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HD현대 ‘슈퍼 사이클’ 질주…LG·롯데 침체 ‘경고등’

박종오 기자 2026. 5. 6. 05: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력 사업 업황 따라 재벌그룹 희비
반도체·조선 의존 ‘착시효과’ 커져
“경제구조 밸런스 맞추는 노력 필요”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연합뉴스

반도체 수출 호조 등 영향으로 한국 경제가 예상보다 강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재벌 그룹들 간 온도차가 뚜렷하다. 반도체·조선 등 초호황(슈퍼 사이클) 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삼성·에스케이(SK)·에이치디(HD)현대 등은 재무 여건이 큰 폭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화학·배터리 등 주력 사업이 부진에 빠진 엘지(LG)·롯데는 경고등이 켜지는 등 희비가 엇갈리고 있어서다.

주요 그룹들이 호황과 침체가 반복되는 특정 사이클 산업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도 우려할 대목이다. 반도체·조선 등의 경기가 꺾이면 부진의 늪이 특정 산업을 넘어 경제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5일 나이스신용평가·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신용평가사 분석 보고서를 보면, 국내 재계 자산총액 1위 삼성그룹의 순현금은 지난해 말 기준 100조9천억원으로 1년 전에 견줘 10조7천억원 늘어났다. 순현금은 그룹사들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에서 전체 차입금을 뺀 값이다. 삼성그룹의 순현금이 100조원을 넘어선 것은 2022년(106조9천억원) 이후 3년 만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비대면 경제’ 확대로 급속도로 팽창했던 반도체 수요가 엔데믹화 이후 꺾여 보유 현금이 큰 폭으로 축소됐다가, 지난해 메모리 업황 회복 영향으로 다시 천문학적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룹 합산 영업이익도 2023년 14조4천억원에서 2024년 39조6천억원, 지난해 49조원으로 불어났다.

업황 사이클의 덕을 톡톡히 본 건 에스케이와 에이치디현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에스케이그룹의 합산 영업이익은 49조4천억원으로, 재계 1위 삼성그룹을 추월했다. 그룹의 ‘외부인’ 취급을 받던 에스케이하이닉스가 작년 한 해 동안에만 47조2천억원을 벌어들이며 배터리·화학 사업 부진을 겪는 그룹 전체 이익을 견인하는 모양새다. 에스케이그룹의 순차입금(전체 차입금-현금 및 현금성 자산)도 지난해 말 36조9천억원으로 전년 대비 44.2%나 줄어들었다.

에이치디현대그룹도 실적과 재무 여건 개선세가 두드러진다. 그룹 매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조선업이 2023년 영업흑자로 돌아선 뒤 초호황 사이클에 진입하고, 인공지능(AI) 투자 붐으로 변압기(에이치디현대일렉트릭) 사업도 고속 성장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그룹 합산 영업이익(6조2천억원)은 2023년 대비 약 3배 늘고, 같은 기간 순차입금(3조원)은 3분의 1 미만으로 내려갔다.

이같은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기업들은 사정이 좋지 못하다. 특히 엘지와 롯데그룹은 전자, 배터리, 석유화학 등 주력 사업이 일제히 침체에 빠져있다. 중국의 제조업 성장이 그룹 실적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롯데는 지난해 그룹 합산 영업이익이 2021년 대비 10분의 1 규모인 2600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과거 그룹 영업이익의 60% 이상을 차지하며 핵심 캐시카우(현금 창출원) 구실을 했던 석유화학 부문 영업적자가 1조원 수준으로 급증한 여파다.

엘지그룹도 사정이 비슷하다. 디스플레이 사업이 흑자로 돌아섰으나, 전자·배터리·석유화학 등 핵심 사업의 업황 악화로 지난해 그룹 합산 매출액이 전년보다 외려 뒷걸음질하는 성장 정체에 빠져있어서다. 지난해 말 기준 순차입금 규모도 43조원을 웃돌며 10대 그룹(농협 제외) 중 채무 부담이 가장 큰 상황이다. 이규희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엘지그룹은 석유화학과 배터리 부문의 실적 부진으로 이익 창출력 회복이 지연될 전망”이라며 “투자 속도 조절과 자산 매각을 통해 차입금 증가세는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방위산업과 조선업 성장에 힘입어 재계 순위 5위로 치고 올라온 한화그룹의 경우, 큰 폭의 차입금 증가세가 눈에 띈다. 방산·조선업 흑자가 석유화학과 태양광 실적 부진을 보완하고 있지만, 그룹의 대규모 투자로 외부 자금 조달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한화그룹의 순차입금은 지난해 말 30조4천억원으로 2021년과 비교하면 2배 넘게 늘었다. 한국신용평가는 “한화솔루션의 유상증자 등에도 그룹의 확정적인 투자 기조 등을 고려할 때, 높아진 차입금 부담이 완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고 짚었다.

국내 재벌 그룹들의 자산·매출 등 외형 성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특정 산업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예컨대 에스케이그룹의 지난해 합산 영업이익 중 메모리 사업을 하는 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95.6%에 달했다. 이 비중은 2021년(72.3%) 대비 20%포인트 넘게 올라갔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국내 산업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커지면서 반도체가 좋으면 경제 전반이 좋아 보이는 ‘착시효과’가 강화되는 것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며 “다양한 제조업종이 고르게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경제 구조의 밸런스를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