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외국인 되기

아레나옴므플러스 2026. 5. 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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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다 보니 서울이 재미 없어졌다. 어딜 가나 사람 많고 뻔한 도시. 다들 서울에서 뭘 하면서 놀까? 그래서 외국인들이 남긴 ‘서울 여행 브이로그’를 들여다봤다. 그러자 서울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국인의 심정으로 다녀본 서울 1박 2일 여행기.

경복궁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아일린(@EileenAldis)은 '대한민국 서울에서 할 수 있는 11가지 멋진 일'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첫 번째로 경복궁과 수문장 교대식을 소개했다. 그간 서울에 살면서 광화문 앞은 종종 지나가도 그 안에 들어가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경복궁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고, 어제나 오늘이나 아주 새로운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언제라도 갈 수 있기에 더욱 갈 생각을 못했다. 경복궁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2시에 가까웠고, 광화문 안에는 수백 명이 커다란 원을 만들고 있었다. BTS 멤버라도 왔나 싶던 찰나, 북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복궁에서는 하루 두 차례, 오전 10시와 오후 2시 수문장 교대 의식을 치른다. 약 70명의 수문군과 15명의 치타대가 등장하며 시작하는데 의상과 진행 방식은 15세기 조선 전기의 학술 고증을 거쳐 재현했다고. 이 내용은 모두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순서로 소개됐다. 경복궁 안은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 때문에 정말 조선시대에 온 듯한 감흥이 들었다.  

청계천
'나는 이 지역과 공동체 의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서울에서 4일간 머무르던 헤일리(@itshaileyslife)가 청계천에 다녀오고 남긴 말이다. 그녀가 만든 영상을 보면서 청계천에 야외밤도서관이 열린다는 걸 처음 알았다. 굳이 야밤에 청계천까지 가서 책을 읽을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매년 봄 개장하는 '책읽는 맑은냇가'는 시민이 독서를 할 수 있도록 2000여 권의 책과 함께 조명, 의자, 테이블을 준비한다. 올해는 4월 23일부터 개장할 예정. 내가 청계천에 갔을 때는 야외도서관이 열리기 전이었고 이른 오후였지만 여전히 사람은 많았다. 청계천은 서울에서도 자주 찾는 산책로지만, 징검다리에서 차례대로 사진을 찍는 외국인 단체 관광객을 보니 새삼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청계광장 근처에는 'KEEP SWIMMING' 문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청계천은 분명 수영금지구역인데, 알보 고니 BTS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타이틀곡 'SWIM'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고 한다. BTS가 없는 서울은 이제 상상도 안 된다. 

명동
조이스(@JourneywithJoycee)는 누구한테 추천받았는지 몰라도, 명동을 아주 정석으로 즐겼다. 명동성당에서 간단히 산책을 마치고, 명동교자에서 칼국수와 만두를 깨끗이 비운 뒤, 올리브영 명동 타운으로 가는 것. 우리가 도쿄 여행을 가면 한 번쯤 시부야 돈키호테에 들르듯, 외국인은 서울에서 명동 올리브영을 찾는다. 여기서 유일하게 안 가본 곳이 올리브영이다. 전국에는 1000개 넘는 올리브영이 있고, 굳이 사람 많은 명동에서까지 올리브영에 가고 싶진 않았다. 올리브영 명동 타운은 상점보다 테마파크에 가까웠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던 곳은 입구 초입에 마련된 마스크팩 매대. 애초에 낱개가 아닌 박스 단위로 팔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중국인 관광객은 마스크를 도매상처럼 쓸어 담고 있었다. 간 김에 뭐라도 하나 사고 싶었지만, 선택지가 너무 많아 구경만 하고 나왔다. 다음에 또 명동 올리브영에 들를 일이 있다면 외국인들의 '올리브영 필수 리스트'를 확인해야겠다. 

북촌 한옥마을
조던(@Jordysjourneys)의 스마트폰 배경화면을 차지한 건 BTS 정국. 그는 영상 제목처럼 '서울에서의 48시간'을 보냈고, 그중 일부를 북촌 한옥마을에 쓰기로 했다. 조던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가며 야무지게 시간을 보냈다. 사실 북촌 한옥마을은 정말 갈 일이 없는 동네 중 하나다. 지하철역과 거리가 멀고, 도로가 좁아 접근성도 떨어지니까. 하지만 오랜만에 찾은 북촌 한옥마을은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었다. 조던도 영상에서 설명했지만 북촌은 거주자 지역이기에 방문객은 조용히 다녀야 한다. 북적이는 서울에서 조용하게 산책하고 싶어질 때는 종종 북촌을 찾아보려 한다.  

N서울타워
크리스틴(@ChristineLe)은 도쿄에서 2주간 일정을 보낸 뒤, 생애 처음으로 서울을 찾았다. 크리스틴 일행이 5일간의 일정 중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N서울타워. 거기서 눈길을 끈 건 사랑의 자물쇠였다. 거대한 벌집 모양 자물쇠 더미 앞에서 크리스틴 일행은 N서울타워를 '러브 타워'라 불렀다. N서울타워는 서울 어디서도 보이지만 정작 1년에 한 번도 갈 일이 없는 곳이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만족하는 서울의 상징 같은 존재. N서울타워에 갈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케이블카를 타거나 남산순환버스를 타거나. 이번에는 소월로에서 출발해 도보로 이동하기로 했다. 남산은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벚꽃 명소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산책로에는 트레일 러닝을 즐기는 외국인들이 있었고, 타워에 도착하니 막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벚꽃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N서울타워는 뻔하지만 여전히 근사한 데이트 장소였다.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도 로맨틱했지만, 스타벅스와 공차 등 카페는 물론 요기를 할 수 있는 식당들도 여럿 있다. 아, 여담이지만 이번에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남산과 N서울타워는 각각 높이 262m, 236.7m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편의점 음료 레시피
요즘 한국인 사이에서 유행하는 '일본 편의점 레시피'가 있다. 하루 2만 보씩 걷는 여행객들이 피로 해소를 위해 만든 '포카 삿포로 + 모리나가 에너지 젤리' 조합이다. 유튜브를 보다 보니 외국인들이 만든 '한국 편의점 레시피'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띈 세 가지 음료를 직접 만들어봤다. 첫 번째는 '아이스 헤이즐넛향 파우치 커피 + 바나나맛 우유'. 처음에는 바나나 우유가 커피 안에 퍼지는 모습이 꽤 그럴싸했는데, 바나나 맛도 헤이즐넛 맛도 아닌 그냥 단맛만 강했다. 별 다섯 개 중 세 개. 두 번째는 '복숭아 곤약젤리 + 딸기맛 우유'. 아주 예쁜 핑크빛 음료가 나올 것 같지만 막상 조합하니 평범한 흰색을 띠었다. 복숭아 맛과 딸기 맛이 분명 동시에 느껴지지만 조화롭지 않은 느낌. 별 다섯 개 중 두 개. 마지막 세 번째는 '초코에몽 + 빵빠레'. 얼음 컵에 초코에몽을 가득 따라 붓고 그 위에 빵빠레 소프트콘을 통째로 집어넣으면 끝. 익숙한 바닐라 초코 아이스크림이 녹은 맛이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지만 세 가지 음료 중 가장 괜찮은 맛이었다. 별 다섯 개 중 네 개. 

국립현대미술관
텍사스언니(@TexasUnnie)는 '서울의 비 오는 날 브이로그' 영상을 담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텍사스언니가 관람한 전시는 지난 1월부터 진행 중인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평소 민화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텍시스언니는 그간 한국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볼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정말 즐거웠다고 말했다. 내가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을 때는 평일 오후였지만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가 갑자기 인기를 끈 것 같진 않고, 얼마 전 전시를 시작한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 때문인 듯했다. 미술관 앞 광장에서는 특이한 설치물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파란색 종이가 휘날리는 파빌리온은 BTS 신곡 'SWIM'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여기서도 또 한 번 느꼈다. BTS가 없는 서울은 이제 상상도 할 수 없겠다고. 

광장시장
푸드 크리에이터 '티피쿡스(@tiffyycooks)'는 아침 11시부터 광장시장으로 향했다. 그는 광장시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현지인과 관광객이 한국의 아이코닉한 길거리 음식을 위해 찾는 곳.' 나 역시 이따금 비가 오는 날이면 광장시장에서 빈대떡을 시켜놓고 기분을 냈지만, 2019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길 위의 셰프들: 아시아>에 광장시장이 나온 이후 자연스레 발길을 끊게 됐다. 사람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광장시장에서는 우리말보다 외국어가 더 많이 들렸다. 
"호떡 오이시! 이코 타베루?" 오랜만에 찾은 광장시장은 코엑스의 재래시장 버전 같았다. 어딜 가나 비슷하게 생긴 골목을 따라가다 보니 금세 길을 잃었는데, 곳곳에는 한국 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수입 과자와 각종 건강식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곳에서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결국 흘러 흘러 들어간 곳은 스타벅스. 지난해 5월 문을 연 스타벅스 광장마켓점에서는 '실타래 바움쿠헨' '포목보 딸기 크레이프' '우리 팥 찹쌀 도넛' 등 스페셜 메뉴를 맛볼 수 있었다. 그중 찹쌀 도넛을 시켜봤는데, 맛은 평범했다. 줄은 길지만 기왕 광장시장까지 갔다면 시장 초입의 '광장시장 찹쌀꽈배기'에서 먹는 걸 추천한다. 

서순라길
종묘 서쪽 담장을 따라 이어진 서순라길. 이곳은 조선시대 순라군이 순찰을 하던 길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은 곳이다. 캐리(@caricakes)는 "서울에는 '가로수길' '경리단길' 같은 트렌디한 길"이 있다며, 그중 하나로 서순라길을 소개했다. 외국인에게 서순라길은 고즈넉한 성곽길을 배경으로 트렌디한 카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통했다. 한국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관광지를 다니다 보면 테라스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서순라길에는 유독 와인 숍과 펍이 많아 대낮부터 기분 좋게 취할 수 있었다. 그중 눈길을 끈 건 캐리커처 스튜디오. 서울 곳곳에는 캐리커처 스튜디오가 많은데 7000원을 내면 1분 안에 캐리커처를 그려준다. 이따금 외국에서 캐리커처를 그리는 길거리 화가들을 보며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에서는 이를 프랜차이즈화했다. 궁금한 마음에 들어가보려 했지만, 남자 혼자 들어가기에는 조금 슬퍼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잠수교
"제트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쇼의 일부분인지는 확실치 않다." '리리 트레블스 (@ririRegine)'는 저녁 7시 30분부터 열리는 달빛무지개분수를 보기 위해서 잠수교를 찾았다. 한 번도 생각지 못했지만 리리의 영상을 보고 나니, 잠수교 앞에서 제트스키 타는 사람들이 정말로 서울시에서 고용한 직원들인지 궁금해졌다. 나는 세빛둥둥섬까지 따릉이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인근 지하철역에서 걸어가기에는 너무 고되니까. 잠수교는 이미 서울 사람들에게 없어선 안 될 레저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러닝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모터사이클 타는 사람, 데이트하는 사람. 잠수교에서는 강변을 따라 산책하던 한 외국인 가족을 봤다. 잠수교에서 가족과 산책하는 건 나도 못해봤는데. 다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잠수교를 걸으며 제트스키 요원들의 수상 쇼를 구경해봐야겠다. 

CREDIT INFO

Editor 주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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