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LG 지고, 한화·LS·반도체 뜨고···AI와 지정학 갈등이 만든 ‘재계 지각변동’[경제밥도둑]

한국의 재계 순위가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지정학적 갈등은 오랫동안 유지된 재계의 지형도를 흔들고 있다.
‘5대 대기업’으로 불렸던 롯데는 주요 사업 부진의 영향으로 한화에 밀려 6위로 밀려났고, LG는 재계 4위 자리도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삼성과 SK는 물론 LS, HD현대 등의 존재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대기업 안에서도 내수·대중 경합산업이 주력인 그룹은 부진하고 AI와 안보산업이 주력인 그룹은 빠르게 성장하는 ‘K자 성장’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빠르게 추격하는 한화, 주춤한 롯데와 LG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대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해 자산총액(공정위 산출 기준)이 높은 순서대로 재계의 순위를 매긴다. 민간기업이 됐지만 공기업이 뿌리인 포스코를 제외하면, 롯데는 2005년 이후 20년 넘게 삼성, SK, 현대차, LG와 함께 ‘5대 대기업’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올해엔 달랐다.
지난달 29일 공정위가 발표한 대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보면, 2020년대 줄곧 재계 7위에 머물던 한화가 5위까지 튀어오른 반면, 롯데그룹은 주요 10개 그룹 중 유일하게 자산총액이 뒷걸음질 치며 6위로 밀려났다.
한화는 4위 LG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LG그룹의 올해 자산총액이 2140억원 늘며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하는 사이, 한화는 자산을 약 24조원 늘리면서 LG와의 자산격차를 지난해 약 60조원에서 올해 37조원으로 대폭 좁혔다.
주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롯데, LG만은 아니다. CJ는 2년 연속 순위가 하락해 재계 15위까지 떨어졌고, 2023년까지 8위권에 머물렀던 GS그룹은 2024년과 지난해 연속 하락해 10위까지 밀렸다. 반면 LS그룹은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순위가 상승해 14위까지 올랐고, HD현대도 9위에서 지난해 8위로 올라섰다.

미래 전망을 반영하는 주가를 보면 재계 간 흐름이 더 두드러진다.
4일 금융정보분석업체 연합인포맥스 통계(지난달 30일 기준)를 보면, 최근 3년간 코스피 지수가 164% 올랐으나 LG는 -14.5%로 뒷걸음질 쳤고, 롯데는 2.8%, CJ 17.6%, GS 70.5% 수익률에 그쳤다.
반면, LS(1081%), SK(728.3%), 한화(673.5%), HD현대(595.9%), 두산(555.5%) 그룹의 시가총액은 같은 기간 500% 넘게 증가했다.
재계 1위 삼성도 시총이 185.4% 늘어 코스피 시총 증가율을 넘어섰다.
AI와 지정학적 갈등 영향
차이를 가른 것은 2023년부터 본격화된 AI 약진의 영향이다. 2023년 상반기만 해도 코스피 시가총액 중 LG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2%로 7%대에 그친 SK를 크게 상회했다. 그러나 AI열풍이 본격화된 하반기 이후엔 상황이 달라졌다. 2차전지, 가전과 대중 화장품 사업의 업황이 악화되면서 LG의 시총 비중은 4%로 3년새 3분의 1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대로 SK는 AI에 사용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면서 지난달 처음으로 코스피 비중이 20%를 웃돌았다. 전력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LS도 AI발 수요 확대 영향으로 지난달 코스피 비중이 1%를 넘어섰다.
지정학적 갈등도 그룹간 격차를 벌리는 데 일조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군사·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조선·방산·원전 사업이 성장하자 이들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HD현대, 한화, 두산에 대한 업황 개선 확대 기대감이 커지면서 그룹시총 ‘100조클럽’을 달성했다.
반면, CJ와 롯데 비중은 줄곧 하향세를 기록하면서 시총 비중이 0.3~0.4% 수준까지 떨어졌다. 재계 6위 롯데는 그룹 시총 기준으론 17위까지 떨어졌고 코스피 상위 100위 기업에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주력인 내수와 대중 경합산업인 석유화학 업황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다만, 업황 부진만을 탓할 수는 없다. 국내 온라인 유통시장의 주도적인 사업자가 된 쿠팡은 2021년 처음으로 대기업으로 지정된 이후 5년 연속 순위가 상승해 재계 60위에서 22위까지 상승했다.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영향도 컸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선 그간 부진했던 LG, 롯데 등도 부진을 딛고 반등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1분기 LG화학 석유화학 부문 영업이익이 흑자전환 하고, 롯데케미칼도 영업적자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석유화학 업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고 있다. 2차전지 업체 LG에너지솔루션도 1분기엔 2000억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냈지만, 증권가에선 2분기부터 흑자전환해 올 4분기엔 7000억원대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부진한 그룹이 반등하기 위해선, 결국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AI와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2차전지, 내수 산업이라 하더라도 그룹이 어떻게 AI와 시너지를 내면서 혁신을 할지에 따라 그룹의 명암이 가려질 것”이라면서 “LG의 경우 AI 역량이 가장 강하고 제조업과 결합하는 등 잠재력이 있지만 롯데는 한동안 더 고난의 길을 겪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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