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번들링, 공정위의 골든타임은 지금이다 [이창훈의 경쟁법인사이트]

2026. 5. 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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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훈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최근 1~2년 사이 글로벌 빅테크들이 받아 든 청구서가 있다. 한 곳은 기나긴 분쟁 끝에 핵심 결합상품의 분리 판매를 약속했고, 다른 한 곳은 디바이스 제조사와의 결합적 거래구조에 새로운 제약을 받게 되었다. 이 청구서들의 공통된 키워드는 “AI 번들링(결합판매)”이다. 미국, EU, 영국, 독일, 호주, 그리고 일본의 경쟁당국까지, 마치 단톡방에서 같은 링크를 돌려본 사람들처럼 같은 화두를 들고 회의실에 들어선다. 하지만 한국 공정위는 아직 그 단톡방에 없는 것 같다.
먼저 짚고 갈 것: 번들링은 그 자체로 위법은 아니다
논의에 앞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두자. AI 번들링이 곧 위법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햄버거 세트가 단품보다 싸다고 해서 맥도날드를 경쟁법 위반으로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통신사가 인터넷·TV·휴대폰을 묶어 파는 결합상품이 매년 수백만 가구의 통신비를 줄여주는 것도 같은 원리다. 오피스 스위트는 어떠한가. 워드·엑셀·파워포인트가 따로 팔렸다면 우리는 아직도 과거 한컴타자연습 수준의 생산성에 머물러 있었을지 모른다.

생성형 AI도 마찬가지다. 기존 생산성 도구와 결합될 때 학습 비용이 줄고, 데이터 흐름이 매끄러워지며, 가격도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사용자는 문서편집기, 메신저, 일정관리, 화상회의를 매번 따로 결제하고 따로 로그인할 수고를 덜고, 사업자는 규모의 경제를 누린다. 경쟁법이 백 년 가까이 끼워팔기를 다뤄오면서도 그 자체를 위법으로 보지는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은 “번들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번들링이 경쟁을 저해하고, 어떤 번들링이 시장을 키우는가”를 식별해내는 분별의 문제다.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먹지 말라”가 아니라 “이 약은 이 증상에만 쓰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글로벌 경쟁당국들이 지금 AI 번들링을 주목하는 이유도 결합판매를 일률적으로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분별의 기준을 새 산업에 맞게 다시 짜기 위해서다.

침묵의 비용은 한국의 소비자가 부담한다
AI 번들링에 대한 해외의 동향은 비교적 또렷하다. 미국에서는 법무부(DOJ)가 제기한 구글 사건에서 연방법원이 지난해 시정조치 판결을 통해, 플레이 스토어(Play Store) 등 핵심 앱의 라이선싱을 검색·크롬·Gemini 앱의 사전탑재와 결합하는 거래구조에 일정한 제한을 두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별도로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의 협력 관계를 포함한 광범위한 AI·클라우드 시장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유럽 연합(EU)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팀즈-오피스365 결합 사안을 분리판매 약속으로 마무리지었고,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생태계에 대한 ‘전략적 시장지위(SMS)’ 지정 조사를 정식 개시했다. 호주 경쟁소비자위원회(ACCC)는 코파일럿 통합 과정에서의 소비자 안내 부실을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소했다. 일본 경쟁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JFTC)도 생성형 AI 관련 보고서에서 운영체제(OS) 사업자가 자사 AI를 OS에 기본 탑재하면서 경쟁 AI에 비해 우대하는 결합구조를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이처럼 주요 해외 경쟁당국들은 AI 산업의 경쟁 촉진을 위해 본격적인 집행에 나서고 있다.

한국 공정위가 이 흐름에 완전히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AI 산업과 경쟁법의 교차점을 정면으로 다룬 법 집행이나 가이드라인 제정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AI는 산업 자체가 새롭고, 가치사슬이 복잡하며, 무엇이 효율성이고 무엇이 봉쇄인지의 경계가 흐릿해, 어느 당국에게나 손쉬운 영역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 어제까지 전통적인 경쟁법 사건들을 들여다보던 사무실에서 갑자기 AI 산업 내 경쟁구조를 분석하라는 요구는 누구에게도 친숙하지 않다. 한국 공정위는 아직은 이 어려운 영역에 점진적으로 접근해 가는 단계로 보인다.

다만 글로벌 동향의 속도를 감안하면, 점진적 접근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단순한 보폭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나라 당국이 적극적으로 집행에 나서면 글로벌 사업자들은 그 국가별로 결합구조를 조정한다. 어떤 시장에서는 핵심 결합상품을 분리해 더 싸게 팔고, 어떤 시장에서는 소비자에게 선택지를 더 명확히 안내한다. 그러나 한국 공정위가 침묵하면 한국 시장에서는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결국 같은 결합상품을 두고 다른 나라 소비자는 선택권과 가격 인하를 누리고, 한국 소비자는 그 혜택의 바깥에 서있게 된다. 규제의 공백을 가장 무겁게 부담하는 것은 글로벌 사업자의 결합상품을 매일 결제하고 있는 한국의 소비자다.

[제미나이]
세 가지 제언, 하나의 그림
필자가 공정위에 제안하고 싶은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AI 산업의 경쟁 촉진을 전담할 조직의 신설이다. ‘AI 산업 경쟁 TF’이든 ‘AI·디지털 시장감시과’든 명칭이나 형식은 뭐든 좋다. 전담조직의 실질이 중요하다. AI 번들링은 클라우드 인프라, 파운데이션 모델, 응용서비스가 수직적으로 결합된 구조 속에서 일어난다. 효율성과 봉쇄의 경계를 가르는 일은, 비유하자면 김치찌개에서 김치 맛과 돼지고기 맛을 분리해 평가하는 작업에 가깝다. 둘 다 맛있어서 합쳤는데, 누가 누구의 맛을 먹고 있는지 따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분석은 전통적인 끼워팔기 법리만으로, 또는 기존 부서의 사이드 잡(side job) 수준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전담조직은 경쟁법 전문가만으로 채워서는 안 된다. AI 산업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산업·기술 전문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그리고 경제학자가 한 팀에 섞여 있어야 한다. 또한 이 조직은 미국 FTC·DOJ, EU 집행위, 일본 JFTC 등과 정기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한국 측 카운터파트의 역할도 함께 맡아야 한다. 국제회의에서 “그건 저희 담당이 아니라서요”가 반복되면, 다음 회의의 단톡방 초대장이 어디로 갈지는 자명하다.

둘째, AI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경쟁집행이다. 조직만 만들어 놓고 정책보고서만 쓰게 한다면 그것은 박물관 큐레이터를 뽑아 놓고 전시는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전담조직은 만들어진 첫날부터 AI 산업을 정면으로 들여다보고 집행에 나서야 한다. 다만 적극적 집행이 곧 적대적 집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장조사 단계에서 봉쇄 효과뿐 아니라 효율성 효과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한쪽 눈만 뜨고 보면 풍경은 늘 기울어 보이는 법이다. 적극적이되 균형 잡힌 집행 — 어렵지만 그것이 바로 전담조직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셋째, AI 번들링을 다루는 가이드라인의 제정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사업자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규제 자체가 아니라 규제의 불확실성이다. “신호등이 빨간불인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신호등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게 무섭다”는 어느 기업 법무팀장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어떤 결합이 안전지대에 들어오고 어떤 결합이 면밀한 검토를 요하는지, 시장지배력은 어떻게 측정하고 봉쇄 효과는 어떻게 판단할지에 관한 분석 틀이 가이드라인 형태로 제시되어야 한다. 가이드라인 제정 과정 자체에 학계, 산업계, 법조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다면, 결과물의 정당성과 수용성도 자연스럽게 확보된다. 규제당국과 산업계가 같은 테이블에서 같은 언어로 대화하기 위한 인프라를 마련하는 일이라 봐도 좋다.

세 가지 제언은 결국 하나의 그림이다. 전담조직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적극적 경쟁집행도, 가이드라인 제정도 진공 속에서 표류할 수 있다. 조직이 먼저고, 활동이 그 다음이며, 활동의 결과물이 가이드라인이라는 형태로 시장에 환류된다.

굳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AI 시장의 구조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형성되어 가고 있다. 한 번 굳은 콘크리트는 망치로 깨야 한다. 굳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AI 시장 안에서 효율성을 살리고 봉쇄를 막는 일은 시장 자체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다. 그 건강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는 결국 한국의 소비자다. 한국 공정위가 글로벌 경쟁당국들의 단톡방에 나란히 이름을 올릴 날을 기대해 본다.
[이창훈의 경쟁법인사이트]에서는 세종의 경영위원이자 공정거래그룹 팀장을 맡고 있는 이창훈 변호사가 경쟁법을 둘러싼 여러 법적 이슈들을 다룹니다. 국내외 중요 공정거래 사건들을 주도하면서 ‘상어(shark)’ 같은 집요함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한국경쟁법학회와 한국경쟁포럼 이사, 서울대 경쟁법센터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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