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나는 과학]"컴퓨터 수천년 난제 풀었다"…기존 반도체 공정으로 '계산 최적화'
수천 년 걸릴 계산 단축 가능성…물류·금융·반도체 적용 기대
별도 설비 없이 CMOS 공정 활용…상용화 가능성 높여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시대에 수천 년이 걸리는 가장 효율적인 답을 찾아내는 '조합 최적화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반도체 기술이 개발됐습니다. 기존 실리콘 반도체 공정만으로 구현 가능한 특수 목적형 연산 하드웨어가 등장하면서 산업 현장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입니다.
◇ 진동 맞추며 최적 해 찾는 '아이징 머신'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최양규·김상현 교수 공동 연구팀은 기존 실리콘 반도체 공정만을 활용해 차세대 최적화 전용 하드웨어인 '오실레이터 기반 아이징 머신'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이징 머신은 수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답을 찾는 연산 장치입니다. 물류 경로 설계나 금융 포트폴리오, 반도체 회로 배치처럼 계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데 활용됩니다.
연구팀은 여기서 '오실레이터'에 주목했습니다. 오실레이터는 일정한 주기로 신호를 반복하는 진동 소자로, 여러 소자가 서로 신호를 교환하며 리듬을 맞추는 과정에서 가장 안정적인 상태를 찾아갑니다. 연구진은 이러한 자연스러운 동기화 과정을 활용해 최적의 해를 계산하는 구조를 구현했습니다.

◇ 기존 한계 넘었다…정밀도·확장성 동시에 확보
기존 아이징 머신은 복잡한 문제를 처리하는 데 제약이 있었습니다. 소자 간 주파수 차이를 정밀하게 맞추기 어렵고, 연결 구조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오실레이터와 커플러를 모두 단일 실리콘 트랜지스터로 구현하는 방식을 도입해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커플러는 소자 간 상호작용 강도를 조절하는 장치입니다. 연구진은 이를 활용해 연결 강도를 여러 단계로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문제별 중요도와 조건을 더 정교하게 반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연구진은 결과적으로 시스템 안정성과 연산 성능을 동시에 끌어올렸다는 설명입니다.
◇ 물류·금융·반도체까지…산업 활용성 확대
연구팀은 이 기술을 활용해 대표적인 조합 최적화 문제인 '최대 절단(Max-Cut)' 해결에도 성공했습니다.
최대 절단 문제는 네트워크를 두 그룹으로 나눌 때 가장 효율적으로 분리하는 계산 방식으로, 실제 산업에서는 물류 이동 경로 최적화나 투자 자산 배분, 반도체 회로 설계 등에 활용됩니다.
이번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는 연구 단계에 머물지 않고 산업 적용 가능성까지 고려했다는 점입니다.
◇ "기존 생산라인 그대로 활용"…상용화 현실성 높였다
이번 연구의 가장 큰 특징은 특수 소재나 새로운 제조 장비 없이 기존 CMOS 공정을 그대로 활용했다는 데 있습니다.
CMOS는 현재 스마트폰과 컴퓨터용 반도체 대부분에 쓰이는 표준 제조 공정입니다. 즉, 새로운 생산 설비를 구축하지 않아도 기존 반도체 라인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기술 성능뿐 아니라 제조 현실성까지 확보했다는 점에서 업계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최양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오실레이터와 커플러를 모두 실리콘 소자로 구현해 확장성과 정밀도를 함께 확보했다"며 "반도체 설계 자동화와 통신 네트워크, 자원 분배 등 대규모 최적화가 필요한 산업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국제 학계도 주목…AI 시대 계산 구조 변화 가능성
KAIST 윤성윤 박사과정과 김준표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3월 27일 자로 실렸습니다.
AI 시대 들어 연산량이 폭증하는 상황에서 기존 범용 반도체만으로는 전력 효율과 계산 속도 한계가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특정 문제 해결에 최적화된 '전용 연산 하드웨어'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번 연구가 상용화 단계로 이어질 경우 차세대 AI 반도체 경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사진=KAIST)
김건교 취재 기자 | kkkim@tj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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