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 9세 형제, 인수봉 오르다

정유진 2026. 5. 6.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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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노는 것보다 아빠랑 바위 타는 게 재밌어요”
[꼬마 등반가 형제의 인수봉 등반기]

지난 11월,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7세, 9세 형제가 아버지와 함께 인수봉에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인수봉에 열 번 이상 가보았지만 바위 위에서 어린아이를 본 적은 없었다. 인수봉 등반은 암벽등반에 익숙한 성인들에게도 체력을 탈탈 털어야 하는 힘든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어린 아이들이 해냈다. 이건 엄청난 일이다. 사진 속의 아이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봄이 오고 본격적인 등반 시즌이 찾아왔다. 이 가족이 마침 두 번째 인수봉 등반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급히 인터뷰일정을 잡았다.

인수봉 인수A변형 루트를 오르고 있는 둘째 지훈이. 이날 등반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박수호씨의 산악부 후배, 강기훈씨와 김민규씨가 함께했다.

"정상에 자판기가 없어서 실망했어요."

입이 삐죽 나온 여덟 살 지훈이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인수봉 정상에 처음 올라간 날 기분이 어땠느냐고 물으니 나온 대답이다. '인수봉 꼭대기엔 시원한 콜라 자판기가 있다'는 농담은 40년 넘게 이어져 온 선배 산악인들의 얄미운 고전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기대하며 바위를 올랐을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귀여움에 웃음이 났다. 어릴 적부터 아빠 손을 잡고 바위 맛을 알아버린 꼬마 등반가 박시훈(10)·지훈(8) 형제를 만났다.

하산을 마친 가족을 만나기 위해 우이동 카페에서 기다렸다. 멀리서 걸어오는 아이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커다란 배낭을 멘 아빠 박수호씨 옆에 서니 아이들의 체구가 더욱 아담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생각보다 더 작네요."

무심결에 튀어나온 말에 첫째 시훈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발끈했다.

"기자님, 저 안 작아요! 아빠랑 15cm밖에 차이 안 나요!!"

화를 내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웃으며 달래주었다. 야무진 자신감이 느껴졌다. 자기 몸집만 한 배낭을 메고 험한 바윗길을 내려왔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지난 가을, 온 가족이 함께 인수봉 정상에 오른 날이다. 
인수봉 정상에 섰을 때 시훈이는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고 했다.

새벽 4시 출발, 15시간 인수봉 등반 대장정

이 가족의 하루는 남들보다 일찍 시작됐다. 새벽 4시, 강원도 속초에서 출발해 서울 우이동으로 향하는 강행군이다. 북한산 입구에서 꼬박 1시간 30분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고,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바위 앞에 설 수 있었다.

인수봉은 해발고도 810m에 달하는 북한산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암봉이다. 등반 거리만 200m에 달한다. 온종일 줄을 매달고 올라야 하는 멀티피치 코스가 대부분이다. 시훈이와 지훈이는 작년 10월, '고독길'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인수봉 정상에 섰다. 봄이 오자마자 아빠는 아이들을 다시 꼬드겨 인수봉을 찾았다.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작년 가을 느꼈던 짜릿함을 잊지 못해 흔쾌히 따라 나섰다. 이번 도전지는 '인수A 변형' 루트다.

인수A 변형 루트는 고독길 다음으로 유명한 입문자 코스다. 비교적 쉬운 길이라지만 아이들에게는 결코 만만치 않다. 피치마다 나무나 테라스가 놓여 있어 고도감이 덜한 고독길과 달리, 인수A는 발밑이 훤히 뚫린 바위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아이들은 훨씬 더 무섭고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이 루트에는 아이들이 많이 경험해 보지 못한 매끄러운 슬랩 구간이 있었다. 둘째 지훈이는 불과 몇 시간 전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발 밟을 데가 없어서 다리를 파닥파닥 거렸어요! 아빠가 밑에서 발을 받쳐줘서 겨우 올라갔어요. 휴…."

무서운 마음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등반을 마치자마자 금세 웃으며 장난을 쳤다는 게 형 시훈이의 증언이다. 개구쟁이 형제와 함께하는 등반은 즐겁고 시끌벅적한 모양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인수봉을 오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원래 동행 등반 취재로 계획되어 있었다. 비 예보로 일정이 틀어지며 함께하지 못했다.)

"처음 인수봉 바위 앞에 섰을 때는 너무 크고 높아서 '우왁!' 하고 소리부터 질렀어요. 무서워서 자신감이 뚝 떨어졌거든요. 그런데 결국 다 같이 정상에 올랐어요.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서울 시내가 꼭 작은 장난감 마을처럼 보였어요."

형 시훈이의 감상에 지훈이도 맞장구친다. 아이들의 작은 얼굴에서 감출 수 없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아이들이 암벽 등반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버지 박수호(45)씨의 영향이 크다. 그는 등반을 시작한 지 27년이 다 되어가는 베테랑이다. 수호씨는 현재 국립속초등산학교 교육운영실에서 실장직을 맡고 있 다. 어린아이들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과정과 일반인 대상 트레킹 관련 교육을 운영한다.

아빠가 처음부터 아이들을 인수봉에 데리고 가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시훈이, 지훈이가 처음 클라이밍을 시작한 것은 세 살 무렵 인공암장에서였다. 시훈이는 그날 기억이 생생하다.

"엄마가 다니시던 암장에서 처음 시작했던 날이 기억나요. 어른들이 칭찬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어요!"

"저는 무서워서 내려달라고 하며 눈물 찔끔 흘렸어요."

지훈이도 그 시절을 기억한다.

여섯 살 무렵에는 첫 자연 암벽을 접했다. 강원도 고성 화엄사의 수바위에서였다.

"손이 아플 법한데 제법 동작을 따라 하며 오르더라고요. 크랙에 손을 넣는 것도 슬랩에서 발을 살피는 것도 꽤 자연스러웠어요."

수호씨는 그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그후로 가족이 다 함께 등반을 이어갔다. 자연스럽게 산행과 암벽에 익숙해졌다. 서서히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 가족 넷이 인수봉을 오르는 것이었다.

올해 봄 다시 찾은 인수에서 아이들은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등반 초반, 슬랩 벽을 오르고 있는 첫째 시훈이.
아버지 박수호씨의 도움을 받아 톱로핑 등반 중인 지훈이. 원주 여심바위다.

안전하게, 즐겁게 등반하기

아이들과 함께하는 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안전'이다. 이번 인수봉 가족 등반을 계획하며 박수호씨가 가장 신경 쓴 과정 역시 안전한 시스템 교육이었다. 시훈이와 지훈이는 인공암장에서 멀티피치 등반 시스템과 하강 훈련을 10회 이상 반복했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매듭을 묶고, 자기 이중 확보를 점검하며, 하강 장비 사용법을 하나하나 몸에 익혔다. 반복 훈련 덕분에 복잡하고 헷갈릴 수 있는 하강법을 완벽히 마스터할 수 있었다.

"하강이 제일 재밌어요!"

아이들에게는 줄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마냥 즐겁다. 작은 손으로 차가운 금속 장비를 쥐고 집중했을 모습에 대견한 마음이 든다.

"어른이 조급해하거나 강압적이면 아이들은 금세 마음을 닫아요. 그래서 스스로 하고 싶어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줬죠."

아이들이 재미를 느껴야 등반도 계속할 수 있다는 게 아빠의 생각이다. 시훈이와 지훈이도 그렇게 바위와 친해졌다. 아빠는 등반을 갈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바위가 놀이터처럼 느껴지게 했다.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날에는 억지로 시키기보다 로프로 그네를 만들어 태워 주거나 푹 쉬게 했다. 등반을 '힘든 운동'이 아니라 '신나는 놀이'로 여기게끔 아이들 눈높이에 함께 놀아주었다.

웃으며 장난치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 억지로 바위를 오르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스쳤다. 인수봉은 성인들도 힘들어 할 만큼 체력과 담력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온종일 산에서 버틸 체력은 물론, 추락에 대한 공포감을 이겨낼 용기도 필요하다. 그 외에도 바위 위에서 맞는 칼바람과 손에 스치는 날카로운 고통도 넘어야 할 걸림돌이다. 아빠에게 왜 이 힘든 등반을 아이들과 함께하는지 물었다.

"지치고 힘든 순간은 분명히 있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서로 도우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걸 느꼈어요."

아이들의 즐거운 얼굴과 성장하는 모습은 함께하는 가족 등반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등반 중에도, 훈련 중에도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의 의사와 즐거움이다. 인수봉 등반 중에도 아이들에게 "힘들면 이제 그만 내려갈까?"라고 묻곤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니야, 정상은 가야지!"라며 눈을 빛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려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것이다.

무서워하는 아이를 무작정 도와주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옆에 붙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어려운 구간에서도 스스로 오를 수 있을 만큼 적절히 도와준다. 앞에서 억지로 끌기보다 옆에서 발을 맞춰주며 힘을 보태는 것이 아빠 수호씨의 방식이다.

강원도 고성 대명암장에서 어린 지훈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빌레이도 본다.

위험을 다루는 방법 가르치기

해외에서는 가족이 동네 마실 나오듯 자연스럽게 암벽 등반을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온 가족이 자연 속에서 뛰놀고 아이들은 바위를 만지며 놀이처럼 즐긴다. 반면 한국은 안전 기준이 무척 엄격하다. 조금이라도 위험해 보이면 시도조차 막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위험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실패하며 성공해 보는 소중한 경험을 잃게 된다.

수호씨는 이런 한국의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밝혔다.

"어떤 활동이든 위험요소는 존재하기 마련이에요. 중요한 건 위험을 무조건 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줄이고 대처할지 배우는 거죠."

수호씨는 "아이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피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위험한 것'에 '신중하게' 도전하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비로소 성장한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등반을 즐기는 것은 모든 클라이머가 꿈꾸는 로망이다. 박수호씨는 "이제는 가족을 넘어 '행복한 파트너'가 된 기분"이라며, "바위에 매달린 아이들의 모습이 그저 대견하고 사랑스럽다"고 말한다. 아이들도 그 마음에 화답하듯 웃으며 아버지를 따라 나선다.

"새벽부터 서울까지 와서 등반하느라 힘들지는 않았어요?"라는 질문에 형 시훈이가 씩씩하게 답한다.

"하나도 안 힘들고 오히려 에너지가 넘쳐요! 아빠랑 산에 오는 게 제일 좋거든요."

시훈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가족과 바위를 타는 게 훨씬 더 재밌다"며 암벽등반의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선등을 서는 아빠의 뒷모습이 제일 멋지다'는 아들의 말 속에는, 아빠를 닮은 클라이머가 되고 싶은 기대감이 섞여 있다.

마지막으로 형제에게 물었다.

"등반하면서 언제가 제일 좋아요?"

아이들은 망설임 없이 입을 모았다.

"영차영차 바위를 올라갈 때요! 어려운 구간을 포기하지 않고 넘어섰을 때가 제일 뿌듯해요."

"가족들이랑 다 같이 바위 아래까지 걸어가는 시간도 좋아요."

'꼬르륵….' 지훈이 배에서 소리가 났다.

"저 대답 바꿀래요. 바위 타고 내려와서 삼겹살 먹을 때가 제일 좋아요!"

하루 종일 고생한 아이들에게 아빠가 약속한 것은 삼겹살이었다.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아이들의 집중력을 배고픔이 빼앗아가 버렸다.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얼른 가서 저녁 먹어요!"

어린 시절부터 줄에 매달려 놀며 자연스럽게 클라이밍을 접했다. 아버지 박수호씨는 침대에 클라이밍 홀드를 설치하는 등 집 곳곳을 꾸며 같이 놀곤 했다.
지난 가을 인수봉 고독길 등반 중 추위에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형제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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