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작전 참여” 거듭 압박…한국, 이란 공격 확인 땐 딜레마

서영지 기자 2026. 5. 5. 21:0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3일(현지시각) 마이애미발 에어포스원을 타고 플로리다주 앤드루스 기지에 도착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해방 프로젝트’(프로젝트 프리덤) 참여 요청에 정부가 5일 ‘검토’ 방침을 밝힌 것은 미국의 거듭된 압박에 일단 원론적 입장을 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호르무즈해협 안쪽 아랍에미리트(UAE)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이던 화물선 ‘에이치엠엠 나무’(HMM NAMU)호 폭발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주변 정세를 살핀 뒤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해방 프로젝트 참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칫 이란을 적으로 돌리거나 미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 정부는 신중한 태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각) 해방 프로젝트와 관련해 “이란이 한국 화물선을 포함해 관련 없는 국가들을 공격했다”며 “이제는 한국이 이 작전에 참여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나무호 폭발 사고 원인을 이란의 공격 때문이라고 규정하며 한국의 해방 프로젝트 참여를 채근한 것이다. 해방 프로젝트는 미국이 호르무즈해협에 갇힌 선박들을 인도해 안전 대피를 지원하는 해상 안보·호위 작전이다. 미국 중부사령부는 이 작전에 병력 1만5천명과 100대 이상의 항공기 등을 투입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14일에도 한국을 포함한 중국·일본·영국·프랑스 등에 호르무즈해협으로 군함을 파견하라고 공개 요구했다.

이에 청와대는 5일 “정부는 국제 해상교통로의 안전과 항행의 자유가 모든 국가의 공동 이익에 부합하고 국제법상 보호되어야 할 원칙이라는 입장 아래 글로벌 해상 물류망의 조속한 안정, 회복, 정상화를 위해 여러 국제적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오고 있다”며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련 언급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쪽이 제안한 호르무즈해협 관련 제안에 대해서도 이 원칙과 한반도 대비 태세, 국내법 절차 등을 감안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제안을 검토한다고 밝히면서도 대북 대비 태세와 국외 파병에 대한 국회 동의라는 국내법 절차 등을 선제 조건으로 거론한 것이다. 이런 조건들을 고려하면 해방 프로젝트 참여 여부 결정에 적잖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도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청와대 쪽에서는 미국의 제안이 왔으니 이를 검토한다는 것이지 참여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는 기류가 적지 않다. 한 외교부 관계자도 “아직 초기 단계라 미국도 다른 나라와 논의하면서 구상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도 (해방 프로젝트) 구상에 대한 의견을 취합하는 단계고, 우리도 각국 반응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란이 미국의 해방 프로젝트가 휴전 합의 위반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는 상황 등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섣불리 해방 프로젝트에 참여할 경우 이란이 한국 선박을 공격할 빌미를 줄 수 있다. 현재 호르무즈해협 안에는 우리 선박 26척이 갇혀 있다. 이란은 해협 내 선박이 동의 없이 통과하면 순항미사일과 드론 등 물리력을 동원해 막겠다는 태도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해군은 지난 4일 미국에 맞대응하려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통제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그동안 정부는 프랑스·영국이 주도하는 ‘종전 이후’를 가정한 호르무즈해협 자유항행 논의에 참여해왔지만, 이번 해방 프로젝트는 당장 호르무즈해협에서 선박을 호위하기 때문에 위험성 면에서 완전히 다른 작전이다.

호르무즈해협 인근에 있는 컨테이너선. AP 연합뉴스

정부는 일단 나무호 폭발 사고 원인부터 정확하게 파악하겠다는 태도다. 폭발 사고가 이란의 공격 탓인지 확인해야 해방 프로젝트 참여 여부 등 후속 대응 방향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이날 강훈식 비서실장 주재로 상황 점검회의를 열어 객관적인 원인 규명을 위해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소속 조사관과 소방청 감식 전문가 현지 급파를 결정한 것도 ‘선 원인 규명, 후 대응’이라는 신중 기조를 반영한 것이다.

다만, 조사에서 나무호가 이란의 의도적인 공격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면 정부는 난제를 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우리 국민과 선박 안전 항행을 위해 공들였던 한-이란 관계를 어떻게 전환할지 고심해야 한다. 미국이 요구하는 해방 프로젝트에 어느 정도 호응할지도 판단해야 한다. 참여할 경우 호르무즈해협에 갇힌 한국 선박들이 이란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감수해야 한다. 정부가 미리 대응 방향을 정하기보다 철저하고 신중한 원인 조사에 무게를 두는 이유기도 하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원인 조사 자체가 쉽진 않아 보이지만, 만약 피격이 맞다면 당시 미국이 조처를 할 수 있었던 상황인지도 보아야 한다. 유사한 상황에 처했던 국가들의 대응 방식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