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호르무즈에 막힌 울산항, 흔들리는 산업 심장

경상일보 2026. 5. 6.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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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최대 액체화물 항만인 울산항이 사실상 기능 마비 상태에 내몰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초유의 사태로 원유 수입이 급감한 결과다. 최근 울산세관 집계에 따르면 4월 원유 통관 실적은 전년 동월 대비 41% 줄었다.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울산 산업의 혈맥인 원유 공급망이 정면으로 흔들리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분명하다. 구조적 취약성이다. 울산은 전체 수입의 40%를 원유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중 9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 2024년 206억 달러, 2025년 185억 달러 규모의 원유 대부분이 사실상 단일 해상 통로에 기대어 들어온 셈이다.

중동 수송로가 막히면서 울산의 산업 엔진도 서서히 정지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지역 총 수출의 40%를 담당하는 석유·화학 산업의 가동률이 흔들리며, 울산 경제는 그 충격을 그대로 흡수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정유업계는 새로운 공급망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우디 얀부항과 UAE 푸자이라항을 통한 우회 수송로를 마련하고, 미국·캐나다·호주 등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운송 기간이 최대 60일로 중동 노선의 두 배 이상이라는 점이 구조적 한계로 작용한다. 결국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는 대가로 비용 급증과 가격 경쟁력 약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원가 압박을 견디지 못한 일부 석유화학 기업들이 '불가항력'을 선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상가상으로 호르무즈 해협에는 다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란의 미 호위함 공격과 우리 국적선 HMM 선박 폭발 사고가 잇따르며 해상 리스크가 현실화됐다. 이에 따라 잠잠하던 국제유가도 즉각 급등세로 돌아섰다. 에너지 공급 불안은 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를 끌어올리고, 결국 물가 상승으로 직결된다.

정부는 5월 에너지 수급이 87% 수준까지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경계다. 비용 상승을 감수하더라도 공급망 다변화와 조달 구조 재편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대체 항로 확보를 위한 외교적 협력과 함께 세제·금융 지원 등 실효성 있는 대응이 즉각 병행돼야 한다.

호르무즈 위기는 울산 산업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경고다. 이미 지정학적 충격이 일상화된 시대에 '안전성 없는 효율성'은 더 이상 전략이 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임시 대응이 아니라,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산업 체질 그 자체의 재설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