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코딩 몰라도 ‘AI 투자봇’ 하루만에 만든다…미장 거래 맡기고 꿀잠

윤민혁 기자 2026. 5. 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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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I 자동매매 100조 눈앞
주식거래 접속 창구인 API 개방
나만의 투자 에이전트 시대 열려
한투·키움 등 이어 메리츠도 참전
서버 인프라 투자·보안 리스크에
일각선 “증권사 양날의 검” 지적

직장인 A 씨는 최근 밤마다 이어지는 미국 증시의 급등락 장세 속에서도 편안하게 잠자리에 든다. 변동성을 포착해 3배 레버리지·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를 사고파는 퀀트 봇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목표 수익률은 하루 1~2% 선으로 그날의 최적 수익률까지 장세를 분석한 인공지능(AI)이 투자를 결정한다. A 씨는 5일 “피 말리게 밤새워 차트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며 “손절하는 날도 있지만 과거 5년 치 백테스트(거래 가상 검증)에서 1000% 이상 수익률을 확인했기에 프로그램을 믿고 맡긴다”고 말했다.

코드 한 줄도 못 짰던 직장인 B 씨는 퇴근 이후 개발자 커뮤니티인 ‘깃허브’를 찾는 날이 늘었다. 그는 수십 명의 ‘퀀트 개미’들과 알고리즘의 장단점을 토론하고 버그를 공유하며 자동 매매 프로그램을 고도화하고 있다. 프로그램 개선도, 버그 파악과 수정도 모두 AI의 몫이다. B 씨는 “아직 소액이지만 장기적으로 시스템이 완성되면 어설픈 부업보다 경제적 자유를 앞당겨 줄 무기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한국투자증권

AI를 활용한 코딩이 대중화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매매 풍경이 바뀌고 있다.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반영해 알고리즘을 설정하면 조건에 도달했을 때 자동 주문이 되는 구조다. 투자 알고리즘과 코딩 이해력만 있다면 반나절 만에, 전혀 지식이 없을 경우에도 바이브 코딩을 통해 하루면 만들 수 있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기관투자가의 영역이었던 ‘앱인터페이스(API)’ 개방에 따라 누구나 자신만의 투자 에이전트를 보유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소위 ‘나만의 AI 퀀트봇’ 투자는 증권사 앱에서 매매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든 앱을 통해 거래가 이뤄진다. 이는 증권사가 API를 개방함으로써 외부 프로그램도 증권사 시스템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 프로그램이 증권사와 ‘직통 라인’을 뚫고 증시 등락 확인부터 매매까지 할 수 있는 셈이다.

본래 API를 활용한 자동 매매는 24시간 장이 열리고 변동성이 극심한 가상자산(코인) 시장에서 대중화됐다. 그러나 최근 코인 시장이 부진하고 국내외 증시가 급등하자 코인 시장에서 퀀트 자동 매매 노하우를 쌓은 투자자들이 대거 주식시장으로 넘어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동 매매 수요 폭발에 증권사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존의 한국투자·키움·대신·LS증권에 이어 메리츠증권은 오픈 API 개발을 사실상 마무리하고 내부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서버 안정성 등 세부 조율을 거쳐 연내 정식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 매매 수수료를 무료화해 돌풍을 일으켰던 메리츠 ‘슈퍼365’ 계좌와 오픈 API가 결합할 시 파급력이 클 수 있다. 메리츠증권은 우선 국내 거래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출시한 뒤 확장을 검토할 계획이다.

과거 증권사들이 주로 제공하던 API는 윈도 환경에서만 구동되고 PC를 항상 켜둬야 하는 ‘COM/OCX’ 방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에는 리눅스 기반 클라우드 서버에 봇을 올려두고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 ‘REST(표현 상태 전송)’ 방식이 대세다. 증권사들은 투자자 편의를 위해 국내외 주식·파생상품 시세 확인, 계좌 조회, 거래 주문 등 각 기능별로 상세한 설명과 예시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오픈소스 코드 추가 제공이나 백테스트 기능까지 지원하고 있다.

키움증권

오픈 API 확산으로 주목하는 시장은 단연 ‘해외 주식’이다. 현재 해외 주식 자동 매매 API를 지원하는 곳은 한투와 LS증권뿐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국내 주식보다 수수료율이 높은 미국 증시(0.25%) 등에서 발생하는 자동 매매 거래가 알짜 수익원이다.

핀테크 스타트업들에도 기회의 장이다. 개발 인력이 부족한 신생 기업들도 증권사가 제공하는 API와 AI 코딩을 결합해 참신한 투자 서비스들을 속속 선보이며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API 개방이 증권사에 ‘양날의 검’이라는 지적도 있다. 수천·수만 개의 AI 봇이 동시에 시세를 조회하고 1초에 수십 번씩 주문을 쏟아낼 경우 막대한 서버 투자가 불가피한 탓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스템 유지 보수와 해킹 등 사이버 보안 이슈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선뜻 API 개방에 나서지 못하는 대형 증권사들도 여전히 많다”며 “결국 초기 서버 인프라 투자와 보안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뚝심 있는 회사들만이 미래형 플랫폼 시장을 독식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민혁 기자 beheren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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