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용산고 KCC'에 경복고 구단주…정몽열 시대의 첫 장면은 우승일까
- 정몽진 KCC 회장·정몽익 KCC글라스 회장까지 이어진 ‘용산고 KCC’
- 3남 중 유일한 경복고 출신 정몽열 회장, 홍대부고 이상민 감독과 새 흐름
- KCC 역대 6회 우승 감독 모두 용산고 동문 전통 바뀔지도 관전 요점

KCC건설 정몽열 회장(62)이 최근 프로농구 KCC 구단주에 올랐습니다. 그 타이밍이 묘하게 보입니다.
KCC가 정규리그 6위 팀 최초로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직후였습니다. 막차로 '봄 농구'에 합류한 KCC는 6강 플레이오프에서 3위 DB를 제친 뒤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2위 정관장까지 눌렀습니다. 소노와의 챔피언결정전을 앞둔 상황에서 정몽열 회장이 새 구단주가 된 겁니다.
구단주 교체는 시즌 종료 직후에 이뤄지는 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KCC는 우승 문턱의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단행했습니다. 챔피언결정전 최종 결과에 따라 신임 구단주의 첫 단추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만큼 우승을 자신하고 있었던 걸까요.
실제로 KCC는 정몽열 회장의 구단주 취임을 알리는 보도자료에 헹가래 사진을 배포했습니다. 정몽열 회장이 2021년 정규리그 우승 당시 마스크를 쓰고 KCC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는 모습입니다. 이 역시 이례적입니다. 보통 인사 관련 보도자료에는 양복 차림의 정면 사진을 쓰기 때문입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2021년 KCC는 정규리그 1위를 했지만, 챔피언결정전 우승은 정관장이 차지했습니다.

KCC에 농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닙니다. KCC의 농구는 사실상 집안의 역사이자 문화에 가깝습니다.
그 시작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생전 농구를 무척 좋아한 기업인으로 유명했습니다. 현대 소속 남녀 농구 선수들을 직접 격려했고, 경기장과 훈련장을 자주 찾았습니다. 남북통일농구 성사와 평양 체육관 건립에도 깊게 관여했습니다. "농구는 다섯 명이 모두 쉬지 않고 뛰어야 하는 운동이라 좋다"는 말도 남겼습니다.
그 농구 사랑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이자 정몽열 회장의 선친인 고 정상영 KCC 명예회장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KCC 농구단을 단순한 기업 스포츠단이 아니라 직접 아끼고 챙기는 팀으로 운영했습니다. 2021년 타계할 때까지 KCC 경기와 선수들의 컨디션까지 세심하게 챙긴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KCC가 농구 명가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그런 가문의 전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용산고'가 있었습니다.
고 정상영 명예회장을 비롯해 그의 장남 정몽진 KCC 회장, 차남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은 모두 농구 명문 용산고 출신으로 KCC 구단주를 역임했습니다. 자연스럽게 KCC 농구단에도 용산고 문화가 강하게 스며들었습니다.
KCC의 전신인 현대 시절부터 사령탑이었던 신선우 감독을 비롯해 허재, 전창진 등 역대 감독은 모두 용산고 동문입니다. TG(현 DB) 시절을 거쳐 2007년부터 꼬박 20년을 KCC 농구단을 이끄는 최형길 단장 역시 용산고를 졸업했습니다.

KCC의 역대 우승 역사도 용산고와 떼어놓고 보기 어렵습니다. 대전 현대 시절이던 1997~1998, 1998~1999시즌 신선우 감독이 2연패를 이끌었습니다. KCC로 간판을 바꾼 뒤에도 2003~2004시즌 전주 이전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허재 감독이 2008∼2009, 2010~2011시즌 우승을 이끌었고, 전창진 감독이 2023~2024시즌 부산 이전 후 첫 정상에 올려놓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KCC의 역대 6회 우승 감독이 모두 용산고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KCC는 주축 선수 가운데도 용산고 출신이 많았습니다. 허웅, 허훈 역시 용산고를 나왔습니다. 농담 삼아 KCC에서는 허드렛일하더라도 용산고를 나와야 대접받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 KCC에 다른 출발선의 구단주가 등장했습니다. 정몽진, 정몽익 회장의 뒤를 이어 신임 구단주로 취임한 정몽열 KCC건설 회장입니다. 정상영 명예회장의 삼남인 그는 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경복고를 졸업했습니다.
상징성이 작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농구인 중심의 감각과 관계, 의리의 문화가 강했던 팀에 전문 경영인의 시선이 본격적으로 더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몽열 회장이 고교 시절을 보낸 경복고 역시 농구 강호였습니다. 동기동창인 유재학 KBL 경기본부장, 삼성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한 김윤호 전 신세계 감독 등을 앞세워 고교 무대를 평정했습니다. 용산중 졸업 후 경복고에 진학했던 유재학 본부장은 "고교 시절 정 회장과는 같은 반 짝이었던 적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몽열 회장 역시 어려서부터 농구에 대한 애정이 많기로 유명했습니다. 과거 KCC 농구 관련 주요 행사에도 대부분 참석했습니다. 필자는 과거 KCC 우승 축하 행사에서 정 회장이 진도에서 유명한 홍주를 직접 챙겨와 기쁨을 나누던 모습을 지켜본 기억도 생생합니다.

정몽열 회장은 1989년 고려화학 입사 후 2003년 KCC건설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고, 2020년 부회장을 거쳐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최근 KCC건설은 도시정비사업과 공공사업 확대, 수익성 개선을 통해 실적 안정 흐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건설 경기 침체 속에서도 브랜드 경쟁력과 재무 안정에 공을 들여왔습니다.
구단 역시 정몽열 회장 취임과 함께 효율적 운영, 투자 효율성 제고, 브랜드 가치 강화를 강조했습니다. 이는 KCC가 단순한 농구 명가를 넘어 스포츠 비즈니스 조직으로도 진화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흥미로운 건 변화의 시점입니다.
KCC의 이번 시즌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시즌 전만 해도 우승 후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국가대표급 전력과 화려한 공격력을 갖췄지만, 시즌 내내 부상과 기복, 수비 불안에 흔들렸습니다.
정규리그 성적은 6위였습니다. 기대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봄 농구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KCC는 플레이오프에서 전혀 다른 팀으로 변했습니다. 큰 경기 경험을 가진 선수들이 살아났고, 정규리그의 불안은 응집력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KCC는 프로농구 역사상 처음으로 정규리그 6위 팀의 챔피언결정전 진출이라는 새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도 고양 소노를 꺾으며 우승 반지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묘하게도 경복고 출신 최준용의 활약도 인상적입니다. 최준용은 플레이오프 들어 평균 득점을 20점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6강 플레이오프부터 치르느라 체력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는 KCC는 7일 고양에서 소노와 2차전을 치릅니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홍대부고 출신 KCC 이상민 감독입니다. 정몽열 회장은 이상민 감독과 선수 때부터 호형호제할 정도로 가까웠고 사석에서도 종종 어울렸습니다. 특히 프랜차이즈 스타로 '현대의 피가 흐른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던 이상민 감독이 현역 시절 자유계약선수 서장훈 영입 과정에서 보호선수에서 제외돼 삼성으로 이적하게 됐을 때, 정몽열 회장은 누구보다 안타까워했습니다. 이상민 감독이 삼성 감독을 거쳐 전창진 감독 밑에서 KCC 코치가 됐을 때는 감독으로 가는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습니다.

이상민 감독 역시 정몽열 회장처럼 KCC를 상징했던 '용산고 중심 구조'와는 또 다른 연결고리입니다.
만약 KCC가 이번 시즌 정상에 오른다면 의미는 더욱 특별해집니다.
이상민 감독은 KCC 역사상 처음으로 '비(非) 용산고 출신' 우승 감독이 됩니다. 동시에 경복고 출신 정몽열 구단주의 시대가 시작되는 첫 우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몽열 회장은 9일 부산에서 열리는 소노와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을 직접 관전하며 구단주 취임 후 처음으로 홈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입니다.
물론 KCC의 정체성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KCC는 여전히 농구 사랑이 가장 강한 기업 구단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만 이제 그 사랑의 방식은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감각과 의리 중심의 팀에서, 경영과 브랜드, 팬 경험과 투자 효율까지 함께 고민하는 조직으로 확장될 가능성입니다.
그래서 이번 챔피언결정전은 단순한 우승 경쟁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2011년 KCC의 다섯 번째 우승 축하연에는 정상영 명예회장과 정몽진 회장, 정몽익 회장, 그리고 당시 KCC건설 사장이던 정몽열 회장이 함께 자리했습니다.
그때 우승을 축하하던 삼남은 이제 구단주가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7번째 우승 반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KCC의 오래된 농구 사랑이 정몽열 시대의 첫 우승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부산의 봄 농구가 그 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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