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일삼은 매출 3조 에스엘, 공정위 과징금은 '고작' 3800만원

최지희 2026. 5. 6.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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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개 협력사·328건 계약 지연
지연 이자 미지급 '하도급 갑질'
매출 3조 기업에 과징금 0.013%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매출 약 3조원 규모의 자동차 부품 제조 중견기업 에스엘㈜이 3년에 걸쳐 수십 개 협력사에 계약서 한 장 없이 일을 시키고 이자도 떼먹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린 제재는 과징금 3800만원과 경고 처분에 불과해, 솜방망이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5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에스엘㈜은 2020년 5월부터 2023년 5월까지 40개 수급사업자에게 총 328건의 자동차 부품 금형 제조를 위탁하면서, 협력사가 작업에 착수한 뒤 최소 8일에서 최대 605일이 지나서야 계약서면을 발급했다. 계약서 없이 일을 시작시키면 단가ㆍ납기 조건 등 협상력이 모두 원사업자에게 쏠려, 사후에 원사업자가 유리한 조건을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공정위의 제재 수위다.

공정위는 이 같은 서면 지연 발급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800만원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에스엘의 2025년 연간 매출이 2조9690억원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매출 대비 0.013% 수준이다. 3년간 40개사를 상대로 328건의 위반을 저지른 대가치고는 사실상 위반 비용이 ‘0’에 수렴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하도급 거래 관행 개선을 위해 공정위가 엄중 조치에 나서겠다고 공언해온 것과 대비되는 결과다.

지연이자ㆍ어음할인료 미지급 행위의 처리 방식은 더욱 논란거리다.

에스엘은 같은 기간 41개 수급사업자 342건에서 목적물 수령일로부터 60일을 초과해 잔여 대금을 지급하면서 초과기간 지연이자 5억965만원과 어음할인료 2억1924만원 등 총 7억2889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소규모 금형업체들이 수년간 받지 못한 거액이다. 그런데 에스엘이 공정위 조사 개시 이후 미지급금 전액을 뒤늦게 납부하자, 공정위는 자진시정을 이유로 ‘경고’ 한 장으로 마무리했다.

한 금형업계 관계자는 “결국 공정위에 걸리기 전까지는 이자를 안 줘도 된다는 신호”라며 “조사가 시작된 뒤에야 전액 납부해도 경고로 끝난다면, 버티는 원사업자에게 유리한 구조가 된다”고 꼬집었다. 자진시정 인센티브가 하도급 법령 준수를 유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관행적 지연 지급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공정위는 이번 조치에 대해 금형업계의 잘못된 거래 관행을 엄중 제재해 원사업자의 경각심을 높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에스엘은 조사를 계기로 수급사업자 선정 시 즉시 계약서면을 발급하고 하도급대금을 조기 지급할 수 있도록 내부 절차를 개선했다고 전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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