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남은 일정 내내 집에 있는 침대를 그리워했다. 폭 담겨 잠들었으면, 간절했다. 마침내 귀국행 비행기에 올라서야 작은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는 잘 수 있겠지. 그럴 리가. 나는 반대편 시차에 시달리게 되었다. 네 영혼이 느릿느릿 태평양을 건너 너를 찾아갔다가 다시 너를 찾아 이리로 돌아오고 있는 모양이라고, 국제촌놈이라며 놀리던 친구는 웃음 섞인 위로를 건네주었다.

간밤에도 벌건 눈으로 밤을 떠돌았다. 기왕 못 자는 거 산책이나 하자고, 밤길을 걸었다. 모두 잠든 시각에 내게만 보이는 것들을 살피는 것도 나쁘진 않구나. 그나저나 미국이 있는 동쪽에서 오고 있을 내 영혼아. 어서 합체하자꾸나. 그만 깊디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시인·서점지기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