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피카츄·푸와 함께···하늘로 먼저 떠난 아이들을 위한 ‘나비쉼터’
엄숙함 대신 캐릭터 조형물로 따뜻한 분위기 조성
서울시설공단 “시범운영, 일반 산분장지도 검토”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닌 황금소나무와 색색의 꽃들이 보행길 양옆에 어우러져 있었다. 어린왕자와 강아지, 고양이, 병아리, 나비 캐릭터 조형물도 곳곳에 놓여 있었다. 피카츄와 곰돌이 푸 인형이 담긴 커다란 선물함도 눈에 띄었다.
언뜻 식물원처럼 보이는 이곳은 경기 파주의 서울 시립 용미리 제1묘지 추모의숲에 있는 산분장지 ‘나비쉼터’다. 국내 최초 어린이 전용으로, 산분장은 화장한 유골의 뼛가루(골분)를 뿌려 장사를 지내는 방식을 말한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나비쉼터를 찾았다. 서울시는 이날부터 나비쉼터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쉼터 바닥에는 골분과 색이 비슷한 하얀 자갈이 깔려 있었다. 이곳에 잠들게 될 아이들의 골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나비 선물함’은 유족들이 세상을 떠난 아이 곁에 놓고 싶은 물건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골분을 뿌릴 때만 쉼터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평상시에는 데크형 접근로를 통해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강남현 서울시설공단 추모시설운영처 차장은 “보통 추모공간은 엄숙하고 어두운 분위기이지만 나비쉼터는 아이들의 모습처럼 밝고 따뜻하면서 자연에 가까운 느낌으로 조성했다”며 “이곳을 통해 유족들이 위안을 얻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바다에 골분을 뿌리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최근까지 산분장은 법에 근거 규정이 없어 합법도, 불법도 아닌 회색지대에 있었다. 지난해 1월에서야 장사법 시행령 개정으로 산분장이 법 테두리 안에 들어왔다.
산분장은 육지로부터 5㎞ 이상 떨어진 바다 또는 산분장지로 조성된 묘지·화장시설·봉안시설 등 지정된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정부는 장사시설이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산분장을 공간 점유가 없는 지속 가능한 장사 방식으로 보고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땅에 골분 뿌리는 방식으로
분골함 있는 옆 ‘나비정원’과 차이
나비쉼터에선 만 12세 이하 어린이나 사산아의 분골을 산분할 수 있다. 서울과 고양·파주에 산 경우 또는 다른 지역에 거주했더라도 서울 시립 화장시설에서 화장을 마친 경우라면 이용할 수 있다. 이용료는 무료다.
황상진 서울시설공단 추모시설운영처 선임은 “우선 어린이 전용 산분장지를 시범 운영해 수용성, 개선사항 등을 분석한 뒤 일반 시민을 위한 산분장지 조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비쉼터 옆에는 2014년부터 운영된 어린이 전용 추모공원 ‘나비정원’이 있다. 나비정원은 분골함에 골분을 붓는 방식으로, 골분을 땅에 흩뿌리는 나비쉼터와는 차이가 있다. 현재 나비정원에는 647명 아이들이 잠들어 있다.

이날 나비정원에선 ‘어린이 추모제’가 열렸다. 공단은 매년 어린이날 즈음 어린이 추모제를 진행한다. 유족 60여명이 참석해 앞서 세상을 떠난 자녀, 손주, 형제자매를 추모했다. 이들은 분골함이 있는 제단에 꽃과 인형, 장난감, 과자, 주스, 분유, 젖병, 케이크 등 선물을 놓았다.
“OO가 하늘나라 간지 벌써 4개월이란 시간이 지났어. 이렇게 따뜻한 햇볕 한번 보여주는 게 엄마아빠 바람이었는데 아직도 아쉬워. 부디 그곳에선 아프지 않길 바랄게.”
사회자가 울먹이며 유족의 편지를 대신 읽었다. 추모 공연과 편지 낭독이 끝난 뒤에는 하늘로 풍선과 나비를 날려 보내는 시간을 가졌다.
유족들은 추모의 벽에 글을 남기며 아이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곳에서 친구들이랑 즐겁게 뛰어놀고 있지? 꿈속에 찾아와줘. 너무 보고 싶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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