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지역의 하늘에 무지개가 뜰 수 있도록
[연구 소개] 논문 「춘천퀴어문화축제를 통해 본 새로운 지역 연대의 가능성」은 최정희가 지난 5년간 강원도 춘천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직접 일궈나간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함께 축제를 만들어 온 열 명의 동료들을 만나, 춘천에서 어떻게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지속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축제가 지역의 사회운동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꼭 대도시가 아니어도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기를 바라는 전국 방방곡곡의 퀴어와 엘라이들에게 이 논문이 전해지길 바라며, 저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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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0월 19일, 춘천 낙원문화공원에서 열린 제4회 춘천퀴어문화축제 ‘소양강 퀴어’ 행사 중에서 무지개예수단 축복식. (사진-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
-춘천퀴어문화축제는 강원도에서는 첫 시도이고 또 인구 30만명 미만 지역에서 진행된 몇 안 되는 퀴어문화축제로도 의미가 깊지요.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지난 5년간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으로 활동했고요. 올해도 축제 당일 스탭으로 함께합니다. 현재 녹색당 전국당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6월까지는 지역 단체의 상근자로 일하면서 대학원생으로 논문을 준비하다보니 정말 바빴어요. 그래서 먼저 제안을 드렸습니다. 가을에 하는 우리 지역의 다른 축제와 겹치지 않는 여름, 그리고 제가 논문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인 8월에 축제를 하면 좋겠다고요. 감사하게도 그렇게 결정이 되었는데요. 소도시이다보니 가능했던 꼼수이기도 합니다. 하하.”
-논문에서 ‘인구가 적은 소도시에서의 성소수자들은 아웃팅(outing)의 위협에 놓이면서 사회적 교류와 소속감을 획득할 커뮤니티를 탐색 및 구성의 곤란을 겪는다.’라는 대목이 떠오르는데요. 함께 축제를 만들어온 동료가 십여 명으로 적은 수이지만, 그래서 상황에 유연할 수 있고 또 끈끈하게 뭉칠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춘천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도 춘천의 시민이며 당당한 한 인격체로서 가시화되는 의미를 갖는 동시에, 지역에서 ‘나로 있는 순간’ 그 자체를 수용 받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공간이에요. 논문 인터뷰에 참여한 분들이 해준 얘기가 있는데요. 축제를 하고 있는 그 바로 지척에서 혐오 세력들이 와서 훼방을 놓고 있는데, 거기에 자기가 반주하는 교회에서 만났던 사람이 있었다는 거에요. 잘 보인다는 것은 이런 거죠. 대도시처럼 익명성에 묻힐 수 없어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내가 사는 곳을 안전하게 만들어야 해요. 내가 살던 곳에서 인정받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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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퀴어문화축제에서 사회를 보는 최정희(활동명 ‘토끼’) 씨의 모습. (사진-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
처음에 ‘춘천에서도 퀴어문화축제를 하자’고 모인 사람이 딱 4명이에요. 사람이 모이면 일은 진행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하고자 하는 사람들끼리 연결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지역의 경우, 조직이 중심이 되고 거기에 뜻이 맞는 사람들이 결합이 된 경우가 많은데, 춘천은 개인들이 모여서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를 꾸렸어요. 거기에 ‘소양강퀴어 연대회의’라는 명칭으로 지역사회의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보태는 방식이었습니다. 시작은 4명이었지만 지금은 벌써 6년 차가 되어 조직위가 12명인데요. 모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작했어요. 단체나 조직의 대표가 아닌, 지역의 학생들과 청년들이 ‘춘천에서 뭔가를 하자’는 마음으로 뭉친 거죠.”
〈지역에서 새로운 의제를 기존의 운동 관계망에 제안할 때는 누가 제안하는 것인가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제안자가 지역 운동에 꾸준히 연대하면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한 사람일 때 의제 수용이 잘 된다는 의미이다. 작은 도시의 운동은 대체로 새로운 인물과 의제가 유입되기 어려운 경직성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의제를 어떤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해나가려고 하는가가 연대의 중요한 고려점이 된다.〉 -논문 「춘천퀴어문화축제를 통해 본 새로운 지역 연대의 가능성」(성공회대학교 시민평화대학원 실천여성학전공 석사, 2026) 중
-논문에 소양강퀴어 연대회의가 구성되고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과정이 나와 있는데요. 그 과정을 직접 만든 사람으로서 상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서울의 퀴어문화축제에 가면서 ‘인권을 지켜내고 투쟁하는 것이 노래와 춤으로도 가능하구나’라는 것을 깨달았고, 우리 지역에도 이런 멋진 축제가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그러다 춘천에서도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즐겁고 행복하게 자신을 긍정하고 가시화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필요하다는 절실한 생각으로 이어졌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지역의 청년들과 퀴어 의제로 함께 활동을 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대학생이나 청년들은 졸업과 취업 등으로 삶이 변화하는 시기다 보니 자꾸만 흩어져버렸고요.
그러던 중 한 기자회견에서 만난 다른 정당 활동가에게 저의 생각을 말했더니, 매우 반가워하더라고요. 그렇게 정의당의 활동가 분이 첫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 4명 중 한 명이 되었구요. 나중에서야 그분이 제주에서 퀴어문화축제를 만든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렇게 조직위가 구성되고, 지역의 단체들에게 연대 제안을 했는데 흔쾌하게 수락하더라고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생각해 보니, 꾸준히 지역에서 활동했던 시간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2013년 지역의 여성단체에서 일하면서 녹색당에 가입했어요. 단체 상근자로서도 지역의 다른 시민사회단체들과 협업했고, 또 녹색당의 춘천지역당 대표로 적극 활동을 하다보니 후보로도 뛰게 되면서 지역에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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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9월 17일 제2회 춘천퀴어문화축제 ‘소양강 퀴어’ 중 퀴어퍼레이드 모습. (사진-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
-1회 춘천퀴어문화축제를 추진했을 때가 코로나 대유행의 시기였네요. 진행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코로나보다는 ‘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더 컸어요. 뭐라도 하자고 모였는데 뭐부터 할까 고민인 거죠. 소도시 퀴어문화축제는 대도시의 모델을 따라할 수도 없고, 자원도 부족하잖아요. 코로나는 두 번째 고민이었어요.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시에서 많은 권고가 내려왔어요. 그래서 축제를 한 달 미뤘어요. 퍼레이드만 하는 방식으로 의견이 모아졌고요. 이것도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가 개인들의 연합이다보니, 보다 신속하게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체로 행사의 규모와 역량을 형성하는 것은 재정적 자원이다.’라는 대목은 아주 덤덤하게 쓰여졌지만, 굉장히 많은 고뇌와 감정들이 담겨있는 문장 같아요. 무언가를 시도해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 같은데요. 재정을 마련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고맙게도 비온뒤무지개재단이 든든한 씨앗이 되어주었어요. 그리고 지역의 단체들도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재정적으로도 연대해 달라고, 전화를 일일이 드리고 찾아뵙고 했습니다. 정해진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소도시는 자원이 한정적이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동시에 꾸준히 활동하면 눈에 잘 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습니다. 노동이면 노동, 환경이면 환경, 성평등이면 성평등. 내가 뜻이 있는 활동을 지역에서 그저 열심히 하면 보일 수밖에 없어요. 그게 지역입니다.
또 작은 축제만의 즐거움이 있어요. 큰 곳에서는 나 하나가 매우 작은 존재지만, 이곳에서는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요. 더불어 저희는 현수막에 연도와 회차를 쓰지 않고 재활용합니다. 피켓도 마찬가지고요.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기에 이런 연속성을 지켜갈 수도 있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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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퀴어문화축제 역대 포스터 모음 |
-지역에서 최근 5년 동안 멈춤 없이 축제를 진행했다는 자부심도 있을 것 같아요. 논문에 소개된 해마다의 슬로건은 성장해나가는 춘천퀴어문화축제의 역사가 그려지는데요. 실천적 경험에서 갖게 된 지식을 나누기 위해 논문을 쓰셨는데,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퀴어문화축제를 만들고 있거나 꿈꾸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거시적인 것, 익숙한 것, 정해진 답을 따르는 것을 과감하게 깨보는 것이 퀴어문화축제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퀴어함’이라는 것이 익숙한 것을 깨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니, 퀴어 의제로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저희는 생각했습니다. 축제 부스를 과감하게 없애고 퍼레이드만 하기도 했고요, 장퀴자랑도 했고요, 퀴어운동회도 했고, 퀴어마블게임도 했습니다. 축제를 만들어가려는 분들께 작은 힌트가 되길 바랍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사람들이지만, 연구자로서 동료들을 만난 느낌은 또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연구 과정에서 예상과 달랐던 점이나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다면?
“저는 연구 주제를 정하고 가설을 세우면서 ‘우리가 퀴어문화축제를 5회나 했으니 지역에서 당연히 가시화되었고, 매우 큰 의미를 던졌다’는 자긍심으로 출발했는데요. 실제 인터뷰를 하면서 ‘춘천 시민들이 얼마나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연구참여자들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더라고요.
지역사회가 아무리 외면하고 부정해도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활동이 필요한 만큼 춘천퀴어문화축제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로 기존의 운동방식과는 다른 방식의 새로운 시도를 했고, 그 과정을 통해 지역사회에 ‘퀴어프렌들리’라는 새로운 인권의 가치를 던졌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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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8월 30일 열린 제5회 춘천퀴어문화축제 중에서 드랙퀸 허리케인 김치 공연 모습. (사진-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
-연구가 끝난 지금, 더 확장하고 싶은 질문이 있나요?
“지금은 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정치에서 페미니즘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그 방향성이 요즘 고민입니다. 정당의 운영에서, 정치의 현실에서 성별 이분법은 견고합니다. 이를테면 비례대표 여성할당제를 논의할 때, 이 제도가 성별 이분법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는 아니잖아요. 남성중심적인 정치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과제와 더불어 ‘퀴어와 정치가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강원도는 인구감소와 인프라 위축 등으로 지역소멸 위기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와 소양강퀴어 연대회의는 그런 강원/춘천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고, 위축된 지역사회에 새로운 변화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 여기서 뭐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며 지역에서부터 연대와 사랑의 다양한 시도를 하는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면 후원계좌가 열려있다. 신한 100-036-349540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필자 소개] 박지하는 석사를 하면 명쾌하고 선명한 정답들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나름 큰 돈을 써서 대학원 진학했다. 페미니스트들의 둥지 성공회대 실천여성학과에 와서 질문과 갈등, 불편함을 계속해서 옆에 남겨두고 뒤죽박죽 부딪히고 불화하면서도 살피며 살아가는 태도가 여성학을 하는 이유라는 것을 배웠다. 정답을 말하는 사람은 못 되었지만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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