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하청 노동자 그림자 취급할 건가"… 파업 앞둔 반도체 업계 첩첩산중
"오래 쌓여온 하청 처우 개선 문제 제기"
"우리 노동은 부차적인가" 박탈감 호소
성과 배분, 원청 직교섭 요구 확산하나
산업 경쟁력 저하 vs 합리적 분배 중요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성과급 상향을 요구하며 예고한 파업일이 보름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반도체 업계의 원·하청 차별 논란이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기록적 영업이익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수억 원대 성과급이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그간 성과 배분에서 배제돼 있던 하청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청 교섭 요구에 SK하이닉스 신중
정성훈 민주노총 대전충북지부 조직국장은 5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비단 성과급뿐 아니라 반도체 산업에 오랫동안 쌓여온 하청 처우 개선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먼저 나선 곳은 피앤에스로지스다. SK하이닉스의 1차 협력업체인 이 회사는 반도체 웨이퍼, 반도체 가공용 가스와 부품을 운반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인 이 회사 노조는 지난달 30일 원청인 SK하이닉스에 교섭 요구서를 제출했다. 반도체 업계에서 하청 노조가 성과 배분을 이유로 원청에 교섭을 요구한 첫 사례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피앤에스로지스는 성과 배분 금액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진 않았다. 원청과 직접 교섭으로 성과급 차별 개선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섭 요구서를 낸 지 엿새가 지난 이날까지 SK하이닉스는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고 정 국장은 전했다. SK하이닉스는 노란봉투법상 의무인 교섭 요구 사실 공고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입장에선 노사 관계 관리 부담과 법적 불확실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SK하이닉스 사업장의 '소속 외 근로자1' 수는 1만4,490명으로 사업장 전체 근로자 4만8,125명의 29.4%다. 이들은 △경호·경비 △청소 및 기타 개인 서비스 △운전·운송 △기계 설치·정비·생산 △제조 단순 업무 등을 담당한다. 삼성전자 사업장의 소속 외 근로자는 3만5,701명으로, 전체 16만5,656명의 21.6%다. 이 외에 두 기업과 거래하는 업체까지 치면 반도체 하청 노동자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산업 생태계 지속되려면
업계와 전문가들은 반도체 하청업체들의 성과 배분, 처우 개선, 원청과 직교섭 요구가 확산될 거라고 예상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에 교섭을 요구한 하청 노조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내부 성과급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하청 노조의 요구가 분출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도체 산업 생태계 전반에 오랫동안 '구조적 차별'이 공공연하게 존재해왔다는 이유에서다.
피앤에스로지스 노조는 "SK하이닉스 안의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은 그림자 취급받으며 그 찬란한 빛에 가려져 있다"면서 "원청 정규직들의 2억 원에 육박하는 연봉과 수억 원의 성과급은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을 부차적 노동으로 만들었고, 박탈감과 분노는 커져만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원청 직원들이 수억 원의 성과급을 받을 때 하청 노동자에겐 500만~600만 원 수준의 상생장려금이 지급됐다고도 했다.
반도체 대기업들은 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거라며 우려한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하청·간접 인력까지 보상 요구가 확산되면 인건비와 대응 비용 증가가 불가피하다"고 짚었다. 하지만 첨단산업 생태계 지속성을 감안해 공정하고 합리적인 보상 방안 논의가 시급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하청업체가 교섭 대상으로 인정된다면 성과급에 원청과 동일한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경쟁력은 국가 차원의 문제인 만큼 정책의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원·하청 공동 협의체를 구성하거나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는 등의 현실적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노동자 보호와 기업 안정성을 균형 있게 고려해 갈등이 아닌 협력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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