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를 ‘소비’하지 않고 사랑하는 일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케이팝, 사랑과 탈출 사이’ 연재가 1년 여의 긴 여정을 멈추고 새로운 챕터를 준비한다. 연재가 이어지는 동안, 케이팝 산업에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사건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분석하기보단, 어쩌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내게 생긴 변화들을 늘어 놓고 싶다.
내 최애 그룹의 정규 1집 앨범이 지난달 발매되었다. 앨범명은 ‘오드 투 러브(ode to love)’로, 직역하자면 사랑의 찬가쯤이 될 것 같다. 그들이 부르는 사랑은 분명 아름답고 사랑스럽지만 서글픈 구석이 있다.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이들의 정체성이다. 그러나 이 시리즈가 연재되는 사이, 나는 버블 구독을 끊었고, 앨범도 한 장만 사게 되었으며, 비공식 굿즈에는 돈을 쓰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멤버들을 향한 애정이 식은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친구들과 내 마음 속 한구석 ‘덕질 세포’의 외침을 뒤로 하고 그러기로 했다.
버블 구독을 끊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멤버들이 대학교 축제를 다녀온 뒤 보냈던 메시지 때문이었다. ‘대학교 가고 싶어졌어’, ‘대학교 재밌을까?’라는 이들의 질문에 나는 긴 시간 무어라 답장해야할지 난감해하다 휴대폰을 뒤집었다. 당시 대학생이 된 멤버를 상상하며 쓴 팬픽을 읽고 있던 터라 이 상황이 더욱 심란하게 느껴졌다. 이 일이 있고 난 뒤에도 여전히 버블을 구독하다 해지하기로 마음 먹은 건 별다른 사건 때문은 아니었다. 멤버들이 팬들에게 보내는 ‘고맙다’는 말, 그 한 마디 때문이었다. 나를 찾아와줘서 고마워,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아이돌과 팬 사이에 당연하게 주고 받는 말들이 왜 나는 별안간, 견디기 힘들어진걸까?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콘서트 티켓팅이 실패한 날 자살 충동이 일 정도로 괴로웠다. 살기 위해서라도 웃돈을 주고 표를 사야하지 않을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어느 날은 기다리고 있던 비공식 굿즈 구매 기간을 놓쳐 중고거래 플랫폼을 드나들며 수십, 수백 번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과거 다른 그룹을 좋아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의 덕질이었다. 뮤직비디오의 장면 하나하나를 뜯어보며 분석하거나 예능에 출연한 멤버들의 관계성을 살피고 이를 2만 자 분량의 팬픽에 녹여내는 등의 일은 그만둔 지 오래였다. 나는 팬인가 소비자인가 내내 고민했다.
동료나 지인들에게 ‘케이팝, 사랑과 탈출 사이’ 연재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늘 듣는 질문이 있었다. 제목이 왜 하필 사랑과 탈출 사이냐는 것이다. 읽어보니 탈출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 같다는 거였다. 이는 웃기고도 정확한 분석이다. 다른 필진들은 ‘탈케’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애시당초 탈출을 시도한 적조차 없다. 케이팝을 좋아하기로 처음 마음 먹었던 순간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케이팝 좋아하기를 그만두려고 시도한 적이 없다. 내게 케이팝을 좋아하는 일이 곧 사람의 곁에, 사랑의 곁에 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마음이나 행동을 종용하지 않고 묵묵하게 머무르는 일, 내가 이해하는 사랑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 내가 케이팝을 떠날 수 없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돌을 사랑하며 ‘소비’라는 새로운 덕질을 시작하자 머무름의 방식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티켓팅에 실패한 날의 충동, 공허한 눈으로 새로고침을 누르던 손가락, 앨범 구매수량을 정하는 페이지에서 ‘+’를 한 번 더 누를까 말까 저울질하던 마음. 이 마음들은 내가 멤버들의 곁에서 애정을 쌓아온 시간들의 결실이라기보다, 머무를 곁이 어디인지 잃어버린 사람이 허둥댄 흔적에 가까웠다. 덕질이 사랑의 한 형태가 아닌, 조급함의 결과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덕질 역사 중 이들만큼 사랑한 그룹은 없다고 말해왔으면서도, 내내 사랑하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굴었다.
멤버들이 보낸 ‘고마워’라는 말이 견디기 힘들었던 건, 그 말이 가짜가 아니라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멤버들의 진심과 사랑을 받아서는 안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나는 정말로 너희를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라, 너희를 사랑하고 있는 ‘나’에 집중하고 있는지도 몰라. 나는 어쩌면 너희를 사랑한다는 핑계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지도 몰라. 나를 사랑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서 허둥댔던 것인지도 몰라.
케이팝 산업은 팬의 사랑을 ‘소비’로 번역하는 데 능숙하다. 포토카드를 모으고, 버블을 구독하고, 앨범을 넘칠만큼 사서 팬사인회에 응모하는 모든 일이 애정의 양과 깊이로 포장된다. 팬들은 이 과정 속에서 어느 순간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사랑하기 때문에 지갑을 여는 건지, 지갑을 열어야만 사랑받는 팬이 될 수 있는 건지 혼란을 느낀다. ‘케이팝, 사랑과 탈출 사이’라는 시리즈명은 이렇듯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 놓인 팬들을 위한 제목이었다. 우리가 탈출하고 싶은 건 결국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지금의 상태였던 셈이다.
나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아이돌을 다시 사랑해보기로 했다. 소비를 걷어내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 무대 위에서의 표정, 노래 안에 담긴 감정. 내가 처음 이들을 좋아하게 된 천진함 뒤의 슬픔까지.
내 최애 그룹의 앨범 제목(ode to love, ‘사랑의 찬가’)에서 찬가는 어떠한 가치를 ‘예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무언가의 뜻을 높이 산다는 건 그것에 대해 오래, 깊이 들여다보고 품어온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일테다. 덕질도 그런 게 아닐까. 소비의 언어가 아니라 관계의 언어로, 조급함이 아니라 오래 들여다보는 눈길로, 좋아하는 사람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자꾸 다시 묻는 일 말이다.
아이돌을 향한 마음이든, 일상 속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든, 사랑은 언제나 그 사람을 오래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포토카드 안의 얼굴이나 인형 굿즈에서 비춰지는 얼굴이 아닌, 무대 위에서 가쁜 숨을 고르는 사람을 바라보는 데서, 버블 속 메시지가 아니라 그 말을 보내기까지 그가 살아낸 성실한 하루를 들여다보는 데서.
‘관계’를 선택과 투자의 영역으로 여기게 된 사회에서, 케이팝 팬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팬들은 아이돌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투자’한다는 착각 속에서 소비자 정체성을 키워 나간다. 소비자가 제1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우리는 사랑을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투자에 실패한 투자자처럼 굴지 않는 팬이 되기 위해서, 맡겨 놓은 빚이 있는 양 굴지 않기 위해서, 그리하여 멤버들과 진실된 관계를 맺기 위해서 진정으로 떠올려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그러면 한 번 더 처음 그 자리로 돌아가면 된다. 처음 케이팝을 좋아하기 시작한 순간으로, 열띤 마음으로 무엇인지도 모를 감정을 붙잡아보기로 결심한 그 순간으로.
케이팝 팬은 결국 사람을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로 한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을 지금의 모습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고, 그가 살아온 과거와 살아가게 될 미래의 어느날까지도 성급한 판단 없이 지지하겠다는 뜻이다. 산업이 만들어낸 이미지 너머의 사람을, 팬덤이 규정한 서사 너머의 감정을 보려할 때 덕질은 비로소 사랑이 된다.
탈출이냐 사랑이냐를 묻는다면, 나는 이제 조금 다르게 대답할 수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탈출하지 않는 게 아니라 탈출하지 않고 아이돌의 곁에 진실되게 머무르기로 마음 먹은 순간 비로소 사랑이 시작된다고. 그리고 그 사랑은, 내가 사랑하고 있는 아이돌이 부르게 될 찬가와 마찬가지로, 오래 머무는 사람만이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머무른다는 건 가만히 곁에 ‘있기’를 택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도, 머무름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다. 오래 바라보기로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 팬덤 안팎의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일, 산업 구조를 비판하는 일. 이 모든 ‘하기’가 ‘머무르며 사랑하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팬이 사랑하는 법을 잃어버린 채 소비자가 된 데에는 팬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도 있다는 사실이다. 앨범을 여러 장 사도록 유도하기 위해 랜덤 포토카드를 넣는 일, 팬사인회 응모를 위해 놀랍도록 많은 수량의 앨범을 구매하도록 하는 일. 케이팝의 시스템은 팬의 사랑을 ‘소비’로 번역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구조다. 시스템은 팬들을 서로의 경쟁자로 만들기도 한다. 더 많이 소비한 팬이 더 진심인 팬이 된다는 논리 속에서, 팬덤은 증명의 공간으로 전락한다. 이렇듯 구조에 발목을 잡혀 있는 팬들에게 그저 ‘사랑하는 법을 되찾으라’고 말하는 일은 반쪽짜리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는 시스템이라는 나머지 반쪽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이미 우리는 새로운 챕터를 연 지 오래다. 케이팝 팬들은 이미 ‘케이팝, 사랑과 탈출 사이’ 연재가 시작하기 훨씬 이전부터 사랑을 각자가 정의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왔다. 아이돌 사생활 보호를 위해 ‘공출목’(공항, 출근길, 목격담의 준말) 소비를 지양하는 움직임부터 소속사의 부당한 결정에 맞서 목소리를 모은 팬덤, 혐오와 차별이 팬덤 안에 스며들 때 그것을 문제라고 말하며 싸우기로 결심한 팬들까지. 머무르기 위해 가만히 있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이미 여기에 있다.
‘케이팝, 사랑과 탈출 사이’가 사랑하는 법을 되찾아 보자고, 시스템의 문제 한복판에 들어가 사랑을 위해 애써보자고 손 내미는 이야기였다면, 다음 챕터는 그 사랑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묻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챕터를 쓰는 건 바로 당신의 몫이다.
노혜지 독서공동체 ‘들불’ 운영자·페미니즘 단체 활동가
여기, 케이팝과 함께 자란 이들이 있다. ‘최애’가 몇 번 바뀌는 동안 케이팝은 세계 음악 시장을 흔드는 장르가 되었고 국익을 거론하는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장밋빛 전망’만 가득할까? 물음표가 남는다. 기획사는 수익에만 매달리고, 팬덤은 덕질을 가장한 노동으로 지쳐간다. 사건사고도 반복된다. ‘케이팝, 사랑과 탈출 사이’는 케이팝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대안을 함께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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