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아리랑’ 차용, 약인가 독인가?

고승희 2026. 5. 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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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프로젝트의 명과 암
다시 쓰는 ‘도전자 서사’
떼창 vs 공허한 K-마케팅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 시작점인 고양 콘서트 [빅히트뮤직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엘파소 선 볼 스타디움(Sun Bowl Stadium). 3년 9개월 만에 컴백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북미 투어 두 번째 도시인 텍사스 엘파소는 공연 전부터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다. 공연 시작이 45분이나 지연될 만큼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고, 도시에선 심지어 ‘BTS 위크엔드(BTS Weekend)’를 선포했다. 현지 관광 기관은 양일간 콘서트로 약 7500만 달러(한화 약 1105억원) 규모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전망했다.

#2.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 탬파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 방탄소년단의 북미 투어 첫 도시에서도 일본에 이어 거대한 ‘아리랑’ 합창이 메아리쳤다. 빌보드는 당시 공연 이후 현지 리뷰를 통해 “수천 명이 자신들의 모국어도 아닌 언어로 전통 민요를 함께 합창하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아티스트가 과연 얼마나 될까”라며 감탄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가는 곳마다 새로운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고양을 시작으로 월드투어를 이어가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콘서트 현장에선 연일 기이한(?) 풍경이 목격되고 있다. 외국인 관객들의 ‘아리랑’ 떼창이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3월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으로 완전체 복귀를 선언했다. 이 앨범은 K-팝 최초로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3주 연속 1위, 영국 오피셜 차트 정상, 그리고 초동 416만 장이라는 압도적인 판매고를 기록하며 ‘BTS 노믹스 2.0’ 시대를 열었다.

화려한 컴백 성적표 이면엔 방탄소년단이 들고 돌아온 새 앨범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히 나타난다. 이번 앨범을 통해 방탄소년단은 ‘정체성 찾기’에 주목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방탄소년단이 차별화되는 지점은 ‘한국인’, ‘힙합하는 아이돌’이라는 일종의 ‘초심’ 서사가 이번 앨범의 세계관을 구축한 핵심으로 자리했다. 이 과정에서 ‘아리랑’ 콘셉트가 실현됐다.

방탄소년단.[빅히트/뉴시스]
왜 한국이었을까…다시 쓰는 ‘도전자 서사’

BTS의 연대기는 늘 ‘결핍을 딛고 일어선 도전자’의 서사였다. 지방 출신 소년들이 서울 중심의 아이돌 시스템을 뚫고 올라와 결국 미국 빌보드 정상까지 도달한 성공신화다.

다시 돌아온 방탄소년단은 이전과는 너무도 다른 거대한 그룹이 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팬덤을 가진 그룹이며, 세계 무대에서 누구도 세우지 못한 기록을 줄줄이 세웠다. 이미 세계 정상에 오른 지금, 이들은 더 이상 ‘언더독’이 아니다. 3년 9개월의 공백을 딛고 돌아오는 BTS는 선택은 ‘세계 속 언더독’이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챕터2의 도전자 서사를 만들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임 평론가는 특히 “과거 BTS의 서사를 만든 것이 지방에서 올라온 ‘촌놈들’이었다면, 지금은 멤버들의 이야기처럼 ‘한국에서 온 촌놈’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방탄소년단은 컴백 라이브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린 여전히 한국에서 온 촌놈“(RM)이라고 말했다.

이미 K-팝 가수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을 세운 방탄소년단에게 필요한 것이 “새로운 도전자 서사”라는 것이 임 평론가의 분석이다. 글로벌 스타 위치를 유지하면서도 ‘한국 뿌리’로 주류 음악 시장에 다시 태클하는 ‘존재’로의 부각인 것이다. 임 평론가는 “‘우리는 아직도 세계 시장에서 주변부이고, 한국에서 온 존재다’라는 프레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봤다. 글로벌 정점에서 새로운 도전자 서사를 통해 거대해진 팬덤을 하나로 묶을 강력한 ‘원형’이 필요해 ‘한국’이라는 지역성을 가져온 것으로 분석된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도 빌보드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리랑’은 방탄소년단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 이들이 찾아가고 나아가야 할 인생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나침반으로서 이번 앨범의 가장 완벽한 테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 ‘아리랑’ 티저 영상. [유튜브 ‘방탄TV’]
130년 전 조선 청년들과 BTS의 ‘아리랑’

이 과정에서 ‘아리랑’이 소환됐다. 2026년 3월 공개된 BTS의 정규 5집 ‘ARIRANG’은 제목부터 한국적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웠고, 타이틀곡 ‘보디 투 보디(Body to Body)’ 후반부엔 약 30초간 ‘본조아리랑’ 선율이 삽입됐다. 수록곡 ‘No.29’에는 성덕대왕신종의 울림이 담겼다. 월드투어 무대에서도 경회루 형태의 팔각정 세트와 전통 문양 LED 연출로 채워졌다.

하이브가 내세운 핵심 서사는 1896년 미국 워싱턴 D.C. 하워드 대학에서 조선 청년 7명이 ‘아리랑’을 유성기에 녹음했던 역사적 기록이다. 130년 전 미국 땅에서 아리랑을 남긴 조선 청년들과 130년 뒤 세계 스타디움에서 아리랑을 부르는 BTS를 연결하는 ‘디아스포라 서사’다.

흥미로운 것은 이 ‘숭고한 서사’가 제작 과정에서 균열이 있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BTS: 더 리턴’에는 멤버들이 아리랑 삽입을 두고 당혹스러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RM은 “파리바게뜨 가서 김치볶음밥 먹는 느낌”이라고 표현했고, 지민은 “아리랑 파트가 길어지니까 갑자기 숨고 싶더라”고 말했다. 글로벌 팝스타들의 예술적 자아와 자본적 기획의 불협화음이었다.

임희윤 평론가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멤버들이 아리랑 콘셉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게 아니라, ‘반드시 넣어야 하기 때문에’ 설득당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이라며 “인과관계가 뒤집혀 보였다. 음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전통이 아니라, 전통을 넣기 위해 음악을 맞춰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앨범 크레딧이나 다큐멘터리를 봐도 국악 슈퍼바이저나 전통음악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며 “해외 프로듀서 이름은 상세히 적혀 있는데, 아리랑 합창은 그냥 ‘전통 국악 합창’이라고만 적혀 있어 아쉽다”고 했다.

실제로 이번 앨범 크레딧에는 해외 유명 프로듀서들의 이름과 작업 과정이 세세하게 공개된 반면, 국악 자문진이나 합창단 정보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방탄소년단.[뉴시스]
‘아이돌’ 때와 무엇이 달라졌나

방탄소년단이 한국 전통문화를 활용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발표한 ‘아이돌(IDOL)’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곰(Gqom) 비트 위에 ‘얼쑤 좋다’, ‘덩기덕 쿵더러러’ 같은 국악 추임새를 얹어 세계 시장을 강타했다. 뮤직비디오엔 호랑이, 달 속 토끼, 북청사자놀음, 한옥과 수묵화가 등장했고, 같은 해 멜론뮤직어워드(MMA)에선 삼고무·부채춤·사물놀이·탈춤을 결합해 선보였다. 세계가 열광한 순간이었다.

2020년 NBC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의 ‘BTS 위크(BTS Week)’에선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아이돌’을 공연했고, 경회루에선 ‘소우주(Mikrokosmos)’를 불렀다. 팬데믹 시기 미국 메인스트림 방송을 통해 한국 궁궐의 밤 풍경을 전 세계에 송출한 이 무대는 BTS의 대표적 문화외교 사례였다.

슈가의 솔로곡 ‘대취타’ 역시 전통 군악 장르를 샘플링하고, 경복궁 인정전을 배경으로 한국적 미학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방탄소년단은 이미 오래전부터 ‘K-전통’의 문법을 구축해 왔음에도 이번 ‘아리랑’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논쟁의 핵심은 결의 차이에 있다. 이전 활동이 음악과 전통의 ‘유기적 결합’이었다면, 이번엔 ‘전략적 호출’이라는 점이 논쟁의 핵심이다.

즉 기존 곡에선 BTS의 음악 위에 양념처럼 한국성이 드러났다면, 이번엔 한국성이라는 굽힐 수 없는 목표 위에 방탄소년단이 들어온 것이다.

해외 매체에서도 다양한 반응을 내놨다. 롤링스톤은 이번 앨범에 4.5점을 부여하며 “한국적 뿌리를 강조하면서도 실험적인 영역으로 확장한 완벽한 컴백”이라고 평가했다. 가디언 역시 “K-팝 특유의 실험 정신을 회복했다”고 호평했다.

반면 피치포크는 5.3점을 주며 “메시지가 거대 기업의 생일 이메일처럼 공허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아리랑을 승리의 깃발처럼 흔드는 방식은 안일한 국가 정체성 수용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 시작점인 고양 콘서트 [빅히트뮤직 제공]

월드투어 이후 평가도 마찬가지다. 롤링스톤 일본에선 “‘보디 투 보디’ 도입부에 샘플링된 아리랑 한 구절을 관객이 대합창했다”며 “BTS와 아미가 문화와 언어의 벽을 넘어 하나가 됐다”며 극찬했다.

‘아리랑’이 삽입된 ‘보디 투 보디’는 국내 전통음악계에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미 업계에선 방탄소년단 이전부터 국악관현악은 물론 다양한 국악기 연주자들이 대중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파격적 시도를 해왔다.

이승훤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단장은 “방탄소년단의 곡에 삽입된 ‘아리랑’은 단순한 멜로디의 차용을 넘어, 힙합이라는 현대적 틀 안에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는 시도”라며 “기존 국악계가 시도해온 장단과 선율의 구조적 해체에 비하면 단순히 기존 음원을 곡 끝에 배치한 것은 음악적으로 아쉬움이 남을 수 있지만, 대중이 국악과 만나는 새로운 접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전통음악계에선 ‘국악의 내적 문법’을 깊이 이해한 융합은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작곡가는 “단순히 이어 붙이기일 뿐 세련되고 멋진 조합으로 들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은 파급력이다. K-팝, 특히 방탄소년단과 같은 거물 그룹의 음악을 통해 우리 음악이 재조명받는다는 데에 높은 점수가 나온다.

이승훤 단장은 “한국적 인증마크의 성격이 강해 보일 수 있지만, K-팝이라는 글로벌 플랫폼 위에 국악이 하나의 장식으로 쓰이는 것 자체가 과거에 머물던 국악을 동시대의 음악으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발판이 된다”면서 “서사적 완결성이 부족하더라도 이러한 노출 자체가 국악의 생명력을 연장하는데 기여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방탄소년단 [게티이미지닷컴]
19만 명의 ‘아리랑’ 떼창…‘문화 플랫폼’ 역할

흥미로운 것은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보디 투 보디’와 ‘아리랑’의 결합이 설득된 것은 방시혁 의장이 “수만 명의 떼창을 상상해보라”는 말이 결정타였다.

실제로 일본 오사카 공연엔 한복을 입은 팬들이 아미밤을 흔들었고, 미국 탬파 공연에선 사흘간 약 19만 명의 관객이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 서울 ‘더 시티’ 프로젝트 기간엔 숭례문 미디어파사드 관람객 중 외국인 비중이 70%를 넘겼고, DDP 행사장 역시 해외 팬들로 가득 찼다. BTS의 시도는 단순히 아리랑 떼창을 넘어 언어, 한복, 한식, 전통 건축까지 엮인, 일종의 ‘문화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한 것이다.

방 의장은 “처음엔 한국적인 ‘민요’를 삽입하는 것에 대해 멤버들과 스태프들 사이에서 여러 논의와 이견이 있었다”면서 “나중에 미팅에서 멤버들도 ‘처음엔 ’국뽕 마케팅‘처럼 보이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주변에 들려주니 ‘한국인들은 백이면 백 아리랑이 나올 때 소름이 돋고 감동이라고 하더라. 이번에도 형이 맞았던 것 같다’고 얘기를 나누며 웃기도 했다”고 들려줬다.

‘아리랑’의 떼창이 증명하듯, 방탄소년단의 압도적인 영향력은 이번에도 입증됐다. 복귀 이전보다 더 무서운 파급력을 보여주며, 월드투어도 기존 83회에서 85회로 확대됐다. 증권가는 티켓·MD·음반·콘텐츠 매출 등을 합쳐 총 3조1500억원 규모의 경제 효과를 예상하고 있다. 이미 세계 정상에 오른 그룹이 다시 ‘한국’을 호출하며 만들어낸 새로운 도전자 서사에 다시 한 번 세계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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