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주마다 떠나 보낸 코스닥…30년 만의 반전 승부수
[커버스토리] 코스닥 레벨업


코스닥 시장은 오랜 세월 ‘코스피 하위 리그’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상당수 종목들이 급등락을 반복하고 테마주와 작전세력이 활개를 치면서 ‘신뢰하지 못할 시장’이라는 부정적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지배주주의 횡령, 배임과 같은 문제적 사건도 주기적으로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 탓에 코스닥에서 상장한 기업들도 덩치가 커지면 코스피로 속속 자리를 옮겨 갔다.
그랬던 코스닥을 보는 투자자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반도체 등 대형주를 중심으로 눈에 띄는 상승 흐름을 보였던 코스피에 이어, 코스닥 시장에도 훈풍이 돌 것이라는 기대감이 적지 않다. 결정적인 배경은 정부의 코스닥 시장 활성화 정책이다. 정부는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해 좀비기업을 시장에서 퇴출하고, 코스닥 시장 내에서 리그를 나누는 방안을 발표했다. 시장의 가치를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이런 기대감에 힘입어 이미 코스닥은 4년 만에 ‘천스닥’을 돌파, 1000~1100선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3월 외국인 투자자가 코스피에서 43조8880억 원을 순매도한 데 반해, 코스닥에서는 3840억 원을 순매수했다. 앞으로 기관투자가의 참여가 늘어나면 본격적인 상승 탄력을 받을 것이란 기대도 잇따른다.
국민연금은 올 1분기 코스닥 종목 투자 비중을 확대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 기간 국민연금의 ‘5% 이상 지분 보유 종목’에 22개 종목이 추가됐는데, 코스피 종목이 8개, 코스닥 종목이 14개를 차지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드라이브 속에서 코스닥 지수는 시장의 기대처럼 1500을 넘어 장기적으로 3000까지 바라볼 수 있을까. 코스닥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루고 ‘코스닥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짚어볼 시기다.
환희와 눈물 30년…코스닥 굴곡의 역사
코스닥은 1996년 7월 미국의 나스닥을 벤치마킹해 출범한 시장이다. 한국의 기술주 시장을 이끈다는 목표에서 출발했다. 시장이 문을 연 직후 코스닥은 성장가도를 달렸다. 특히 2000년 정보기술(IT) 붐을 계기로 코스닥 지수는 2834.4(현재 지수 환산 기준)까지 폭발했다. 하지만 닷컴 버블이 붕괴되면서 화려한 성장세도 끝을 맺는다. 2000년 3월 최고점을 찍은 이후 80%에 가까운 추락세를 이어가며, 1년 만에 지수가 500선까지 떨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코스닥은 큰 변화를 맞는다. 거품 붕괴의 후유증으로 좀처럼 지수가 회복을 하지 못하자 당시 증권업협회는 코스닥의 기준지수를 기존 100에서 1000으로 10배 상향하기로 결정했다. 대외 이미지 개선을 위해 2004년 1월 ‘지수 부풀리기’라는 극약처방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지금 ‘천스닥’으로 일컫는 코스닥 지수 1000~1100은 사실상 코스닥 출범 시점과 비슷한 100~110 수준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지수를 상향 조정한 이후에도 코스닥은 기준지수 1000에 도달하지 못한 채로 긴 시간을 보냈다. IT 거품 이후 신생 벤처기업에 대한 관심은 식고 코스피에 안착한 대기업 종목으로 관심이 쏠렸다. 대신 코스닥에서는 실체가 뚜렷하지 않은 테마주가 급부상하게 된다.
특히 2007년에는 대선 후보들의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면서 정치 테마주의 시대를 열었다. ‘이명박주’로 떠올랐던 이화공영, 삼호개발 등 대운하 관련주는 10배 가까이 폭등했다가 이명박 정권이 시작된 이후 80~90% 급락하기도 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상황도 비슷했다. 문재인·박근혜·안철수 테마주가 형성되며 몇몇 종목들이 단기 과열을 겪었다.
이런 테마주는 기업의 실적보다는 특정 이슈로 움직인다. 테마주에 대한 단기적 기대감으로 고점에 진입했다가 큰 손해를 입은 개인투자자들의 사례가 잇따랐다. 코스닥이 ‘투기성 시장’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데는 이런 테마주 투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불투명한 정보 공시와 오너 위주의 폐쇄적인 지배구조 등 코스닥 상장사들의 고질적인 문제점도 반복됐다.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2025년도 불공정거래 심리 실적 및 주요 특징’에 따르면 불공정거래 혐의 사건 중 67.3%(66건)가 코스닥 시장에서 일어났다. 특히 지배구조가 취약한 코스닥 종목의 부정거래 혐의 통보 건수는 16건으로 코스피(2건)의 8배다. 코스닥이 기관과 외국인의 외면을 받는 ‘부정의 온상’이라는 이미지가 짙어진 이유다.
코스닥의 낮은 평판이 지속되면서, 상장사들은 어느 정도 덩치를 키우면 코스피로 리그를 옮겨 가기 시작했다. 2000년 코스닥에 상장한 엔씨소프트는 2003년 코스피로 자리를 옮겼고, 코스닥 시가총액 1위였던 KTF(KT에 합병)도 2004년 코스피로 이전 상장했다. KTF가 떠난 후 코스닥 대장주 자리를 차지했던 NHN(현 네이버)도 결국 2008년 이전 상장을 결정한다.

당시 증권선물거래소가 NHN 측에 코스닥 시장 잔류를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수급 개선 효과를 위해 코스피로 옮겨 간다는 결정을 되돌리지 않았다. 이후에도 코스닥의 대표주자 위치에 있던 상장사들이 코스피행을 택했다. 2017년 카카오, 2018년 셀트리온에 이어 최근에는 바이오 기업 알테오젠이 이전 상장을 준비 중이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스피200이라는 대표 지수에 편입된다는 것 자체가 기업으로서는 엄청나게 레벨업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가나 투자 규모 자체가 달라지므로 코스닥 상위 기업들이 고민해볼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코스피200은 코스닥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유동성이 공급되는 만큼, 이 지수에 안착하면 상대적으로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남 위원은 “이전 상장으로 인해 코스닥 시장에서는 우량 기업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어, 시장 안정성 측면에서 고민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 바뀔 때마다 반복된 ‘코스닥 기대감’
사실 코스닥 시장에 훈풍이 돌 것이라는 기대감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반복됐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벤처기업 활성화 방안’을 내놨는데, 이후 코스닥 지수는 기존 380선에서 700을 넘어서며 1년 동안 98.5% 급등했다. 코스닥의 상승 추세는 이후로도 한동안 이어져 2007년 장중 840까지 치솟았다. 그러다 2007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전 세계 금융 시장을 얼어붙으면서 3개월 만에 245.06까지 급락했다.

박근혜 정부도 2013년 ‘창조경제’라는 모토 아래 코스닥 정책을 쏟아냈다. 코스닥 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춰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의 시장 참여를 활성화한다는 게 골자였다. 코넥스 시장 개설, 코스닥시장위원회 설치 등 중소기업 지원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이어졌다. 그해 5월 코스닥 지수는 585.76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2013~2014년 500대 박스권에 머무르다가 2015년 700선을 돌파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1월 ‘코스닥 시장 활성화 정책’을 공표했다. 기관투자가의 코스닥 시장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인 1년 동안 코스닥 지수의 상승세는 코스피보다 더 가팔랐다. 2017년 5월 600대였던 코스닥 지수는 이듬해 1월 900을 넘었다.
코스닥 역사에서 상징적 숫자인 1000을 다시 돌파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유동성 장세가 펼쳐진 2021년이다. 그리고 2022년 1월 6일(1003.01) 이후 약 4년 만인 올해 1월 26일, 코스닥은 장중 ‘1000스닥’을 재돌파했다.
동전주 없애고 상장폐지 강화
시장에서는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코스닥 정책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을 최근 상승의 핵심 배경으로 본다. 일단 주가 1000원 미만의 동전주와 시가총액 300억 원 미만인 기업을 검토해 기준에 미달하면 상장폐지 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부실 기업을 정리해 시장의 구조적 개선을 꾀한다는 의도다. 또 코스닥 시장을 프리미엄, 스탠다드, 관리군 등으로 나눠 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비중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도 추진한다. 연기금의 국내 주식형 평가 기준수익률(벤치마크)에 코스닥 지수를 5% 비중으로 혼합해, 코스닥 시장 참여 유인을 높이는 방식이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부실기업 상장폐지 등을 통해 시장 펀더멘털이 개선되고, 기금 운용 방식의 변경으로 수급 여건이 개선될 경우 지수 상단을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익 체력 강화보다는 시장 여건 개선의 성격”이라고 분석했다. 이종형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닥 시장 내 기관투자가 비중은 약 4.5%로 코스피 대비 현저히 낮다”며 “코스닥벤처펀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연기금의 코스닥 참여 정책이 본격화되며 기관 자금이 유입될 경우 코스닥 우량 기업 중심으로 추가 반등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코스닥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의 등장도 수급 여건을 개선할 요인 중 하나다. 액티브 ETF는 단순히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상품과는 다르게 운용사 내 운용역이 종목과 투자 비율을 직접 판단한다. 지수를 넘어선 수익을 추구하는 만큼 공격적인 종목 교체가 가능하다. 과거 코스닥 시장이 특정 테마에 따라 흔들리는 장세를 보였던 것과 달리, 펀드매니저가 검증한 종목을 중심으로 좀 더 안정적인 수급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관이 코스닥을 외면하는 진짜 이유
코스닥이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기관투자가는 장기 투자를 지향한다. 테마성 투자에는 참여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기관투자가가 시장에 많이 들어올수록 코스닥 시장의 변동성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하지만 코스닥 시장에서 기관이 적극적으로 활약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전 정부에서도 코스닥 활성화 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며 반짝 훈풍을 일으켰지만, 장기적인 시장 개선을 이뤄내지 못한 원인이 여기에 있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관투자가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유동성과 안정적인 수익이 확보돼 있으며 미래 전망이 좋은 기업 위주로 투자한다. 그런데 코스닥 시장에는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지나치게 많다”면서 “시장이 좋아지려면 기관투자가가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들이 투자할 만한 성숙한 기업들이 충분치 않다 보니 기관들도 코스닥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말했다.
정보의 비대칭성도 문제다. 기관투자가가 특정 종목에 장기 투자하려면 해당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코스닥에 상장한 작은 회사일수록 판단 근거가 될 만한 배경 자료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예컨대 기관 입장에서는 중소기업 100개 사를 분석하는 것보다 대기업 3개 사를 분석하는 데 드는 리소스가 현저히 적다.
장기적으로는 중소형 규모의 기업만을 다루는 니치마켓 특화 플레이어가 자본시장에 등장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김 위원은 “이런 중간 플레이어가 등장하려면 국내 자본시장 규모가 지금보다 더 커져야 한다”면서 “코스닥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려면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보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FOCUS]
나스닥 꿈꾸던 코스닥, 제자리걸음의 결정적 이유

1971년 출범한 나스닥은 코스닥의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엔비디아와 아마존닷컴, 알파벳(구글), 메타 등 대형 빅테크로 성장한 기업들이 나스닥에 상장해 있다. 당장 성과를 보여주진 못하지만 미래 가능성이 높은 신생 기업을 품어줄 ‘기술주 시장’을 지향하며 만들어졌다.
2005년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이 한국거래소로 통합된 것과 달리, 나스닥은 뉴욕증권거래소와 구분된 별도의 거래소로 운영된다. 과거에는 뉴욕증권거래소가 전통 대형주 중심, 나스닥은 기술 중심으로 상장사가 포진돼 있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이런 구분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나스닥의 경우 상장사가 성장해도 시장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남아 지수를 지킨다는 점이 코스닥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국내에서 코스닥은 ‘마이너리그’라는 인식이 강하다. 따라서 기업이 성장하면 상위 리그처럼 여겨지는 코스피로 올라가는 케이스가 적지 않았다. 반면 나스닥의 경우 기업이 다른 리그로 떠난다고 해도 ‘체급’을 올리는 개념으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나스닥으로 이전 상장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미국 최대 유통 기업 월마트가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한 지 53년 만에 나스닥으로 옮긴 것이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 코스피·코스닥의 관계와는 다르게, 미국의 두 거래소는 대등한 경쟁 관계에 가깝다는 뜻이다.

나스닥과 코스닥은 ‘초기 기술 기업을 위한 시장’이라는 비슷한 목표로 시작했다. ‘후발주자’라는 출발점도 비슷했다. 그런데 나스닥은 성공적 시장으로 평가받는 데 반해 코스닥은 왜 하위 리그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걸었을까.
일단 나스닥은 좀비기업을 과감히 퇴출하는 투자자 보호 규정을 갖춘 시장이다. 신규로 상장하는 기업보다 퇴출되는 기업이 더 많을 정도다. 질이 나쁜 종목은 최소화하고 시장의 가치를 올리는 것이 나스닥의 방식이다. 2020년 6월 ‘중국판 스타벅스’로 주목받았던 루이싱커피가 퇴출된 사례를 꼽을 수 있다.
또 나스닥은 주당 최소 매수 호가 1달러를 상장 유지 요건으로 정해 뒀다. 최근 우리나라 금융당국이 주가 1000원 미만의 동전주를 정리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도 이런 나스닥의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주가와 시가총액이 낮은 동전주는 투기세력, 작전세력의 타깃으로 노출되기 쉽다. 코스닥은 문제 기업을 과감히 퇴출하지 않은 탓에 시장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상장사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현재 나스닥은 상장사 수가 약 3300개인데, 코스닥은 1800개다.
두 시장의 구조적 차이는 기관투자가의 비중 면에서도 큰 격차를 만들었다. 나스닥은 기관투자가의 비중이 80%에 가깝다. 개인투자자 비중이 절대다수인 게 코스닥과는 정반대 형국이다. 나스닥만큼은 아니더라도 코스닥의 기관투자가 참여가 전체의 절반가량은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