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한철] 오월에 들른 고향

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2026. 5. 5.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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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봄빛을 머금은 저녁놀 깊은 색, 자목련 지니(Magnolia Genie) 두 그루를 심었다. 한 그루는 부모님 산소 곁에, 또 한 그루는 누이동생 무덤 곁에…. 갈 길보다 지나온 길이 자주 돌아 보이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기억 속의 골목길 어릴 적 함께 놀던 동무들이 그리웠다. 식당하던 홍실이는 아프다는 풍문이고, 행상하던 이덕이·기남이는 행방이 묘연하고, 선생하던 갑수는 지지난해, 연탄팔던 석주는 오래 전 저 강을 건너갔다. 날이 밝으면 상팔, 희섭, 미옥, 지은 명희... 문학과 함께, 탁구와 함께 요새 노는 친구들이 구병산 바람 쐬러 오기로 되어 있다. 밤새 뒤척이며 횔덜린의 '귀향'과 이기철 시인의 '오월에 들른 고향'을 떠올렸다.

먼 곳에서 나는 돌아온다/ (중략)/ 한때 나를 이루던 것들,/ 그 순수한 기쁨과 맑은 숨결은/ 어디엔가 남겨진 채,/ 나는 오직/ 기억으로 이루어진 사람처럼 서 있다./ 그럼에도/ 이 땅은 나를 받아들인다./ 저녁의 빛이 낮게 내려앉고,/ 포도밭 위로 바람이 지나갈 때,/ 나는 비로소 느낀다./ 상실 또한 하나의 귀향임을./ 그리고 고요 속에서/ 이름 없이 나를 부르던 어떤 것,/ 그 오래된 목소리가/ 다시 내 안에서 흐르기 시작한다.(횔덜린, '귀향')

"내 안에서 흐르기 시작하는 그 오래된 목소리"… 아버지에게도 그랬고 어머니에게도 그랬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로 춘궁의 그날, 하늘 아래 첫 동네는 버리고 떠나야할 곳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꿈의 기와집을 지었다 부수고 부수었다 짓는데 한 평생을 보내셨고 어머니는 창출을 고아 만든 한약을 이고 포항으로 동해로 열흘이나 보름씩 떠돌다 되돌아오는 게 고작이셨다. 아버지는 소심한 가장이자 선산의 조상을 지켜야할 책무 때문에, 어머니는 한 인간이기 이전에 아내이고 어머니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셨다. 가난한 시절 이 나라 부모들이 다 그와 같았겠듯이 아버지·어머니는 내게 삽과 괭이 대신 책과 연필을 쥐어주셨고 나무지게 대신 책가방을 등에 메어주심으로 언젠가 그날 하늘 아래 첫 동네를 벗어나려 하셨다.

오월에 들른 고향은/ 아카샤꽃이 피고 있었고/ 한 잎 두 잎 지다 남은 복숭아꽃이 지고 있었다/ 비둘기 울음이/ 뚜깔잎의 저녁 이슬을 떨고 있었고/ 서풍이 풀잎의 이른 잠을 깨우며/ 아랫마을에서 윗마을로/ 고개를 저으며 올라가고 있었다/ (중략)/ 서툰 걸음마가 쓰러지기 잘하던/ 내 아이 적의 고통과/ 비 오면 자주 끊어지던/ 학교 길의 도랑이 걸레처럼 구겨져/ 흐르고 있었다(이기철, '오월에 들른 고향')

"서툰 걸음마가 쓰러지기 잘 하던 오월에 들른 고향" … 모두다 어디로 사라져 갔을까. 논둑 길 누비던 꽹과리 소리, 산 고양이 새끼 치던 외양간 다락방, 북 치며 귀신 쫓던 눈먼 참봉, 진달래 하늘대던 아저씨의 나무지게…. 사라져 그리운 것이 어디 그뿐이랴. 먼저 간 누이의 환한 얼굴, 보리밥 먹고도 배부르던 행복, 옹달샘 물맛처럼 끝없이 좋은 인심, 난리도 피해 간다는 내 고향의 전설이 사라지고 없었다. 돈 벌고 출세하기 위해서 쓸 만한 사람들은 도시로 떠나고 병약한 사람들만 애처롭게 사는 마을, 도시생활에 실패한 사람들이 비료값도 안 되는 농사나 지으러 어깨 풀 죽이고 찾아오는 곳, 마을의 빈집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춘궁의 지난날이 차라리 그리웠다.

어린 지니를 심었다. 고향에 대한 예의로, 세월 흐른다 해도 환대의 기억을 오래 오래 간직할 자목련을 심었다. 시인에게 고향이 문학적 영감의 원초일 때, 고향에게 시인은 무엇일까? 삼년 생 지니를 다독다독 심었다. 정지용의 옥천이 '향수'의 대명사가 되고, 윤동주의 북간도 용정이 '양심'의 상징이 되었듯, 시인의 노래는 흙과 바람 속에 남아, 그의 고향을 인문적 사유의 가치공간으로 노래의 울림만큼 터 잡게 하리라. 봄빛을 머금은 저녁놀 깊은 색, 지니의 그날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