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팔순 맞아 백악관서 UFC 격투 경기… “강한 이미지 활용”[글로벌 현장을 가다/신진우]
다음 달 14일 UFC 경기… 백악관 최초 라이브 스포츠 행사
UFC 열성 팬 트럼프… ‘강한 지도자’ 이미지 강조
“국민에 백악관 개방해야” vs “국가 사유화” 여론 팽팽

탁 트인 타원형 잔디 공원인 이 광장은 백악관에서 남쪽으로 약 200m 거리에 있다.
광장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백악관 남쪽 잔디밭 ‘사우스론’이 나온다.
이 잔디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80번째 생일이기도 한 다음 달 14일에 백악관 최초의 라이브 스포츠 행사가 열린다.
바로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 단체 UFC가 주최하는 격투기 대회다. 즉, 미국 대통령 집무실 ‘오벌오피스’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UFC 야외 경기장이 들어서는 것이다.》

백악관 내부 공간이 충분치 않은 만큼, 대부분의 시민은 엘립스 광장에서 경기를 지켜볼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나 화이트 UFC 회장은 최근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엘립스 광장에 8만5000명을 수용할 계획”이라며 “밴드 공연 등의 행사도 함께 개최하겠다. 격투기 팬들에게 매우 독특하고 인상적인 경험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 “전쟁 중 부적절” vs “흥미로운 시도”
이날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이 UFC 행사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인근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는 마이클 윌리엄스 씨는 “백악관에서 UFC 경기가 열린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격투기 행사는 과하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세계 정치의 중심지인 백악관은 외국 정상들이 드나드는 상징적인 공간인데, 그곳에서 격투기를 하고 피 흘리는 장면이 그대로 전 세계에 노출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단 얘기였다.
백악관 투어를 위해 플로리다주에서 왔다는 70대 남성 오토 로페즈 씨 또한 “이란 전쟁 때문에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고생하는데 굳이 이런 행사를 강행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반면 대학생 켐 존슨 씨는 “꽤 흥미로운 시도다.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정치를 좀 더 편하게 바라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면서 “백악관은 원래 국민에게 개방된 장소”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내 UFC 경기 개최 구상을 처음 밝힌 시점은 지난해 7월. 그는 2026년이 미국 건국 250주년임을 강조하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UFC는 백악관 운영팀 등과 10차례 넘게 회동하며 행사의 세부 계획을 조율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에서 대형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니만큼 UFC는 경기 장소인 ‘옥타곤(8각의 링)’에 하루 중 태양이 어떻게 비치는지, 공간 연출을 어떻게 할지 등을 세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스포츠매체 ESPN 등이 전했다. 백악관은 이미 이날 행사를 위해 5000여 명을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 비용 또한 천문학적 규모로 예상된다. 화이트 회장은 스포츠비즈니스저널 인터뷰에서 행사 종료 후 사우스론 잔디를 복구하는 데만 약 100만 달러(약 14억7000만 원)가 들 것이며 전액 UFC가 부담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 행사인 만큼, 유·무형의 효과를 고려하면 이 정도 비용을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 트럼프, 이란전 중에도 UFC 관람

2024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그는 당시 ‘대통령 당선인’ 자격으로 고향 뉴욕에서 열린 UFC 경기를 ‘깜짝’ 관람했다. 지난해 6월에는 인근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장녀 이방카를 대동하고 또 UFC 경기장에 나타났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UFC가 경기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시기엔 자신이 소유한 호텔을 경기장으로 제공한 적도 있다. 화이트 회장 또한 주요 선거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는 등 대통령을 적극 도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카세야센터에서 열린 UFC 경기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과 관람해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J D 밴스 부통령은 같은 달 10, 11일 이틀간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이란과의 1차 종전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야당 민주당은 미국과 이란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UFC 경기를 관람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수많은 미군이 중동에서 생명의 위험에 처해 있고 전쟁 여파로 휘발유 가격 또한 상승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한가하게 격투기 경기나 관람하느냐는 의미다.
다만 이를 단순한 열정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UFC는 보수 성향, 특히 남성 유권자층에서 높은 인기를 끄는 콘텐츠다. ‘강함’과 ‘대결’이라는 상징성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영국 가디언 또한 “UFC가 젊은 남성 유권자를 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인기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이 UFC를 ‘강한 지도자’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도구로 사용하려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과 화이트 회장의 밀착 관계 또한 ‘스포츠와 정치가 결합한 독특하고 강력한 동맹’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 국가기관 사유화 비판 여전
이 행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80세 생일과 맞물려 열린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는 시선도 많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국가의 공적 행사를 자신의 팔순 잔치 용도로 사용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건국 250주년 기념 행사와 대통령의 개인 일정이 뒤섞이면서 ‘국가기관의 사유화’ 논란 역시 커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또한 백악관에서 열리는 ‘검투사 스타일의 대결(UFC 경기)’이 대통령의 생일에 맞춰 진행된다며 “대통령이 자신의 쇼맨십을 과시할 또 하나의 기회”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로 인한 고유가 등 각종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대형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일종의 ‘빵과 서커스’ 전략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과거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민중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콜로세움에서 검투사 경기를 열었던 것과 유사한 맥락이라는 비판이다.
경기 당일 백악관 인근에만 수만 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보안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25일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백악관 출입기자협회(WHCA) 만찬 행사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한 후 보안 우려가 고조됐다. 백악관이 안전 대책을 논의하더라도 대규모 인파를 물리적으로 통제하는 데 일정 부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신진우 워싱턴 특파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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