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마에스트로와 극장경영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마에스트로.' 이탈리아어로 거장이나 스승을 뜻하는 이 단어는 오늘날 무대 위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로 수백 명의 소리를 조율하는 지휘자를 예우하는 통칭이다.
최근 세계 정상급 지휘자 장한나가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취임한 것은 '마에스트로 리더십'이 무대 위 지휘대를 넘어 극장 경영이라는 실무 일선으로 확장된 의미심장한 사건으로 읽힌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에스트로.’ 이탈리아어로 거장이나 스승을 뜻하는 이 단어는 오늘날 무대 위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로 수백 명의 소리를 조율하는 지휘자를 예우하는 통칭이다. 지휘자의 해석과 리더십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결정되듯 문화·예술의 전당이라 불리는 극장 경영 역시 수장의 역량에 따라 성격과 위상이 천차만별이다. 최근 세계 정상급 지휘자 장한나가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취임한 것은 ‘마에스트로 리더십’이 무대 위 지휘대를 넘어 극장 경영이라는 실무 일선으로 확장된 의미심장한 사건으로 읽힌다.
평소 필자는 예술경영·행정가로서 ‘극장의 경영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는 지론을 펼쳐왔다. 극장은 무대 뒤의 기술진, 기획자, 경영·행정가, 그리고 무대 위를 채우는 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문 인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유기체다. 최고경영자가 이들의 서로 다른 에너지를 하나의 비전으로 조율해 관객에게 최상의 경험을 선사하는 과정은 지휘자가 악보 위의 수많은 음표를 하나의 완성된 화음으로 엮어내는 작업과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
실제로 마에스트로가 행정 수장으로서 극장을 혁신한 사례는 해외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전설적인 성악가이자 지휘자인 플라시도 도밍고는 워싱턴 국립오페라와 LA 오페라의 총감독을 역임하며 파산 위기의 단체를 살려내고 신생 오페라단을 미국 정상의 반열에 올려놓는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리 게르기예프 역시 지휘봉과 경영권을 동시에 쥐고 낙후됐던 극장을 세계 최고의 ‘예술 제국’으로 재건해 예술가적 통찰이 행정적 결단력과 만날 때 어떤 성과를 내는지를 보여줬다. 이들은 마에스트로 특유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상징적 자본을 활용해 막대한 후원금을 유치하고 극장의 브랜드 가치를 격상시켰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국내에서 시도되는 예술가 출신 리더의 등장은 우리 예술 행정계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국내 예술 기관들은 몸집은 비대해졌으나 콘텐츠의 독창성이나 경영의 효율성 측면에서 다소 허약한 체질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관료형 리더십이 규정과 절차에 매몰된 ‘행정’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예술적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경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겨준다. 마에스트로 출신의 경영자가 취임 초부터 감성적인 수사 대신 ‘숫자’와 ‘데이터’를 강조하며 개혁의 칼날을 벼리는 모습은 복잡한 교향곡의 악보를 분석하듯 기관의 재무와 운영 시스템을 정교하게 리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지휘자가 단원들에게 완벽을 요구하며 소리의 밀도를 높이듯 극장 경영의 ‘오케스트레이션’ 또한 조직 전반에 강력한 긴장감과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관료 출신은 흉내 낼 수 없는 현장 전문가만의 감각으로 행정의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예술적 가치가 행정의 최우선 순위가 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술가로서의 직관이 행정·경영가로서의 정교한 절차와 만날 때 극장은 비로소 박제된 공간을 벗어나 살아 숨 쉬는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다.
예술의전당이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앞으로 마에스트로의 손끝에서 어떻게 변모해가는지 지켜보는 것은 우리 시대에 예술경영과 행정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이번 마에스트로의 변신이 단순한 외도가 아니라 성공적인 ‘연주’로 마무리된다면 이는 한국 예술경영·행정사에 ‘예술적 경영’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는 전무후무한 명연주가 될 것이다.
이혜진 선임기자 hasim@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판 스페이스X 구상 현실로…한화, 연말까지 KAI 지분 추가 매입
- 7월 장특공·공정시장가액 손볼까…“강남3구 추가 매물 출회 가능성”
- “신고하자니 피해액 2000원”…속타는 사장님
- “피자 먹고 예배 가자” 뉴욕 성당 만석 사태…Z세대가 뒤집은 미국 교회
- [단독] 삼성 반도체라인 간 檢…기술유출 수사 전문성 높인다
- 공매도·빚투 동반 상승…증시 과열 신호 최고조
- 상승 종목보다 하락이 많았다…삼전닉스 시총 쏠림 더 커져
- 부동산·해외주식 양도세 6월 1일까지 신고·납부해야
- 李대통령 “법정 허용치 초과 불법대부는 무효…갚지 않아도 무방”
- ‘1000억대 과징금’ 줄줄이...쿠팡 6월 공정위 심판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