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가 보는 AI 심리상담의 미래

김지용 2026. 5. 6.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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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만나본 적 없는 존재와도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AI와 인간은 앞으로 더 깊고 강한 애착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너무 불안한 상황이었는데 다음 상담까지 기다리는 게 막막했어요. 그런데 AI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죠.”

“평소 친구들에게 걱정을 털어놓곤 했는데, 그 친구들도 듣다 보면 지칠 거잖아요. 항상 눈치가 보였는데 AI는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계속 다 털어놓게 되더라고요.”

“매번 진료실에 오면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었는데, 그래서 이번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AI와 대화해서 정리한 걸 가져왔어요. 이걸 가지고 상담해도 될까요?”

언젠가부터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에게서 AI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듣게 되었다. AI와 상담한 내역을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그때 내 마음은 그야말로 복잡하다. AI는 놀라울 정도로 상담을 잘한다. 적절하게 공감하고, 문제 원인을 분석해주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깔끔하게 정제된 언어로 알려준다. 그 완벽한 상담 내용을 보고 있으면 당장 미래의 내 일자리부터 걱정이 되기도 한다.

3월22일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김지용씨(왼쪽)가 AI 이용자 중 한 명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시사IN 이한울

내담자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불안하고 갈 곳 모르던 마음에 신속하게 평안을 주었으니 말이다. 이보다 더 효율적이고 정확한 상담사가 세상에 존재할까? AI는 그 어떤 인간 현자보다도 뛰어나다. 모든 철학적 지식과 정신분석적 이론을 다 알고 있다.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와 달리 24시간 항시 대기하고 있다. 또한 익명성이 보장되기에 기존 정신과의 높은 문턱, 사회적 낙인 등으로부터도 자유롭다. 그러니 AI와의 상담을 찾는 것은 내담자 입장에서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3월17일 경기연구원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15~49세 남녀 10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AI를 활용한 정신건강 정책 현황 및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우울감 정상범위 집단의 27%에서, 중증 우울 집단의 53%에서 AI와 상담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아마 앞으로 AI와 상담하는 사람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효율적인 ‘즉각 만족’을 한번 맛본 이상 어쩔 수 없다.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길게 상담하고 많은 책을 찾아 읽으며 내 것으로 만들던 깨달음을 단 몇 분 안에 정리해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뇌는 에너지를 덜 쓰는 효율적 선택지를 재차 선택한다. 기존 ‘지연 만족’ 방법들에 비해 즉각 만족은 AI의 가장 뛰어난 점인데, 이는 동시에 앞으로 인류에게 가장 위험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AI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까닭

세상의 모든 빛에는 그림자가 따른다. 앱 하나로 간편히 음식을 주문할 수 있게 되면서 직접 요리하는 빈도가 줄어든 것처럼, 즉각 만족은 중독적이고 지연 만족의 기회를 빼앗아간다. 우울하고 불안할 때 대처하던 방법인 독서와 사색·운동·대인관계·상담·신앙 같은, 충분한 시간과 고뇌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들이 AI 상담 시대에는 사라지게 된다. 물론 지금 독자 중 다수의 삶은 아직 그런 변화가 없겠지만,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동차가 없어서 걸어 다닐 때에도, 핸드폰이 없어서 약속 시간 정해놓고 만날 때에도, 스마트폰이 없어서 실시간 인터넷을 못할 때에도 우리는 잘 살았지만, 어쨌든 그때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인간이 지닌 한 가지 신기한 특성 때문에 AI 사용량은 늘어나고 의존도 역시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준사회적 상호작용’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은 연예인이나 드라마 캐릭터, SNS 속 인물 등 만나본 적 없는 존재와도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끼는 특성이 있다. 이는 푸바오와 늑구 등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도, 그를 넘어 로봇과 AI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진화심리학상 사람은 상대의 눈맞춤이나 반응 등 사회적 신호에 즉각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로봇이나 AI가 미세하게라도 이런 신호를 흉내 낼 때, 우리 뇌는 상대가 생명체가 아님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정서 시스템이 작동하여 애착을 형성한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무조건적 공감을 제공해주는, 그래서 세상 하나뿐인 관계인 AI와는 얼마나 강한 애착을 형성하게 될까.

ⓒ시사IN 최예린

실제로 이미 그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AI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은 기본이고, 혹시라도 계정이나 프로그램이 사라질까 봐 불안해하는 분들의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그리고 이 강력한 준사회적 관계들은 실제 사회적 관계와 경쟁하며, 결국은 그것을 상당 부분 밀어낼 것이다. 힘들고 불편한 현실의 대인관계에 비해 AI는 너무나 공감적이고 대부분 내 편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AI는 이미 완벽에 가깝고 점점 더 완벽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 간의 관계는 AI에 비해 대체 어떠한 지점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을까,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그 답은 역설적이게도 ‘비효율성과 불완전함’이다. 원래 비효율적인 것에서 우리는 진정한 성장을 거둘 수 있는 법이다. 많이 읽고 많이 써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지만, 그 과정은 비효율적이다. 요리를 많이 해야 결국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데, 그 과정 역시 비효율적이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 사색하고 탐구하는, 때로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전문가를 여러 번 만나는 비효율적 과정을 통해 내 무의식 속 진짜 감정들을 만나게 된다.

모두가 불완전하기에 불완전한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다. 부딪치는 과정을 통해 진정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 자신도 돌아볼 가능성이 생긴다. 설득당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자아의 경계가 넓어진다. AI에게 의도적으로 불완전한 사람을 흉내 내라고 요구할 순 있겠지만 완벽을 가장한 것은 진정한 완벽이 아니듯, 진정한 불완전성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비효율적인 도전과 그 시간 속에서 생겨나는 나만의 색깔과 깊이도 AI에게 의존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몇 년 후가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다. 가능하면 긍정적 미래를 상상하고 싶지만 AI에게 생각과 감정을 빼앗겨버린 우리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이를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과 안전망을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한 기한은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김지용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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