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신논단] AI 시대, 좋은 법조인의 덕목

장보은 교수(한국외대 로스쿨) 2026. 5. 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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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우려와 달리 로펌들 AI 경쟁 돌입
업무 효율화 넘어 ‘좋은 법조인’ 되기 위한
인간만의 고민과 노력 더욱 요구되는 때

얼마 전 영어 논문 두 편을 연달아 심사할 기회가 있었다. 영문으로 출판되는 법학 학술지가 아니더라도 간혹 영어 논문이 투고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국문 논문과 같은 기준에서 심사를 한다. 두 논문의 주제는 달랐으나, 외국의 법규를 소개하면서 우리 법과 비교하는 방법론은 유사했다. 비교적 논문 형식도 잘 갖추고 있었고, 영어 표현이나 문법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다만, 해당 국가의 법규는 생소한 것이어서 약식으로라도 리서치를 해보기 위해 생성형 AI 툴을 켰는데, 곧바로 이렇게 투고되는 논문의 상당수가 AI의 도움을 받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서치, 데이터 분석, 외국어 문헌 번역이나 교열 등 다양한 방식으로 AI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AI를 전혀 활용하지 않은 논문이 드물지도 모르겠다.

개별 학술지에서 AI 사용의 공개를 요구하는 경우는 있지만, 아직까지 법학 학술논문 작성과 관련하여 체계적인 AI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 있지는 않다. 해당 학술지의 규정에도 AI 관련 사항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심사 결과를 전달하며 앞으로는 논문 투고 시 AI 사용 여부를 공개하도록 하자는 의견을 함께 보냈다. 적어도 AI 사용 여부나 그 정도를 밝히도록 하여 이를 알고 심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 해외 학술지들의 예를 공유하며 추가 논의를 통해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막상 이런 내용을 제안하고 보니, 학술논문을 작성하는 데에 어느 정도까지 AI를 사용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가 심사를 요하는 논문 작성자의 독창적인 생각일까, 논문 심사 시 AI를 활용하는 것은 어떤가 등의 쉽지 않은 문제들이 떠오른다. 해외 법률 학술지 가운데에는 AI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기술의 발전 속도나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하면 이는 답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AI를 잘 활용하여 논문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어떤 논문이 가치 있는 논문인가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러 국가의 법률이나 판례를 수집하여 비교하는 것이나 외국어로 되어 있는 논문을 요약해서 소개하는 것, 판결문 등의 대량 정보를 분석하고 경향을 도출하는 것 등은 AI를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연구의 가치는 새로운 이론을 도출하거나,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적인 판단이나 가치 평가를 하는 등 AI를 넘어서는 부분에 있을 것이다. AI가 효율적인 연구를 돕는 것은 사실이지만, 좋은 논문을 쓰기는 더 어려워진 것 같다.

이는 법률 논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처음 생성형 AI가 상용화되었을 당시에는 환각(hallucination) 증상이나 고객 정보 보호를 이유로 변호사가 AI를 이용하는 것이 터부시되었다. 대형 로펌들은 내부 정책으로 AI 사용을 금지했고, 보수적인 법조계에서는 아무래도 AI 도입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불과 몇 년이 지난 지금, 로펌들은 앞다투어 AI를 도입하고 있고, 얼마 전 한 AI 회사가 주최한 법조 웨비나에는 전 세계에서 2만 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렸다. 고객들은 변호사가 AI를 사용하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일하기보다, AI를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일하는 걸 기대한다.

이제 질문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로 이어질 것이다. 효율적이고 자동화된 업무 체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현행 법률이나 기존 판례의 리서치만으로는 결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법률서비스의 가치는 그 너머에 있다. 사안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더 중요해질 것이고, 의뢰인은 물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를 얻을 필요도 있다. 좋은 법조인이 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장보은 교수(한국외대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