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이 깃발 꽂은 남중국해 모래톱에… 필리핀 의원, 자국기 꽂기로 맞불

안준현 기자 2026. 5. 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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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 케이’서 양국 영유권 깃발 전쟁
3일 샌디케이(중국 명칭 톄셴자오) 섬 모래톱에 상륙한 다다 키람 이스물라 필리핀 하원의원이 ‘서필리핀해’ ‘우리 것’이라는 문구가 있는 깃발과 필리핀 국기를 꽂고 동남아 민주화 시위에서 자주 등장한 ‘세 손가락 경례’를 해보이고 있다. 그는 “중국의 패권주의에 맞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저항의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했다. /페이스북

지난 4일 발행된 필리핀 유력 일간지 ‘데일리 인콰이어러’와 ‘필리핀 스타’ 1면에는 제트스키에 올라 필리핀 국기를 흔드는 여성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렸다. 다다 키람 이스물라(41) 하원의원이 민간 단체 ‘아틴 이토(Atin Ito·타갈로그어로 우리 것)’ 회원들과 함께 보트를 타고 남중국해의 무인 모래톱 ‘샌디 케이’에 도착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이 단체는 페이스북에 이스물라가 모래사장에 올라 필리핀 국기와 ‘서필리핀해 우리 것’이라고 쓴 깃발을 함께 꽂고 세 손가락을 들어 올린 사진, 제트스키로 물살을 가르는 동영상도 올렸다. ‘서필리핀해’는 남중국해의 필리핀식 명칭이다. 영화 ‘헝거게임’에서 비롯된 세 손가락 퍼포먼스는 동남아시아의 민주화 시위 등에 자주 등장한다. 이스물라는 “중국의 패권주의에 맞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저항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

샌디 케이는 중국과 필리핀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최전선이다. 필리핀이 점유 중인 파가사섬(중국명 중예다오)에서 3㎞ 떨어져 있다. 필리핀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에 있지만, 중국은 이곳을 ‘철선 암초(톄셴자오)’로 부르며 자국 영해라고 주장한다. 이스물라 일행이 다녀간 모래톱에는 지난달 27일 중국 해경 대원들도 상륙해 중국 국기를 펼치고 사진을 찍었다. 양국은 10여 년째 서로의 상륙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각자의 국기를 꽂는 퍼포먼스를 경쟁적으로 펼쳤다.

양국이 물리적 충돌까지 불사하며 벌이는 남중국해 분쟁이 ‘국기 퍼포먼스’에 압축돼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스물라 일행은 중국 선박들의 감시를 피해 어두운 새벽 시간을 틈타 움직였다고 알려졌다. 이날 퍼포먼스는 친중(親中) 외교 노선을 고수했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과 그의 정치 세력을 겨냥한 측면도 있다고 필리핀 언론들은 전했다.

그래픽=백형선
지난해 4월 샌디케이(중국명 톄셴자오)에 상륙한 중국 해경 대원들이 중국 국기 오성홍기를 내보이고 있다. 중국 해경은 “주권 수호 활동의 일환으로 우리 영토에 상륙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해경

두테르테는 2016년 대통령 선거 유세 당시 “제트스키를 타고 샌디 케이에 가서 국기를 꽂겠다”고 공약했으면서도 재임 시 이를 지키기는커녕 중국과 밀착한 점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2022년 취임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강력한 친미·친서방 외교 노선으로 전환하고, 미국·일본·호주 등과 군사적으로 밀착하며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겨냥한 다국적 연합 훈련을 늘리고 있다.

특히 오는 8일까지 진행되는 미국과의 대규모 다국적 연합 군사 훈련 ‘발리카탄’을 통해 대중국 견제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번 훈련에는 옵서버로만 참가하던 일본이 육상자위대 실전 병력을 처음 보냈다. 지난 4일 대만과 가까운 루손섬 북부 일로코스노르테주 해안에서는 미국·필리핀·일본 연합 병력이 적의 상륙을 저지한다는 시나리오 하에 실사격 훈련을 했다. 고속기동 포병로켓시스템(하이마스) 등 미국의 첨단 자산들도 전개됐다. 필리핀은 중국 해경과의 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중국의 도발’이라며 실시간으로 알리는 등 여론전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필리핀과 중국의 남중국해 분쟁은 2013년 필리핀이 남중국해 대부분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을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소하고, 3년 뒤 재판부가 “중국의 주장은 국제법상 아무 근거가 없다”고 필리핀의 손을 들어주면서 국제사회의 쟁점이 됐다. 중국은 판결의 효력이 없다며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고수했고, 필리핀은 판결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미국·일본 등 자유 진영 국가들과 군사 연대로 맞섰다. 필리핀 정부는 오는 7월 승소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 중이다.

남중국해에서 영유권을 다투는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조용히 대응하고 있다. 1970년대 중국과 전쟁까지 치렀던 베트남은 남중국해 문제에서 조용하지만 실리 외교를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베트남명 쯔엉사군도·필리핀명 칼라얀 군도)에 인공섬 7개를 건설하는 동안, 베트남은 3배인 21개의 인공섬을 조용히 매립하며 군사용 활주로와 대형 탄약고 등 시설을 구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같은 공산 독재 체제이면서 경제적으로 밀접한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했다는 분석이다.

말레이시아는 인근에서 중국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자국 EEZ 내 석유·가스 탐사를 계속하고 있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분쟁 수역인 나투나 제도 주변 바다를 ‘북나투나해’로 명명하고 전투기와 미사일을 전진 배치해 무력 시위에 나섰다. 남중국해 항로는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약 25%가 지나는 길목이다. 바다 밑에는 최대 300억t의 원유와 16조㎥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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