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검으로 전역한 내 새끼… 마지막 목소리 찾아준 '푸른 가운 의인' [人터뷰]
자살 원인 규명할 '심리부검' 도입
학폭 피해 학생, 서이초 교사 감정
첫해 세 건이던 의뢰... 열 배 늘어
진술·심리 감정 등 전국 곳곳 출장
편집자주
한국일보 '人터뷰'는 의미 있는 일을 하거나 사연이 깊은 인사를 만나 우리가 몰랐던 잔잔한 휴먼 스토리를 전달합니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섬찟했다. 군대 간 아들이 죽었단다. 쿵 주저앉았다. 부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설명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잘 지내고 있다며 엄마는 걱정 말라더니. 내 새끼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걸 몰라줬다. 아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누가 이렇게 만든 걸까, 내 자식 앗아간 군에서 한 말을 믿어도 될까. 수만 번 되뇌며 엄마는 그날 지옥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다.
엄마를 구한 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검사과 심리연구사 홍현기(46)였다. 그는 긴 분석 끝에 청년의 죽음이 상급자 폭언과 괴롭힘 때문이었을 거란 감정 결과를 내놔 모자의 억울함을 풀어줬다.
국과수 하면 시신 부검이나 화재 감식, 마약 감정이 먼저 떠오르지만 이곳은 최고의 심리분석 전문가들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올해로 17년차인 홍 연구사도 그중 하나다. 지난달 22일 강원 원주 국과수 본원에서 만난 그는 10년 전 국과수에 '법 심리부검'을 도입한 인물이다. 심리부검은 메모나 주변인 진술, 휴대폰 기록 등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자살에 이르게 된 심리 과정을 추론하는 기법이다.
단초는 2014년 여름 기사 한 줄이었다. 국방부가 훈령을 개정해 군 내 자살 사건도 직무 수행 및 교육훈련 관련 구타·폭언·가혹행위 또는 업무 과중이 직접적 원인으로 인정되면 순직처리한다는 것. 그전까지 군뿐 아닌 수사기관도 자살로 판단된 사망사건은 더 이상의 원인 조사 없이 종결해 온 터였다. 홍 연구사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원인 규명을 누가 맡지?' 마침 국방부 공청회에서 "군은 못 믿겠다"고 호소하는 유족을 만났다.
그 만남이 그를 움직였다. 그때부터 홍 연구사는 심리부검 프로토콜(지침)을 만드는데 꼬박 2년을 매달렸다. "중립적인 감정기관인 국과수가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2016년 시범 운영 후 이듬해 정식 도입했다. 자살 사망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그만의 숭고한 추모는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건당 두 달 분석… '1m 자료 탑' 쌓기도

심리부검 1·2호 대상자들은 군복을 입지 않았다. 첫 사건은 수사기관 출석조사 뒷날 목숨을 끊은 참고인이었다. 유서도 남기지 않은 그의 심정을 추정하는 건 남은 이의 몫이었다. 유족들은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수사기관은 개인적 원인 때문일 뿐이라고 맞섰다. 홍 연구사는 유족 면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팅 기록, 각종 메모 등 모든 퍼즐을 맞춰 고인 심리에 미쳤을 요인을 분석했다.
심리부검대에 오른 두 번째 인물은 학교폭력 피해로 숨진 고(故) 박주원양. "초등학생 때부터 당했던 피해가 고등학생 때까지 연결됐고 결국 사망으로 이어진 사건이라 참 안타까웠죠."
피해를 오래 당한 만큼 각 사건과 심리적 변화를 추적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엇갈리는 주장들을 가려내기 위해 방대한 기록을 뒤지고 박양의 친구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논리적 연결고리를 완성했다.
이처럼 심리부검은 그 마음을 좇는 심리연구사 입장에서도 퍽 괴로운 일이다. 정해진 절차를 따르면 결과가 나오는 거짓말탐지 기법 등과 달리 연구사가 고인이 느꼈던 감정을 직접 따라가며 추론해야 한다. "제가 그 사람의 입장이 돼서 심리에 몰입해야 되니깐 마음이 힘들어요."
그래서 최대한 자료를 모은다. "고인과 관련된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쭉 정리하고 그 일들에 따라 이분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말, 행동을 분류해서 다시 타임라인(시간에 따른 흐름도)을 만들죠." 가령 SNS 메신저 대화 내역에서 심리가 드러난 단어를 모두 뽑아내서 나열한다. 출생부터 사망까지 고인의 서사가 담긴 자료를 쌓아놓으면 그 높이가 1m를 훌쩍 넘는다. 한 건 감정에 두 달이 걸리는 이유다.
길게는 5시간, 물도 안 마시며 유족 면담

지난한 분석 과정보다 힘든 건 유족을 마주 보는 일이다. 수사기관의 면담보다도 훨씬 깊고 긴 인터뷰를 해야 한다. 고인이 무심코 지나가듯 했던 말들 하나하나가 죽음을 밝힐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이 많다. 특히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를 만날 때면 국가기관 소속 연구사라는 사실 때문에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국방부와 다른 기관이고 독립적인 감정을 수행한다고 설명드려도 '다 같은 편 아니냐'는 의심이 돌아올 때도 있죠." 나라 지키려고 군에 간 자식을 잃은 부모의 허망함을 달래고 중립적으로 감정한다는 믿음을 주는 건 홍 연구사 몫이다.
그래서 온몸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음을 증명한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는 물을 한 잔도 안 마실 때도 있어요. 화장실도 안 가요. 중간에 흐름을 끊지 않으려고요. 제가 이렇게 집중하고 있다고 언어적, 행동적으로 보여드리는 거죠."
생때같은 자식 이야기를 하는 부모에겐 시간도 약이 돼 주지 못한다. "(세상을 떠난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건 한 분도 빠짐없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마음 아파하시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 하세요. 그 상황에도 일은 해야 하니 정보들을 물어봐야 하는 게 하나하나 조심스럽죠." 이 일을 한 지 10년차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그저 터져나오는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최대한 줄 뿐. 그래서 면담은 짧겐 2시간, 길게는 5시간까지 이뤄진다.
10년의 경험을 양분 삼은 그만의 유족 면담 지침도 있다. 사망 시점부터 어린 시절까지 시간 역순으로 거슬러가며 고인과 관련한 기억을 자유롭게 쭉 얘기하도록 돕기. 역시 심리학적 기법이다. "유가족들이 그 당시를 떠올리는 것 자체를 괴로워하거든요. 역순으로 올라가다 보면 어린 시절 즐거웠던 얘기를 추억하듯 얘기하며 부정적인 감정들이 환기되는 효과도 있어요." 처음에 경직됐던 유족들도 그의 앞에서 고인에 대한 추억을 꺼내며 울고 웃는다.
"분석용 자료를 얻어내는 것뿐 아니라 심리적 안정을 찾게 하고, 심리 치료가 필요한 분들에겐 치료받기를 권유하기도 하면서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목표죠."

심리부검은 세상을 떠난 아들들의 명예를 되찾아주기도 한다. 특히 일반 병사가 아닌 부사관, 장교 등 직업군인 관련 사건은 더 그렇다. "직업군인인 자식의 죽음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가 많아요. 아이가 왜 자살했는지 모르겠으니 원인을 규명해달라거나 아들을 대신해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하시죠."
한 번은 돌연 세상을 떠난 직업군인의 사망 원인 감정을 맡았다. 군인으로서 자부심이 강했고 부모에게도 직업이 만족스럽다고 말하던 아들이었다. 기록을 샅샅이 살펴본 홍 연구사는 군인의 모친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어머님, 제가 동료나 상사 진술 기록이랑 자료들을 쭉 다 살펴봤을 때 아드님에 대해서 안 좋은 얘기 하나 없었어요. 나태하거나 정신적으로 문제 있다는 얘기도 전혀 없고요. 정말 훌륭한 군인이라고 기억했습니다." 홍 연구사가 유족에게 전한 말처럼 감정 결과 아들은 업무 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개인적인 일이 겹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유족은 홍 연구사에게 "이제야 마음의 한이 풀어졌다"며 몇 번이고 감사를 전했다.
유족 어루만진 면담... 정신과 근무 경험 덕

이렇듯 유족 마음을 어루만지는 면담의 원천은 그의 경력이었다. 돌아보면 모든 삶의 조각들이 자산이 됐다. 홍 연구사는 고등학생 때까진 기타를 배우며 뮤지션의 꿈을 키웠지만 대학 진학을 앞두고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그만뒀다. 앞으로 뭘해야 될까 고민하던 차에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번뜩였다. "친구들 연애 상담을 해주다가 사람에 대해 배우고 분류하는 것도 재밌겠다고 느껴서 심리학과에 진학했죠."
그러나 강의실의 심리학은 그가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상담 분야가 아닌 이론을 훨씬 많이 공부해야 했다. "대학원에서 분야를 좁혀 임상심리 석사과정을 밟은 후에야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고 느꼈어요."
석사 졸업 후 그는 종합병원 정신과에 임상심리사로 취직했다. 수많은 환자를 상담하며 1년쯤 지났을 때였다. 마음 한쪽에 품고 있던 국과수 연구사를 새로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정기적인 채용 대신 퇴직 인원이 있을 때 조금씩 뽑는 터라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 홍 연구사는 범죄심리과 연구사가 됐다. 법심리과, 법의검사과로 부서 이름이 바뀌는 동안 그는 변함없이 유족의 응어리를 덜어내주고 있다.
시행 10년 심리부검... 80%는 군 내 자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들도 그의 손을 거쳤다. 2022년 고(故) 이예람 중사 사건을 수사한 안미영 특별검사팀도 심리부검을 의뢰했다. "특검은 수사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최대한 한 달여 안에 끊어야 되니깐 자료 분석에 시간이 촉박해 애를 먹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고요. 워낙 파장이 컸던 사건이라 부담이 됐었죠."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당한 지 80여 일 후 자살한 만큼 성추행과는 무관한 개인적 원인 때문이라는 추측도 나온 상황이었다. 홍 연구사는 기록 속에서 진실을 찾아갔다. 성추행 피해 전후 심리 상태가 급격히 변한 점을 확인했다. 또 당시 부부간 문제가 영향을 미쳤다는 소문도 사실이 아님을 규명해냈다.
이듬해에는 한국 사회를 뒤흔든 또 다른 죽음이 그를 찾아왔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2023년)이었다. 경찰이 수사 개시 여부를 정하려 심리부검을 국과수에 맡겼다. "개인적으로 충격받았던 건 고인의 하이클래스(교사·학부모 소통 플랫폼) 기록을 보니 1년 동안에 각종 민원, 행정 업무를 몇천 건 처리했더라고요." 그는 분석 결과 학교 업무 관련 스트레스를 자살 원인으로 판단했다.
심리부검 의뢰는 정식 도입한 2017년 한 해 두세 건이었지만 2022년 이후 매해 20~30건으로 늘었다. 80%는 군 내 자살 사건이다. 최근 10년간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817건 중 자살 사망은 74.8%(611건)에 달한다. 심리부검 업무는 홍 연구사가 전담하고 있다. 어린 아들 셋을 둔 아빠인 만큼 책임감이 남다르다. "혼자서 하다보니 순차 처리하려면 지연될 수밖에 없거든요. 빨리 분석해드리고 싶은데 안타깝죠."
가장 보람은 "억울함 밝히는 걸 도왔을 때"

법 심리부검 외에도 홍 연구사가 속한 법의검사과는 다양한 심리학적 감정을 맡는다. 거짓말탐지기 등 다양한 도구로 진술의 진위를 따지는 일은 단연 주요 업무다. 범법 정신질환자가 모인 치료감호소에서 재소자들의 심리 감정을 하는 일, 전자발찌 착용자 등 보호관찰 대상자를 만나 그가 사법기관 눈을 피해 몰래 추가 범행을 저지른 건 없는지 묻고 진술 신빙성을 판단하는 일도 있다. 지적장애인 성범죄 피해자들의 성적 판단 능력을 분석하는 것도 심리연구사의 업무다.

연구실에만 머물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홍 연구사는 일 년의 절반은 전국을 누빈다. 감정 대상자들이 국과수까지 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전남 고흥까지 왕복 10시간 넘게 운전해서 감정다녀 온 적도 있어요." 감정 업무 외에도 심리연구사들은 여러 재판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해 감정 과정과 결과를 설명하기도 하고, 각종 분석 기법 연구도 한다. 진범을 찾는 용도로 만든 기억탐지기를 개발해 특허를 내기도 했다. 전국 400여 명의 국과수 직원 중 심리연구직 감정관은 5명뿐인데 막내가 14년차일 정도로 모두 연륜이 있다.

심리연구사로서 가장 보람찬 순간을 물었다. 오리발 내미는 범인의 덜미를 잡았을 때일 거란 예상과 달리 홍 연구사는 망설임 없이 "억울함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줬을 때"라고 답했다. "성폭력 피의자가 있었는데 모든 정황이 다 그쪽을 가리켰어요. 당사자는 부인했고요. 그런데 진술 진위 감정에서 '진실'이라 나왔고 나중에 진범이 잡혔어요. 그분이 '믿어주는 사람 하나 없을 때 억울함을 밝혀낼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죠."
국과수 청사 앞에 우직하게 서 있는 원훈석에는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힘'이라고 새겨져 있다. 홍 연구사도 그 힘을 믿는다. "가운을 입고 면담이나 감정을 해서 그런지 책임감과 사명감이 더욱 큽니다." 봄바람에 그가 걸친 푸른색 가운이 힘차게 펄럭였다.

원주=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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