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 좀 치네” 기자와 유학파 미식가의 소노캄 거제 호캉스 썰 [여담:旅談]

이번 여정의 파트너는 역시 A씨. 20대 시절,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는 영국으로(하필이면) 유학을 떠나 요리를 연구하고 온 인물이다. 유통기한 지난 바게트처럼 딱딱한 표정과 말투를 갖고 있지만 미식에 관한 한 믿을 만하다, 라고 생각해서 종종 여행의 파트너로 등장하고 있다. 과연 거제의 푸른 바다는 우리를 어떻게 맞이할까.
거제로 내려가는 여정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평일 하행선이 이렇게 막힐 일인가 싶을 정도로 도로 위는 답답했다. 서청주까지 내비게이션은 온통 시뻘건 색으로 물들었고, 차 안에서의 시간은 모짜렐라 치즈처럼 기일~게 늘어졌다.
하지만 오랜 취재 경험에서 (대부분 고통스럽게) 얻은 ‘여행 X랄 총량의 법칙’을 믿고 있다. 첫날 고생을 잔뜩 해버리면 나머지 여정은 순탄하기 마련이다. 겁먹지 말자.
지중해의 햇살을 삼킨 오찬, ‘몬테로쏘’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로비 층 이탈리안 레스토랑 ‘몬테로쏘’로 향한다. 이탈리아 친퀘테레의 해안 마을 이름을 딴 이곳은 천장까지 이어진 통창 너머의 바다 풍경을 즐기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다. 식사와 베이커리 카페를 겸한 곳으로, 나중에 알고 보니 소노캄 거제의 이른바 ‘만남의 광장’ 같은 장소였다.




테이블 위로 주문한 요리가 주르륵 깔렸다. 시그니처인 스테이크부터 화덕 피자까지 다채로운 메뉴를 자랑하는 몬테로쏘다. “이 ‘바질 숲에 빠진 전복 필라프’는 전복이 입안에서 탭댄스를 추는 기분인데요?” A씨도 수긍했다. “전복의 저작감도 우수합니다만, 바질 특유의 향미 화합물이 전복의 아미노산과 결합하면서 미각을 자극하는 원리입니다. ‘랍스타 & 쉬림프 파스타’의 비스크 소스 역시 갑각류 껍질의 감칠맛을 논리적으로 잘 추출해 냈군요.”
바닷바람과 톳 향기, ‘소동옥림해변길’ 배를 든든히 채우고 리조트 앞 ‘소동옥림해변길’ 산책에 나섰다. 우리나라 해안 중 풍광에 자신 있다 싶은 곳엔 어김없이 데크 산책길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데크 길에 서서 왼쪽과 오른쪽을 잠시 고민하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세포만의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수려한 자연경관이 눈 앞에 펼쳐졌다. 우아하면서도 힘차게 솟은 소노캄 거제가 멀리서도 눈에 들어온다. 잘 가꾼 리조트의 외관이 바다와 만나 균형을 이룬다. ‘쉼의 정석’을 시각화한 모습이다.


‘낭만의 정점’ 마리나베이 해넘이 투어 소노캄 거제는 자체 마리나 시설을 갖춘 리조트다. 오후 6시, 마리나 베이 카페로 가 간단한 승선 서류를 작성한 뒤 이번 휴양의 핵심 콘텐츠인 45인승 럭셔리 카타마란 요트에 올랐다. 요트 투어는 많은 사람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하다. 짧고 단순화시켰지만, 요트의 묘미를 맛보기에 50분이라는 시간은 부족하지 않았다. 투어 중 제공되는 와인과 음료수는 무료다. 식당에서나 볼 법한 스테인리스 컵에 담은 새우깡은 요트 뒤를 졸졸 따라오는 갈매기들의 몫이다.


요트가 지세포만 물살을 하얗게 가르며 나아가고, 나아간다. 멀리 보이는 섬들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요트 갑판 마당에 황금먼지를 뿌리고 있다. 수면 위 윤슬이 날카롭게 눈을 찌른다. 몸과 마음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다. 억지로 무언가를 채우려 애쓰지 않아도 좋은, 그런 충만한 고요가 발밑에서부터 차올랐다. 발갛게 익은 해가 점점 선명해지더니, 리조트 뒤쪽 산 너머로 쏙 넘어가 버렸다. 밤에는 배를 멈추고 불꽃을 쏘아 올리는 야간 투어도 운영된다고 한다.
별빛 아래 그릴 낭만, ‘BBQ 팩토리’ 어둠이 깔릴 무렵, 거제 바다와 인접한 야외 테라스 공간인 바비큐 식당 ‘BBQ 팩토리’로 향했다.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입장권을 구매하면 테이블과 숯불을 제공해 준다. 농협매장에서 고기, 소시지, 쌈 채소 등(아이들이 환장하는 마시멜로도 있다)을 직접 골라 바구니에 담아 계산한 뒤 자리로 돌아와 숯불에 굽는 셀프시스템이다. 따로 마련된 주류 판매대에선 소주, 맥주, 탄산수 등을 팔고 있는데 생맥주 1700cc를 주문했다.



“A씨, 전문가의 그릴링 기법을 직접 시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A씨가 신중한 얼굴로 집게를 쥐었다. “육류의 마이야르 반응을 통제하려면 열원과의 거리 조절이 핵심입니다. 뒤집는 주기가 육즙의 보존율을 결정하므로 인내심을 갖고 대기해 주십시오.”
어두운 하늘에 별이 총총히 박히기 시작했다. 바다는 고요한 숨소리를 내며 해안선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맥주가 물처럼 달게 위장으로 들어간다. 밤이 깊어져 가는 소리. 저 멀리 요트에서는 펑펑 불꽃을 쏘아 올리고 있었다.
에너지를 깨우는 아침, ‘셰프스 키친’ 조식 뷔페 여행 2일 차. 오늘은 실컷 물에 들어가 볼 생각이다. 에너지 충전을 위해 먹어두어야 한다. 지하 2층 ‘셰프스 키친’ 조식 뷔페로 이동. 오늘은 아메리칸 스타일로 정했다. 다양한 빵과 따뜻한 소시지, 계란, 신선한 우유와 토마토 주스를 챙겼다. 이 정도면 하루를 시작하기에 충분하다.
A씨는 샐러드를 접시 위에 잔뜩 담고는 커피 한 잔을 들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혈당의 급격한 상승을 막기 위해 식이섬유가 풍부한 샐러드류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후 양질의 단백질인 달걀 요리를 섭취하여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네네. 어련하시겠습니까. 샐러드 많이 드십시오, 라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입지최강, 바다 옆 워터파크 ‘오션 어드벤처’ 든든히 먹었으니 이제 쏟아낼 차례다. 최대 3500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워터파크 ‘오션 어드벤처’로 직행했다. 이곳은 실내외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 사계절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대부분의 워터파크들처럼 야외시설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실내에도 2인용 튜브 슬라이드와 1인용 바디 슬라이드가 마련되어 있어 야외시설을 운영하지 않는 시즌에도 아이들이 놀기에 좋다.
무엇보다 소노캄 거제의 오션 어드벤처가 가진 최대 매력은 바다에 바짝 붙은 시설이라는 점. 시각적으로나 심적으로 공간이 바다까지 무한 확장되는 기분이 든다. 진짜 ‘오션’에서 노는 기분. 새우깡을 주문했더니 진짜 왕새우 튀김을 산처럼 쌓아 올린 접시가 나온 격이랄까. 인피니티존 자쿠지에 몸을 담근 채 바다를 내려다본다. 노곤함이 스르르 풀리니 세상 부러울 게 없네. 완벽한 ‘호사’란 이런 것일 테다.





오랜 기자 생활을 통해 깨달은 것은 때때로 혹은 자주, 한 귀로 듣자마자 다른 한 귀로 내보내야 하는 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A씨를 끌고 가파른 경사를 오르내리는 2인용 튜브에 탑승했다. 내내 근엄하던 그의 입에서 처절한 ‘돌고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일상의 피로가 비명과 함께 허공으로 시원하게 증발하는 순간이었다.
‘80여 종’ 미식의 정점, ‘셰프스 키친’ 석식 뷔페 아아, 남김없이 태워버렸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셰프스 키친’ 석식 오픈런을 뛰었다. 저녁엔 한식, 일식, 라이브 키친 등 다채로운 메뉴가 펼쳐진다. 오늘은 와인 대신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생맥주를 즐기기로 했다. 거제답게 해산물 요리들이 무척 신선하고 질이 좋았다.
“A씨, 이 집 뷔페 좀 치네요. 전문가의 미식 전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A씨는 뷔페 레인을 관찰하며 입을 열었다. “우선 ‘전복 게우(전복 내장) 죽’으로 위 점막을 안정화하십시오. 저 ‘프리미엄 생선회’의 신선도를 보세요. 프랑스산 참다랑어는 혀에 닿자마자 눈 녹듯 사라질 것 같군요. ‘관자 세비체’는 라임 소스의 산으로 단백질을 변성시키는 페루식 조리법으로 만듭니다. ‘토마토 카프레제’와 ‘스페인식 뽈보 샐러드’의 식감도 오늘 저녁 훌륭한 서막을 열어줄 겁니다.”





A씨의 설명이 계속됐다. “육향이 묵직하게 폭발하는 양갈비 구이는 여기 셰프스 키친이 자랑하는 육류 요리 중 하나입니다. 다녀간 지인들도 칭찬하더군요. 민트 젤리가 특유의 향미를 상쇄해 주죠. 테이블당 하나씩 웰컴 서비스로 나오는 버터구이 랍스터와 대게 다리 찜도 맛보세요. 뷔페의 품격을 정립해 줍니다.”
테이블 위의 우아한 조연, ‘산펠레그리노(S.Pellegrino)’ 탄산수 한 병이 무료 제공됐다. A씨가 초록색 병을 보며 말했다. “이 탄산수는 이탈리아 알프스 산맥 기슭의 지하 암반층에서 길어 올린 천연 광천수입니다. 기포가 섬세하고 미네랄 함량이 풍부해 묵직한 질감을 자랑하죠. 특히 오늘 같은 고기 요리의 풍미를 살려주는 데는 최적의 파트너입니다.”
“그냥 물이랑 뭐가 다른 겁니까?” “조밀한 탄산이 입안의 유지방을 깔끔하게 씻어내 다음 요리의 맛을 선명하게 느끼도록 돕는 이른바 ‘팔레트 클렌저’ 역할을 하죠. 덕분에 육류의 진한 맛을 끝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런던 메이페어의 고급 스테이크 하우스에서도 이 녀석을 자주 곁들이곤 했습니다.”
사천식 ‘회과육’과 알싸한 ‘사천식 닭날개’, 광둥식 불향을 입힌 ‘홍콩 누들 해물 죽순 볶음’, 부드러운 ‘아르굴라 대구’까지 더해지니 입이 거대한 호사를 누린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이탈리아 푸딩 ‘망고 파나코타’로 화려한 만찬의 마침표를 ‘세 번이나’ 찍었다.


지난 이틀의 화창함과는 또 다른, 차분하고 고귀한 거제의 민낯을 28층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호사는 오직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A씨, 비 내리는 거제 바다 좀 보세요. 어제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지 않습니까?” 침대에 앉아 창밖을 응시하던 A씨가 안경을 고쳐 쓰며 답했다. “기상 조건의 변화가 시각적 깊이를 더해주는군요. 수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파동을 일으키며 빛을 굴절시키는 모습이 꽤 인상적입니다.” 괜히 물어봤다.
하루를 위한 맛있는 응원, ‘몬테로쏘’ 조찬 반상 몬테로쏘 조찬 반상을 먹으러 ‘만남의 광장’으로 내려갔다.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한정판매하는 조찬은 거제 바다의 조망과 함께 제공된다. 미역국, 황태국, 소불고기, 아메리칸 스타일의 아침식사 메뉴가 있다.
“A씨, 역시 한국인의 아침은 국물이죠? 이 진한 한우 미역국 한 그릇에 거제의 낭만이 응축된 것 같습니다.” “염도가 적절하고 아미노산 농도가 높군요. 원기 회복에 최적화된 구성입니다.” 뜨끈한 국물 한 숟가락에 지난 이틀간 누렸던 낭만이 식도를 타고 쑥 내려갔다. 속이 시원하면서도 조금은 서운하다. 여행이 밑바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 기자의 자존심, ‘레전드 히어로즈’ 지하 2층 ‘레전드 히어로즈’를 찾았다. 이곳은 체험형 시설과 전자오락실을 합쳐 놓은 듯한 곳이다. 사격, 축구 페널티킥, 농구 등 다양한 게임이 있지만 간판은 역시 야구다. 투타를 모두 경험할 수 있다.



타석 체험존에서는 날아오는 20개 볼 중 3개를 방망이에 맞췄는데 홈런 1개와 땅볼 아웃 2개를 기록했다. 투수가 언더스로였다. 아마도 내가 언더스로에 약한 모양이다. “타격 메커니즘이 완전히 붕괴되었군요. 코어 근육의 보강이 시급해 보입니다.” A씨, 됐거든요?
작별의 달콤함, ‘몬테로쏘’ 몽도리야 빙수 리조트를 떠나기 전, 몬테로쏘에서 이번 시즌 처음 선보인다는 ‘몽도리야 빙수’를 맛보기로 했다. 거제 몽돌 해수욕장의 몽돌을 쏙 빼닮은 크고 단단해 보이는 돌멩이 4~5개가 빙수 속에 담겨 있어 깜짝 놀랐다. 심지어 수저 끝으로 눌러보니 단단했다. “이거 먹다가 이빨 부러지는 거 아닙니까? 먹는 거 맞아요?” 의심 섞인 질문에 직원이 웃으며 “버섯 등이 들어간 크럼블을 초콜릿으로 코팅했습니다”라고 알려 주었다.
A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시각적 인지 부조화는 해소되었고, 미각적 충족감도 훌륭합니다.”

소노캄 거제와의 이별은, 다시 일상을 견디게 해줄 가장 완벽하고도 우아한 ‘로그아웃’이었다.
거제 |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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