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골목에 숨은 안도 다다오...예술과 교육의 백년지대계

아르떼 2026. 5. 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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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효안의 아트 벨베데레
서울 한복판의 안도 다다오 건축
JCC 아트센터&크리에이티브센터

세계 건축에는 몇몇 ‘거장의 이름’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독보적인 이름 중 하나가 안도 다다오다. ‘금세기 가장 저명한 일본 건축가’,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일본인 최초의 수상자’, ‘노출콘크리트 건축의 미학을 세계적 언어로 끌어올린 건축가’’...

그의 건축 스타일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그가 서양이 압도하던 세계 건축계에서 독보적인 예술적 지평을 구축한 최초의 동양 건축가라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옆 나라의 세계적 거장임에도 한국에선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의외로 쉽게 접하기 어렵다. 뮤지엄SAN, 본태박물관 등이 있지만, 강원도와 제주도에 있다. 풍광은 더없이 아름답지만, 접근성은 만만치 않다. 언제든 마음먹고 찾기에는 지리적 제약이 따른다. 최근 마곡에 그가 설계한 LG 아트센터가 문을 열었지만, 그곳 역시 서울의 중심부는 아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울 도심 한가운데, 종로구 혜화동에 안도 다다오의 걸작이 숨어 있다. 조선시대 도성의 동쪽 문인 혜화문(惠化門)에서 이름이 유래된 혜화동(惠化洞)은 ‘은혜를 베풀어 교화’한다는 동네 이름처럼, 오래전부터 “예술과 인문이 은혜롭게 살아 숨 쉬는“ 동네였다. 과거 서울대 문리대가 자리 잡고 있었기에 이 동네를 가로지르는 길을 대학로라 불렀다. 그리고 바로 그 길의 북쪽 끝 지점에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마치 ‘예술과 인문과 교육의 메카’를 굳건히 지키는 수문장처럼.


안도 다다오가 서울에 처음 남긴 기념비적 건축물의 이름은 JCC 아트센터&크리에이티브센터. 복합예술교육공간인 이 건축물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다. 아트와 크리에이티브라는 서로 다른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약 100미터 가량 떨어진 위치에 각각 따로 지어졌다. 물리적으로는 분리된 건축물이지만 두 건축을 관통하는 철학은 하나다. 바로 ‘예술과 교육의 장(場)’이라는 개념이다.

JCC의 첫 글자인 J는 ‘재능’을 뜻한다. 건축주는 내년이면 창업 반세기를 맞는 한국의 대표적 교육기업 재능그룹 박성훈 회장.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철학을 공적으로 나눌 공간을 꿈꿔 왔다. "예술적 열정, 창의적 생각, 교육적 사고를 끌어내고 실험하고 길러낼 수 있는 공간."

이 꿈을 실현할 건축가를 오래 찾던 그는 결국 안도 다다오를 선택했다. 그러나 안도 다다오는 섣불리 설계를 맡지 않기로 유명하다. 건축예술은 자본을 가진 건축주와 설계를 맡은 건축가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룰 때 비로소 극강의 완성도에 도달한다. 박성훈 회장과 안도 다다오는 대면은 물론 수많은 서신을 주고받으며 최고의 건축을 위한 교감을 이어갔다.

이 아름답고 지난한 과정은 최근 개관한 JCC 아트센터&크리에이티브센터 내의 <안도 다다오 전시관>에 실물 편지와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다. 위대한 건축의 시작과 끝은 결국 건축주와 건축가의 진심, 그리고 예술을 위한 집요함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기록이다.

혜화동 로터리 북쪽 완만한 오르막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JCC 아트센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상당한 규모의 건축물이고 노출 콘크리트라는 안도 다다오 특유의 외장임에도, 오래된 동네의 정겨운 풍경과 위화감 없이 어우러진다. 분명 이질적 건축인데도 묘하게 그 장소와 맞아떨어지는 시각적 감동은 거장의 실력을 절로 느끼게 한다.

지면의 경사를 그대로 살린 건물 앞에는 시원하게 뻗은 외부 계단이 놓여 있다. 누구라도 올라설 수 있는 이 계단을 통해, 안도 다다오의 건축 세계는 누구에게나 개방된다. 직선의 계단을 오르면 널찍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시원한 중정이 펼쳐진다. 동시에 카페의 외부 테라스이기도 한 공간이다. 시민들은 그저 이 공간을 한가로이 거닐 수도 있고, 마음 내키면 차를 한잔하면서 공간을 음미할 수도 있다.

뛰어난 건축예술을 더 많은 시민이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야, 그 사회의 건축 문화도 성숙한다는 점에서, JCC 아트센터는 ‘공공적 접근성’을 극대화한 건축이다.

이곳의 핵심 건축 철학은 ‘예술적 체험’이다. 특히 콘서트홀은 프랑스 필하모니 드 파리, 일본 산토리홀 등의 음향설계를 총괄한 나가타 어쿠스틱스가 참여했다. 175석의 모든 좌석이 동일한 음향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 단계부터 정밀하게 계산했다. 인근 지하로 지하철이 지나가는 점을 고려해 공연장을 거대한 상자 안에 또 하나의 상자를 넣는 ‘박스인박스(Box in Box)' 방식으로 시공했다. 덕분에 음향의 완성도는 가히 놀라울 정도다.

노출콘크리트 건축기법은 건축물 자체를 하나의 캔버스로 확장시킨다. 매끈하고 어떠한 장식도 배제된 내부 벽면은 프로젝터를 통해 영상 미디어아트를 구현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조건을 갖춘다. 콘서트홀 계단에서 만날 수 있는 금민정 작가의 작품은 ‘문’과 ‘물’의 이미지를 교차시키며, 견고하고 건조한 노출콘크리트의 물성 위에 부드럽고 촉촉한 시각적 착시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대비는 공간의 깊이를 한층 더 풍부하게 확장시키는 동시에, 관람객의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한다.

JCC 아트센터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JCC 크리에이티브센터가 나타난다. 아트센터가 강력한 직선과 사선이 교차하는 외향적 에너지로 압도한다면, 크리에이티브센터는 훨씬 내향적인 건축이다. 하나는 사람을 모으는 건축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을 모으는 건축이다. 하나는 예술을 경험하는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그 경험을 사유로 확장하는 공간이다. 붉은 철근 조각작품을 지나며 본격적 공간이 시작된다. 어떤 공간이 펼쳐질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이미지의 구조는 자연스럽게 창조의 에너지를 끌어낸다.

안도 다다오 건축 가운데 도시 한복판에서 이렇게 쌍둥이 철학 구조를 구현한 사례는 드물다. 그래서 더욱 두 건축을 함께 경험하는 순간, 건축이 하나의 사유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두 건축은 1, 2권으로 구성된 하나의 책이다. 1권에선 ‘압도적 응집의 예술’을, 2권에선 ‘내면을 향하는 사유의 힘’이라는 주제에 감동한다.

무엇보다 이 건축은 장소성(場所性)이 의미심장하다. 조선시대 문화가 꽃피웠던 한양도성 성곽길과 근현대 문화와 교육의 메카 대학로가 정확히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마치 수백 년 예술의 거리를 지키는 하나의 건축적 이정표처럼.

도시는 결국 건축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어떤 건축은 예술과 교육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의 초석이 된다.

최효안 예술 커뮤니케이터·가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